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반전 없는 미래를 위하여
다른 교육을 상상하다 No. 07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를 말하다
2020년 7월 17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공항고등학교에서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이것은 ‘그린’과 ‘스마트’와 ‘미래’의 동등한 결합인가? 아니면 ‘미래’라는 모호함과 막연함을 ‘그린’과 ‘스마트’라는 수식어를 통해 선명히 하려는 걸까? 아직 최종 계획안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 흐름을 보면 후자에 가까운 인상이다. 그래서 사소한 차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보다는 ‘그린 스마트 학교’라고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그러고 보니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의 한국판 뉴딜 과제명은 ‘그린 스마트 스쿨’이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계획의 발표 장소로 공항고등학교가 선정된 것은 의미가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6년부터 획일적인 학교공간의 혁신을 목표로 디자인 중심 설계 공모를 확대 시행한다. 김포공항 맞은편에서 서울 마곡지구로 이전하게 된 공항고등학교는 신축학교 중에서 설계 공모로 진행된 첫 케이스였다. 입상작은 기존의 학교 건물과는 사뭇 달랐다. ‘마을결합형 학교’라는 공항고등학교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반영하여 과감하고 도전적인 학교 디자인을 제시했다. 공항고등학교가 ‘에너지자립학교(eS스쿨; energy-Self school)1)’ 시범학교인 것도 설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2)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공항고등학교를 방문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난 8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창덕여자중학교를 방문했다. 1945년 개교한 창덕여자중학교는 2014년 여름 미래창조과학부, 교육부,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하는 ‘서울미래학교’로 지정되어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나아갈 방향과 청사진을 주문받았다.3) 서울미래학교 연구학교를 운영하면서 창덕여자중학교는 학교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낡고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빗물저장소, 에코 쿨루프, 태양광 패널 설치 등의 환경적 요소와 스마트 기기, 온라인 플랫폼, 테크센터 구축 등의 기술적 요소를 교육과정 및 학교문화 혁신과 연결해왔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일까? 대통령의 학교 방문 이후 청와대에서는 “이번 방문은 ‘그린 스마트 스쿨’의 본격적인 추진을 알리고, 전국의 노후 학교를 디지털과 친환경 기반 첨단 학교로 획기적으로 전환해 언제 어디서든 온·오프라인 융합 교육이 가능한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같은 장소에서 화상회의로 진행된 17개 시·도교육감과의 간담회에서는 ‘스마트’ 교실로 디지털 기반 융합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그린’ 학교로 학교 자체가 환경교육의 장이자 교재가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어디서나 누구든 격차 없이 디지털 이용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학교가 지역을 변화시키는 거점이 되는 새로운 미래학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네 가지 기본 원칙을 세웠다.
첫째, 저탄소 제로에너지를 지향하는 그린학교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건축에 패시브 디자인을 적용하고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하여 에너지 자립율을 20퍼센트 이상 확보하고 친환경 건축자재를 사용한다.
둘째, 미래형 교수학습이 가능한 첨단 ICT 기반 스마트 교실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교실마다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여 디지털 전환의 기반을 마련하고 학생들의 개별화학습을 지원한다.
셋째, 학생 중심의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한 공간 혁신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과 학생 중심 수업 혁신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넷째,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생활SOC 학교시설 복합화를 병행한다. 이를 통해 학교가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중심 커뮤니티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학생들의 학습뿐만 아니라 놀이와 돌봄이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양대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의 10대 과제 중 하나인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기본적으로 노후 시설 개선 사업이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1단계 사업’에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총 18조 5천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2020년 현재 전국적으로 총 7980동에 달하는 ‘40년 이상 경과된 노후 건물’ 중 2,835동을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로 조성할 계획이다.
