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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Dec 27. 2020

미래교육의 방향

우리는 미래세대와 함께 모험을 떠난 용기가 있는가

다른 교육을 상상하다 No. 06

미래교육의 방향



우리가 여전히 바둑을 두는 이유     


2016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대국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어떤 이들은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하는 – 이를테면 수학과 같은 - 과목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알파고를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었지만 수학은 커녕 – 사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는 증거는 없다 - 바둑도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6년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 ‘딥 블루’에게 패배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체스는 건재하다.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이 오늘도 체스를 배우고 있다. 인간지능을 능가하는 체스/바둑 기계가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체스와 바둑을 즐긴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 속에 미래교육의 단초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가리 카스파로프가 딥 블루와 체스 대결을 하는 모습(左)과 이세돌이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하는 모습(右)

 


10년 전, 우리가 꿈꾸던 미래는     


로또 분양, 시세 차익, 선물 거래, … TV에서부터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경제방송이라는 미명 아래 온갖 투자정보가 넘쳐난다. 이를 보며 ‘그때 집을 샀어야 했는데!’ ‘그때 주식을 샀어야 했는데!’ 하며 땅을 치는 사람들에게 미래교육은 (조금 과장을 보태) 그저 ‘부동산교육’이나 ‘주식교육’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부당한 처우와 억울한 죽음을 보고도 애도하거나 분노하기보다는 ‘그러니까 공부 잘해서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입사해야지’라고 마음먹는 사람들에게 미래학교는 그저 번듯한 졸업장을 따기 위한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미래교육/미래학교 담론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현실의 욕망이 마구 뒤섞인 부패한 깡통일 가능성이 높다.


현실 세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하지만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두에게 필요한 한정된 자원을 먼저 선점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미래교육의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청소년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앞으로의 10년을 예측하기 전에 지난 10년을 되돌아보자. 2011년, 우리는 어떤 2021년을 꿈꾸었던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2018년 IPCC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와 청소년 기후행동의 등장,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돌이켜보면 예측한 것보다는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것이 이제는 한때의 해프닝처럼 느껴질 만큼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이 자리에 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전진해왔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이자1) 공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국가로 2000년부터 시작된 OECD PISA에서 꾸준하게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OECD 회원국 중) 거의 유일한 국가다.2) 한편 BTS를 비롯한 K-pop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백인 남성’이 최상위에 위치하는 인종적 상상력에 균열을 내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능력 역시 소위 선진국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 속에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있다. 그들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재’다.

         

BTS는 하나의 혁명이다. 많은 이들이 서구 백인 남성이 주류인 세계의 편견과 장벽을 허물고 약자와 연대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게임의 규칙 바꾸기     


인간보다 게임을 더 잘하는 기계의 탄생. 언젠가는 그렇게 될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승리를 거두는 ‘인공지능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 달려 있다. 첫째, 게임의 규칙은 인간이 만든다. 둘째, 인간은 단지 승부를 위해서 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패배했다고 게임을 관두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과 인간이 한 편이 되어 게임을 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상황을 전복시키는 것. 그것이 창의성이다.     

 

인간을 언제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한 공장의 부품으로 취급하거나 인건비로 등가시키는 자에게는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개발이 대단한 소식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 트렌드’로 포장된 그의 욕망일 뿐이다. 인간에게 패배감을 안기고 도태시키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다. 인간이다. 어떤 인간인가. 진작 폐기되었어야 할 약육강식의 논리를 추종하는 인간이다. 도태의 논리는 기술의 논리가 아니다. 기술 뒤에 숨은 탐욕의 논리일 뿐이다.     


미래교육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다. 아이들을 똑같은 출발선에 세우는 것은 답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주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서로 손을 잡고 동그란 원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한다. 출발을 시키고, 채찍을 휘두르고, 기준선에 도달하는 순서대로 서열화하는 일을 벗어 던지고 미지의 시간과 공간으로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권유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게임의 규칙을 바꾼 경험을 지니고 있다. 혁신학교를 세웠고,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십 년 전 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사이     


몇 년 전 학교에서 제자들이 불러주는 스승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찰나의 인생. 영겁의 시간 속에 아이들과 나는 촌각을 다투며 이 세상에 잠깐 나타난 동시대인이다. 내가 아이들의 스승이라면 그것은 단지 아이들이 아직 날개를 달기 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올랐을 때, 그들이 세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기억 속에 나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인생은 짧다.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죽음 앞에서 좀 더 현명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는 일부 기성세대를 향하여 탐욕을 멈추라고 일갈했다. 미래세대의 기회를 약탈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죽음이 헛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 이후에도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의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인생은 길다. 우리는 매일 죽고 또다시 태어난다. 하루의 끝과 시작 속에서 죽음과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배우게 된다.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온 우주가 있듯이 하루의 시간 속에 일평생이 담겨 있다. 바로 지금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나의 동료들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열고 희망을 만들어내자.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만 한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3월 13일 온실가스 감축 등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1) 2020년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 EIU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아시아 1위, 세계 23위로 발표한 바 있다.


2) OECD PISA 2018에서도 대한민국은 모든 과목에서 최상위권 성취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나라는 에스토니아와 캐나다 뿐이다. 


미래교육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다. 아이들을 똑같은 출발선에 세우는 것은 답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주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서로 손을 잡고 동그란 원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한다. 출발을 시키고, 채찍을 휘두르고, 기준선에 도달하는 순서대로 서열화하는 일을 벗어 던지고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권유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게임의 규칙을 바꾼 경험을 지니고 있다. 혁신학교를 세웠고,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십 년 전 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 이 글은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에서 발간하는「학부모신문」349호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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