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에 관한 고찰
나와 전혀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서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를 쓰면서 살아온 누군가의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누군가와 공감하고,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 만족감과 안정감은 진짜 말로 할 수 없는 거거든요.(...) 언어적 한계를 다 깨부수고 나면 나하고 더 잘 맞는 세상, 문화, 사람들을 만난 기회가 엄청나게 늘어나요. 미흡했던 부분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앞에 펼쳐지는 거죠.
-손미나
아침 7시 30 기상, 밤 12시 30 취침.
9-6 직장생활 때문에 가지게 된 규칙적인 수면 패턴이 나의 몸과 잘 맞았는데 격리 이후 다 무너졌다.
9시, 10시, 10시 30.. 점점 늦어지는 아침 기상시간과 1시, 2시, 그리고 결국은 3시를 넘어가는 취침시간이 어제부로 달성됐다.
하루에 쓰고 있는 에너지가 매우 적어서 잠이 안 오기도 하고 늦게 자는 친구와 소통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취침 시간을 미루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는 친구가 일정을 끝내면 우리의 즉각적인 대화는 밤이 되어서야, 새벽이 되어서야 가능하다.
작년부터 외국인 친구가 갑작스럽게 많아졌다. 시작은 전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그 전에도 영어를 쭉 공부하며 언어 실력 향상을 위한 글로벌 프렌즈를 찾아 헤맸지만 목적이 분명해서 그런가 쉽지가 않았다. 언어 교환만 하는 건 결국엔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프렌치였던 남자친구를 사귀며 그 친구의 친구, 모임 등에 자연스럽게 가게 되었고 '외국인' 친구에서 '친구'가 외국인으로 인식 변화가 이루어졌다. 물론 한국어를 할 때만큼 편하고 정확하게 내 생각을 전달하거나 깊은 대화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호기심 대장인 내가 마음 놓고 질문 폭격을 해도 되어서 신나게 친구를 사귀었던 것 같다.
남자친구가 떠나고 이별 이후에는 일하고 혼자 취미생활을 한다고 외국인 친구만이 아니라 친구 자체를 별로 만나지 않았다. 물론 업무에서도 외국인 연수생들을 관리하였지만 '친구'이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필리핀 연수생인 칼미나와 따로 연락을 하고 같이 놀기 시작했고 칼미나가 필리핀 그룹에 나를 초대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필리핀 친구들과 신명 나게 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 두 번 정도의 모임까지는 나는 코디네이터 신분으로, 연수생들은 내가 관리하는 학생 신분으로 서로 어느 정도의 예의를 지켰지만,
음... 그냥 통한다고 해야 하나? 점점 서로가 편해지고 익숙해져 우리들만의 추억이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알아듣기 힘들던 피노이의 발음도 자주 만나고 놀다 보니 귀에 트이고, 내가 툭툭 던지는 불완전한 영어도 친구들이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대구를 떠나기 직전 두 달간은 필리핀 그룹과 제일 많이 놀았던 것 같다. 지금도 나의 코로나 확진 소식에 매일 안부를 체크해주는 친구들이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대화가 제일 잘 통하는 친구와는 자주 통화도 하고 일상을 공유 중이다. 이 친구가 지금의 나에겐 큰 힘이고 버팀목이다.
글로벌 문화와 외국인 친구들이 나와 잘 맞다기보다는 영어를 할 때 나의 자아가 개방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솔직해지고 머뭇거림이 사라진다.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 절대 먼저 입을 열거나 살갑게 다가가는 사람이 아닌데 영어를 할 때면, 이상하게 오픈 마인드로 스몰 톡을 내가 먼저 한다.
아마 한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외국인인 이방인들보다 심적 여유가 커서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이방인으로서 해외에 나간다면 더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자아로 생활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 Mickey Seo를 보다 문득 오늘의 글을 이 주제로 쓰고 싶었다.
영어회화를 하는 게 친구를 사귀는 거고 친구를 사귀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거기도 하고 특히 외국인 친구를 사귀며 극한의 고통이나 어떤.. 이제 질려서 못 사귀겠다, 이런 것까지 느껴보고 그 과정에서 그게 나에 대해서 알게 만들어주고 다시 그 사람에게 감사하게 되고 나랑 이렇게 다른 존재가 내 앞에 나타나서 그것이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줬다는 게...
-유튜버 Mickey Seo
한국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며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가 정돈되지 않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사실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 물론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나의 좁은 틀을 깨는 좋은 자극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고 다시 '나'라는 사람의 성격과 특성으로 귀결되어 자아성찰을 하게 한다.
피곤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나에겐 이러한 관계에서 오는 성찰은 흥미롭고 재밌다.
물론 내가 원하는 대화의 수준까지 통하게 만들기 위해선 영어 공부가 더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