사실 학교 건물의 노후화는 대한민국 인구의 급격한 고령화만큼이나 심각하다. 전국적으로 4만 동에 이르는 전체 학교시설 중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1단계 사업이 끝나는 2025년에는 40년 이상 경과된 노후 건물 수가 11,294동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의 계획으로는 전체 노후 시설 중 4분의 1 정도만 시설 개선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마저도 예산 확보와 관련하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총 18조 5천억 원의 사업비 중에서 국비는 30퍼센트인 5조 5천억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70퍼센트는 지방비와 민간투자(BTL; 임대형 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인데, 지역 간의 격차도 문제이지만 이를 민간투자 방식으로 보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국 부채로 돌아오기 때문에 교육재정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과 관련하여 지난 10월 28일 의미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제21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과 여러 교육‧시민단체들4)이 공동으로 전문 설문기관에 의뢰하여 전국의 교사 및 관리자, 교육전문직원, 학부모, 중고등학생, 교육행정직원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은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의 추진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지만(찬성 69.8%), 민간투자 방식 도입에 대해서는 우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찬성 30.1%). 응답자의 찬성 비율이 높은 상위 4개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83.4%). ➁ 단위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80.0%). ➂ 공공기관의 투자를 유도하여 재정 건전성과 지속성을 담보해야 한다(77.3%). ➃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생태전환교육을 도입해야 한다(77.0%).
강득구 의원실을 비롯하여 이번 설문조사를 기획한 교육‧시민단체들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정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냈다. 학교공간 혁신, 교육과정 연계, 혁신학교, 생태전환교육과 연계하여 추진할 것, 학생, 학부모, 교직원 시민, 등 학교 사용자의 요구를 반영할 것, 시・도교육청에 재량권을 주어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환경을 구축할 것,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것, 지역별・학교별 불평등 해소를 위해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 BTL 사업은 세밀한 검토를 거쳐 신중하게 도입할 것, 장기적 안목으로 추진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세 가지 층위에서 구조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우선,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뭘까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교육기본법 제12조 2항은 “교육내용・교육방법・교재 및 교육시설은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학습자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학교와 지역사회, 시도교육청과 지방정부, 교육부와 타 행정부처 사이의 입체적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항상 자기 부서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업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헌법에 명시된 학생의 교육권을 중심에 두고 모두 부처가 자신들이 지닌 자원과 역량을 이 사업에 투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미래 예측에 근거한 접근이어야 한다. 2020년의 ‘그린’은 무엇인가. 환경재난 시대의 기후위기 대응과 근본적인 ‘생태적 전환’이다. 2020년의 ‘스마트’는 무엇인가. 포스트 코로나 혹은 위드 코로나 시대의 - 상시적으로 ‘마스크’를 써야 할지도 모르는 - 교실이다.
우리나라가 백 명의 마을이라면 그중에 스무 명은 지금 학교에 있다.5) 전 국민의 5분의 1이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 왜 힘들지 않겠는가. 배우는 일이 왜 어렵지 않겠는가. 이는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올린 문화의 정수들을 전수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일인 것이다. 그 곤란함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교문을 지키고 누군가는 밥을 지으며 또 누군가는 낡고 고장 난 것들을 고친다. 학교는 그런 곳이다.
학교를 새롭게 짓는다는 것은 - 특히 ‘미래’라는 수사를 붙인다면 더더욱 - 정해진 시간 안에 설계도면에 나온 대로 건물을 세우는 일을 넘어선다. 그것은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인류만의 특별한 행위가 일어나는 특수한 ‘집(oikos)6)’에 대한 사유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벨기에의 교육자 얀 마스켈라인의 말처럼 학교를 짓는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자유 시간을 제공하여 지식과 기술을 공공재(common goods)로 바꾸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 개개인의 출신이나 능력, 적성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부여함으로써 그 안에서 그들이 개개인의 환경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양되고 또 세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혁시킬 기회를 부여하는 일이다.7) 또한 학교를 새롭게 짓는다는 것은 학교가 터를 잡을 지역의 생김새(지리학, 지질학)와 이야기(문학, 역사학)를 미래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는 틀을 세우는 일이다.
