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상헌 교사 문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광주광역시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던 배이상헌 교사는 2018년 7월∼2019년 5월 성평등 수업 과정에서 엘레노어 프리아트 감독 작품 『억압당하는 다수』를 상영했다. 이 영화는 성 역할을 뒤집은 '미러링' 기법으로 성 불평등을 고발하는 10분짜리 단편영화이다. 여성계에선 검증을 받은 영화였으나, 영상 속의 노출과 대사, 설정 등이 중학생에게 교육적으로 적합한가를 두고 논란이 제기 되었다. 이 영화를 본 학생들 중에서 일부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였고 광주광역시교육청은 성 비위 사건 매뉴얼을 토대로 배이상헌 교사를 직위 해제했다. (배이상헌 교사의 2020년 12월 현재 상황은 글의 말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배이상헌 교사의 직위 해제 상태가 이어지던 2020년 1월에 쓰여졌다. 여기서 나는 이 사건을 '배이상헌 교사 문제'라고 부를 것이다.
교수형의 패러독스
아주 먼 옛날 이상한 법을 시행하는 이상한 나라가 있었다.1) 이 나라에는 영토를 가르는 큰 강이 있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다리 한쪽 편에는 교수대와 재판소가 있었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누구나 4명의 재판관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법에 따라 판결을 받아야 했다.
만일 누군가 다리를 이용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가고자 한다면, 먼저 어디로 가며 무슨 일로 가는지를 맹세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면 건너가게 할 것이고, 거짓을 말하면 어떠한 사면도 없이 저기 보이는 교수대에서 교수형해 처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며 맹세하기를 “나는 저기 있는 교수대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재판관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사람을 그냥 통과시키면 그는 거짓을 말한 것이 되므로 법에 따라 그를 처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을 처형하면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이 되므로 법에 따라 처형해서는 안 된다. 즉 이 사람의 답변은 법을 시행하는 당국이 스스로 그 법을 어기지 않고는 법을 시행할 수 없게 만든다.
오류가 전혀 없지만 나중에 논리적 모순에 봉착하는 추론. 이것을 논리학에서는 패러독스paradox 또는 역설逆說이라고 한다. 상술한 패러독스는 ‘교수형의 패러독스’로 불리는 유명한 역설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제2권 제51장에 나온다. 돈키호테Don Quixote의 종자 산초 판사Sancho Panza가 이 나라의 통치자로 등장한다. 산초 판사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광주 배이상헌 교사 문제’를 바라보며 ‘교수형의 패러독스’가 떠올랐다. 이것은 낙서를 금지하는 낙서, 배지를 반대하는 배지와 비슷한 역설이다, 학생의 입장, 교사의 입장, 그리고 교육청의 입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각각의 범주 안에서는 진실이지만 그것을 진실로 인정하는 순간 다른 범주는 거짓으로 판명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설을 논하기에 앞서서 먼저 살펴볼 것이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
2019년 2월 교육부는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자문위원회, 여성가족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등의 자문과 시·도교육청 담당관, 교원, 학생 등의 의견을 수렴해 완성도와 현장 활용도를 높인” <학교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이하 매뉴얼)을 전국의 모든 학교와 교육기관에 배포했다.
매뉴얼은 성희롱·성폭력 사안 발생 시 2차 피해 예방과 피해자 보호, 가해자 조치, 재발방지 대책 등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고,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의 예시를 들었다. 예시로는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초·중·고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에 나온 21가지 행동이 제시됐다. 교육부는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을 “학교 내 구성원 간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강간, 추행, 성희롱 등 성을 매개로 일어나는 모든 신체적·정신적·언어적 폭력을 포괄한다”고 규정했다.
매뉴얼은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을 기술하고 각 유형에 따른 대응 방안 ‘사안 인지→초기대응→사안 조사→심의 및 조치결정→조치결과 이행’의 단계에 따라 정리했다. 또 학교와 교육청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사안의 은폐·축소 방지를 위해 피해자가 학생인 경우 수사기관 신고 의무를 이행하도록 안내했다.
특히, 매뉴얼에서는 학교 내 성희롱을 ‘학교 내 구성원 간에 성적(性的) 언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매뉴얼에서도 소개되고 있듯이) UNESCO와 UN Women(2016)에서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학교 관련 젠더 폭력’개념을 제시하면서 “젠더에 대한 규범과 고정관념의 결과로 행해지고 불평등한 권력의 차이에 의해 가해지는 폭력”으로 정의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진보적인 매뉴얼이 의도치 않게 진보적인 교사를 옭아매는 데 사용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광주의 한 도덕 교사가 도덕과 교육과정에 의거하여2)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이 수업에 사용된 영화 『억압당하는 다수』3)와 교사의 발언에서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꼈고 ‘사안’이 발생했다. 이후 진행된 내용은 알려진 바와 같다. 매뉴얼에 따라 ‘성 비위’를 이유로 직위 해제되고 경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교육권
교육권이란 교육받을 권리와 교육할 권리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교육받을 권리에 대하여 대한민국 헌법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어린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중 하나로서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필요한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할 권리는 교육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고 학문의 자유를 바탕으로 교육하는 자의 양심에 따라 가르칠 자유를 의미한다.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 근대 국가의 중요한 책무로 자리 잡으면서 근대적 학교제도가 ‘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발명된다. 그러나 국가가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 하여도 교육의 주체는 교사이지 국가가 아니다. 여기서 교사의 이중정체성이 발생한다. 교사는 공교육 형성의 주체인 국가에 의해 고용되었으나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교육과정을 구성・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으려면 교사의 자율적 실천과 전문적 판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즉 교사의 교육권은 학생의 교육권에 의해서 제한되지만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국가를 비롯한 사회정치적 세력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세 가지 입장
가. 학생의 입장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국가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영역들에 대하여 모든 학생들이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가 된다. 문제는 이번 사례 – 성윤리 및 성평등 – 와 같이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보수적인 정치적 의제와 문화적,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인하여 교육받기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이다. 이것은 교육을 받을 권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야기한다: ①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와 교육받지 않을 권리가 충돌할 때 국가/학교/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② 학생의 교육권과 국가/학교/교사의 교육권이 충돌할 때 누구의 교육권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또 하나의 쟁점은 이번 사안이 단순히 학생의 교육권을 넘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이 역시 두 가지 질문을 야기한다: ①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수업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② 이번 사안은 단지 교수법 상의 문제인가? 아니면 성별의 요소도 변수가 되는 것인가? 극단적으로 어떤 여성 교사가 같은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고 남성 학생이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꼈을 때 이것은 성희롱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남성 교사 대 여성 학생의 프레임에서만 적용되는 것인가?
