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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Dec 18. 2020

법령 등에 의한 의무교육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교육과정 필수이수 규정 관련 법률 제정이 학교 현장에 미치는 영향 토론문

「교과과정 필수 이수 규정관련 법률 제정이 학교 현장에 미치는 영향 및 실태 조사에 대한 용역 결과 토론회」가 2020년 12월 18일(금)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서울특별시의회 서소문청사 제2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아래 글은 이에 대한 짧은 토론문이다.  


"먼저 오늘 이렇게 유익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서울시의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쁘신 와중에도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도출해내신 연구진들께도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세 분의 발제문을 읽으면서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법령 등에 의한 의무교육이 문제인 것은 시간적인 면도 있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진정한 가르침/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의미없는 시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교사의 자괴감이랄까 그런 것들이 선생님들을 더 힘들게 하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사실 핵심역량 함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과를 넘어 범교과 혹은 범교육과정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데 법령 등에 의한 의무교육이 이와 뒤섞이면서 정작 학교에서 의미있게 실천해내야 할 것들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교육기본법의 정신     


교육기본법은 교육에 관한 국민의 권리·의무 및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교육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먼저 교육의 이념과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의 이념과 목적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학습권이다.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다. 바로 “능력과 적성에 따라”라는 구절이다. 이것은 능력이 많을수록 차별적인 교육을 제공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차등적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인가? 

  

나는 후자의 해석이 옳다고 본다.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뒤에 따라 나오는 “적성에 따라”라는 말이다. 적성에 따라 다른 교육이 주어지는 것. 우리는 이것을 보통 맞춤형 교육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란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능력이 발휘되도록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적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기회균등의 원리가 두 번째 근거다.

  

헌법 제31조에도 명시되어 있는 균등의 원리에 따라 학습자가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간의 교원 수급 등 교육 여건 격차를 최소화하는 시책을 마련하여 시행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교육기본법 제5조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4항은 교사를 법령에 따라 학생을 교육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이를 소극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교사는 그저 지침과 규정에 따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지식을 전달하는 자가 된다. 문제는 교사가 이렇게 규정될 때 학생 역시 지식을 주입받고 암기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한 헌법 제31조와 교육이념–학습권-교육의 기회균등-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으로 이어지는 교육기본법의 서술은 “법령에 따라 학생을 교육”하는 일의 엄중함을 말해준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과 방향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과 ‘학습 경험의 질 개선을 통한 행복한 학습의 구현’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다: ① 인문·사회·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 교육을 강화한다. ②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는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③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과정을 마련한다. ④ 학습량을 적정화한다. ⑤ 교육 내용, 교수·학습, 평가가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⑥ 학교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고 현행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개선한다. 

  

위에 나열한 여섯 가지 개정의 기본 방향은 대체로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핵심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과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학습량을 적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핵심역량을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과 교육을 포함한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총론의 핵심역량이나 각론의 교과역량을 함양하려면 기존의 성취기준의 수를 실질적으로 줄이는 것을 포함하여 양적 학습에서 질적 학습으로 학습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 자아정체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진로에 필요한 기초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관리 역량

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처리 역량

다.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 사고 역량

라.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심미적 감성 역량

마.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하는 의사소통 역량 

바.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역량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범교과 학습 주제 교육’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범교과 학습 주제를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등 교육 활동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다루도록 하고, 지역사회 및 가정과 연계하여 지도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교과 교육과정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범교과 학습 주제를 교과 내에서 통합적으로 지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즉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네 가지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여섯 가지 핵심역량을 길러야 하며 이는 교과(군)과 창의적 체험활동 등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림 1] 교육기본법과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육과정 체계



무엇이 문제인가     

  