미래교육의 상이 탈시간적 공간에 갇혀서는 안 된다. 교실을 (특유의 음악과 함께 등장하던) 러브하우스처럼 꾸민다고 해서 갑자기 미래학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아이들이 12년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염려하는 미래교육이면 좋겠다. 아니 사실 그 이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함은 아이들의 백년의 삶을 고민하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린’과 ‘스마트’라는추상적인 언어는 제도와 만날 때 비로소 날개를 달고 비상할 것이다. 국가 수준에서 고민하고 기준을 정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이른바 대학 3종 세트로 불리는 대학서열화, 대학등록금, 대학입시제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인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해서도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탄소배출 제로’ 더 나아가 ‘지구 온도 상승 1.5℃ 이하’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국가・사회적 거버넌스 구축에 돌입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이 『팬데믹 패닉』 서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폴 프랭클린의 단편영화 ‘탈출8)’은 인상적이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자가 골목길을 걷는다. 그 끝에 한 가게가 있다. 바로 ‘세상을 파는 가게’다. 손님이 전 재산을 내놓으면 정해진 시간 동안 자기의 가장 내밀한 소망대로 살아갈 수 있는 대안 현실로 이동시켜준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주인공은 고민을 거듭하고 그 상점에 다시 가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그는 자신을 살며시 깨우면서 겪어보니 흡족했는지 묻는 가게 주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어마어마한 반전! “저 너머로, 눈길이 닿는 저 멀리까지 갈색 회색 검은색 돌무더기 밭이 펼쳐져 있다. 지평선까지 사방으로 뻗어 있는 그 벌판은 도시에서 온 뒤틀린 시체들, 여기저기 흩어진 그루터기들, 그리고 한때 사람의 살과 뼈였던 곱고 하얀 재로 덮여 있었다.”9)
러브하우스와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간 세상이 온갖 차별과 비루함으로 넘쳐나는 공간이 아니길 바란다. 쓰레기 대란과 에너지 고갈, 기후 재난과 대멸종 속에서 신음하는 세계가 아니길 바란다. 그건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아니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가 현실에 단단히 밭을 딛고서 우리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직시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개인의 안녕(well-being)이 공동체의 안녕, 더 나아가 지구 차원의 안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며, 미래를 스스로 변혁해나갈 준비의 시간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OECD 2030 학습나침반’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한 학생이 나침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가 도달해야 하는 곳은 ‘웰빙 2030’이다. 여기서 말하는 웰빙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와 지구적 차원에 이른다.10) 그것은 자기주체성을 바탕으로 동료, 교사, 공동체의 지원과 협력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또한 역량은 (지식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지식, 기술, 태도와 가치로 이루어지며 예측-행동-성찰의 반복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갈등과 딜레마를 조정하며 책임의식을 체화할 때 세상을 바꾸는 역량, 즉 변혁적 역량이 된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에서 말하는 ‘그린’이 인간과 자연의 ‘공존’으로서의 그린이 되기를,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에서 말하는 ‘스마트’가 소통과 연대의 ‘공유지’로서의 스마트가 되기를. 그래서 우리 교육이 꿈꾸던 ‘오래된 미래’를 회복하는 일이 되기를.
1) 에너지 소비량을 최소화하고(Passive), 필요한 에너지는 자체 생산·활용함으로써(Active),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고도(Zero Energy)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가능한 학교를 말한다.
2) 2020년 8월 21일 공항고등학교는 제38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녹색건축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3) 창덕여중 공동체 씀, 『대한민국 1호 미래학교』, 푸른칠판.
4) 교사노동조합연맹,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교원단체총연합회, 실천교사모임, 전국혁신학교학부모네트워크, 좋은교사운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이 참여했다.
5) 전국의 유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6,493,520명이고, 대학생 수는 2,633,787명이며, 어린이집 보육아동 수는 1,365,085명이다. 아동, 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교직원들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6) 그리스어 'oikos'는 ‘집’이라는 의미 외에도 인류의 집으로서의 ‘환경’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갖는다.
7) 얀 마스켈라인 씀, 『학교를 변론하다』, 윤선인 옮김, 살림터.
8) https://vimeo.com/223579794
9) 슬라보예 지젝 씀, 『펜데믹 패닉』, 강우성 옮김, 북하우스.
10) OECD(2018), 「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Education 2030」. 원문은 다음과 같다: We are committed to helping every learner develop as a whole person, fulfil his or her potential and help shape a shared future built on the well-being of individuals, communities and the planet.
우리나라가 백 명의 마을이라면 그중에 스무 명은 지금 학교에 있다. 전 국민의 5분의 1이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 왜 힘들지 않겠는가. 배우는 일이 왜 어렵지 않겠는가. 이는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올린 문화의 정수들을 전수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일인 것이다. 그 곤란함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교문을 지키고 누군가는 밥을 지으며 또 누군가는 낡고 고장 난 것들을 고친다. 학교는 그런 곳이다.
* 이 글은 격월간 『민들레』2020년 11+12월호(vol.132)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