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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r 14. 2022

쓸모없는 일

쓸모없는 일에 관한 고찰

Dear Mensch ist nur da ganz Mensch, wo er spielt
인간은 놀 수 있을 때만 진정한 인간이다.
유용하지 않은 일을 할 때에 온전한 인간이 된다.

-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


오늘은 약간의 어지럼증이 만드는 몽롱함에 취해 가만히 누워있다 잠들어 버린 시간이 길었다.

자는 동안 주말에 취소한 콘서트 티켓 값이 환불되었고 그대로 알라딘에서 잡지 4권을 주문했다.


"종이책도 사람들이 안 읽는데 종이 매거진을 누가 읽어? 그걸 왜 만든데? 쓸데없잖아."

그래서 주문했다.

나는 '쓸모없다 / 쓸데없다 / 생산적이지 않다 / 무용하다'등의 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쓸모 있다, 없다의 기준은 개개인이 만들겠지만, 어느 정도의 공동의 합의가 이뤄진 정도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그건 돈이 되지 않는다.' '그걸 누가 인정해줘.'이지 않을까?


왜 내가 이런 말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한 역사가 있지 않지만, 아마 '삶'에 대해서 매일 생각하다가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인생을 왜 사는 거야?'라는 한탄의 원망이 아닌  '인생이란 뭘까?'에서 오는 호기심 어린 애정에서 시작되었다.


정답은 역시나 없었다. 대신 인생을 재밌게 살아가야겠다는 삶의 방향만은 정했다.

나에게 있어 재미는 낭비하는 시간에서 나온다.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익혀도 모자랄 시간에 철학과 강의실에 앉아서 혼자 '우와..' 하며 꽂히는 지적 깨달음을 느낄 때 몸을 부르르 떨며 즐거워했다.


책에서 나오는 좋은 구절, 아름다운 가사 한 줄을 기록해두었다가 힘들어하는 주변인들에게 약으로 하나씩 건넸다. 파고들어 가는 동굴 속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되었으며 하는 바람으로.

빛에 눈을 살짝 뜬 친구의 모습을 보면 아르바이트에서 받은 최저시급보다 훨씬 가치 있었다.


물론 재미를 찾는 나의 삶이 언제나 순탄하지는 않다.

일찍 취업한 친구들의 오르는 월급과 주식, 아파트에 대한 대화 그리고 '갓생'의 표본이 되는 애살어림을 보고는 부담감을 느끼고 피하곤 했다. '나와 결이 맞지 않아'라고 핑계를 대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의 기질에서 오는 열등감의 표출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렇다고 남과 나를 해치는 열등감은 아니었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주문을 외우며 담담해지는 훈련을 해오고 있다.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도구화에 저항하는 최전선에서 우리를 지키고 이끌어줍니다. 쓸모없는 것이란 우리가 다른 것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이지요.

우리는 그런 쓸모없는 활동에 시간을 쓰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요즘처럼 도구화된 시대에서는 그런 쓸모없는 활동이야말로 삶의 진짜 의미를 되찾아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쓸모없는 일을 하세요. 쓸모없음이야말로 최고의 선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연습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 스벤 브링크만


독서는 하나의 훈련의 일종이다.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덜 괴롭고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가장 즐거웠던 활동은 단연 무대에서 뛰어 놀기만 했던 연극반 활동이었고, 지금 가장 그리운 시간은 필리핀 친구들과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던 시간이다.


작년에 제일 좋아했던 앨범은

잔나비의 [환상의 나라]

"환상의 나라로! 여전히 꿈과 희망, 사랑과 우정, 성실과 용기가 넘쳐흐르는 곳!"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가졌다고 말하는 잔나비의 지고지순한 청춘과 낭만에 대한 예찬이 여전히 좋다.


그리고 내가 서울에 온 이유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꿈에 열정을 쏟는 용기 내는 나의 친구들이 있는 곳이어서.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 기타를 쳐보았다.

처음 치는 기타라 코드 집기부터 하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 꾸준히 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낭비하는 시간'에 큰 차지를 할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참고사항 :

늘 경제활동은 해옴

(혹여나 나의 가치관이 돈 벌 필요 없는 베짱이가 가질만한 것으로 오해할까 봐... 이렇게 부가 설명 붙이는 것이 매우 멋없지만, 멋없는 것도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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