그럼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이 학교교육과정 운영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이 무엇이며, 교과, 창의적 체험활동 및 범교과 학습 주제 교육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위의 [그림 1]을 보면 학교교육과정 어딘가에서는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을 다뤄야 하는데, 이것이 전국 공통의 사항으로서 각 학교교육과정에 시수나 횟수 등으로 강제하려면 국가교육과정의 영역 안에서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과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정의된 범교과 학습 주제 교육이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는 국가⋅사회적인 요구에 따라 사회적경제, 동물복지 및 보호, 노동인권, 한자·정보통신활용교육 등 학습 주제가 계속 확대된 데다가 비슷한 사유로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이 확대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범교과 학습 주제 교육의 근본 취지가 무엇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셋째, (위의 문제제기와 연결되는 지점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제시된 범교과 학습 주제 교육은 단지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제시되었던 39개 범교과 학습 주제를 추가, 삭제, 통합하여 10개 주제로 범주화한 것일 뿐, 이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 및 방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넷째, 학교의 여건이나 학생의 발달단계에 대한 고려 없이 각종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고시 및 기본 계획에 의하여 수업시수를 정하는 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과 성격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은 교육과정의 질 관리를 위하여 주기적으로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관한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교육과정 개선에 활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과 지원 체제의 적절성 및 실효성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고도 적시해 놓았다. 나는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이 고시된 이후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의 문제와 관련하여 교육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실질적 노력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물론 교육부나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국가교육과정과 범교과학습주제의 연결맵 작업 등의 시도가 있었으나 이것이 과연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은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으로 인한 학교 교육과정 과부하 및 파행운영을 방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가장 근본적인 방안으로서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의 개정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의무(필수)교육이 생산될 때 학교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사회부총리이기도 한 교육부 장관이 조정에 나서야 한다.  


둘째,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고시 및 기본 계획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법적 근거도 없이 시행되고 있는 의무(필수)교육을 정비해야 한다. 하나만 예로 들어보자. 교육기본법 제17조의 5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생 및 교직원의 안전을 보장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실시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책이라는 것이 뭘까? 고작 관련 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회라는 곳에서 기본계획이라는 문서나 만들어서 학교에 안전교육을 실시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과연 본질적인 대책일까? 


셋째, (위의 논리의 필연적 귀결로서) 차기 교육과정 개정에 있어서 범교과 학습 주제 교육을 포함하여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 부분을 확실하게 정리해 주어야 한다. 현재 학교에 부과되어 있는 의무(필수)교육을 범교과 학습 주제에 포함시키고 범교과 학습 주제를 학생들의 발달단계 및 핵심역량과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의미와 목적을 상세하게 규정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국가교육과정을 개정한 핀란드의 경우 학생들의 역량을 구현하기 위해 ‘현상기반학습’을 제안했다. 핀란드의 학교에서 ‘현상기반학습’이 구현되는 모습과 대한민국에서 ‘범교과학습주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너무나 다르다. 교육계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현재 다문화교육이라는 게 너무 웃긴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 혹은 한 학기에 한 번 두 시간에 특별강의시간으로 다문화이해교육을 진행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제가 그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면 굉장히 발가벗겨진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 내가 누군가에게 이해받아야 하고 친구들한테 이런 주제로 이야기되어야 하지?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미 다문화이고 이것을 존중하고 배움으로써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를 고민한다면 특별히 두 시간 특강 가지고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작물이 심긴 텃밭에서 다른 게 나쁜 게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더 풍요롭고 재미있고 이것들이 가지는 가치를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다문화 교육의 하나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라북도 진안의 청년농부 배이슬님의 이야기다. 몇 해 전 그녀는 베트남 여행을 갔다가 베트남 흰가지 씨앗을 얻었다. 우리나라 가지와는 모양도 색깔도 다른 베트남 흰 가지를 보고 아이들이 “방울 토마토 같아요. 초콜릿 같아요”라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단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진 질문. 

 

“근데 맛있어요?” 

“아니 이슬은 아직 안 먹어봤어. 이슬이 베트남 갔다가 얻어 왔는데 너무 예뻐서 계속 심었어. 그런데 어떻게 먹는지는 몰라.”

  

그리고 뿌듯한 표정이 가득한 한 어린이의 말. 


“전 알아요! 먹어 봤어요!!”   

“어떻게 알아? 어떻게 먹어 봤어?”

“우리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거든요.”

  

위의 수업사례는 어떤 교과에 해당하는 걸까? 창의적 체험활동일까? 아니면 범교과 학습 주제 교육일까? 정답은 무엇이든 상관없다가 아닐까? 중요한 것은 배움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국가 교육과정의 대강화는 학교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부여하여 삶에 기반한, 그래서 예상치 못한 진정한 배움을 일구기 위함이다. ‘법령 등에 의한 의무(필수)교육’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려는 면피용 대책이 되지 않으려면 국가교육과정 체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토론회 영상 https://youtu.be/vEUei-MgL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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