나. 교사의 입장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한다고 하는 것은 모든 개인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누리기 위하여 인간적으로 성장·발달할 권리인 학습권을 가진다는 전제 하에, 국가는 그러한 인권과 교육을 받을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하여 공교육제도를 정비하는 동시에 진리교육, 인간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에 대한 부당한 지배를 배제하고 교육의 자유와 독립을 스스로 확보할 수 있도록 교육관련 당사자들에 의한 교육자치를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1966년 UNESCO ‘교원의 지위에 관한 정부간 특별회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기본적 인권의 하나임을 상기하면서 인류사회의 발전에 대한 교원들의 공헌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교원들이 이러한 역할에 합당한 지위를 갖도록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eachers를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교원의 전문직으로서의 자유에 대하여 규정한 부분을 살펴보자.5)
61. 교직은 전문직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학문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교원은 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학습지도보조자료와 방법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특별한 자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소정의 교육과정 테두리 안에서 당국의 원조를 받아 교재의 선정과 개선, 교과서의 선택, 교육방법의 적용 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 (The teaching profession should enjoy academic freedom in the discharge of professional duties. Since teachers are particularly qualified to judge the teaching aids and methods most suitable for their pupils, they should be given the essential role in the choice and the adaptation of teaching material, the selection of textbooks and the application of teaching methods, within the framework of approved programmes, and with the assistance of the educational authorities.)
62. 교원과 교원단체는 새로운 과정, 교과서 및 학습지도보조자료를 개발하는데 참여하여야 한다. (Teachers and their organizations should participate in the development of new courses, textbooks and teaching aids.)
63. 어떠한 장학제도는 그것은 교원이 전문직으로서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격려와 도움을 주도록 계획되어야 하며, 교원의 자유와 창의성 및 책임감을 감소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Any systems of inspection or supervision should be designed to encourage and help teachers in the performance of their professional tasks and should be such as not to diminish the freedom, initiative and responsibility of teachers.)
교육은 교사가 인간 활동을 통해 직접 자녀의 사회화를 돕는 것이기 때문에, 교사와 아동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속성인 주체성, 자주성을 보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단지 명령과 지배에 복종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교사에게서 주체적 인간을 양성하는 진리교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인간의 존중과 인격의 형성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타율적인 강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구체적인 교육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시와 명령을 받지 않아야 한다. 교사는 스스로가 자유인일 때에만 자유로운 교육을 할 수 있다. 만약 국가가 상세하고 엄격한 기준을 정하여 교사를 강제하면 할수록, 교사는 창의적 자주성이나 독립성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개입을 자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6)
일본 교육기본법 제10조(교육행정) 제1항에서도 “교육은 부당한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되며, 국민 전체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지고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일본 교육법학계의 통설에 의하면 다른 정치사회적 세력들에 의한 부당한 지배뿐만 아니라 교육행정에 의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교육지배 역시 그 제도적 강력함 때문에 부당한 지배가 될 수 있으며 각 사안에 대하여 교육의 자주성을 위배하는지 판정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7)
다. 교육청의 입장
교육주체 상호간의 교육권이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하는 것은 교육청의 중요한 역할이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국가 중심에서 시민사회 중심으로,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교육권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 교원, 국가 등 주요 교육주체의 교육권이 상호 충돌하는 경우의 조정원칙은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8) : ① 부모는 일차적인 교육주체이며, 부모의 교육권은 원칙적으로 교원 및 국가에 우선한다. 여기에서 우선한다는 의미는 교육권의 원천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② 학교교육에 관한 한, 국가가 독자적이고 광범한 교육권을 갖는다. 국가의 교육권 행사는 국민의 교육권의 실현으로 의제된다. 부모와 국가 간의 교육권의 충돌의 경우, 개별적인 경우마다 법익형량에 따라 판단한다. ③ 교원과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의 교육권이 교원의 교육권보다 우선한다. 교원의 교육권은 국가의 위임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④ 부모와 교원의 관계에서, 교육권의 원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부모의 교육권이 우선한다. 그러나 교원의 교육권이 국가의 위임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학교교육에서 부모와 국가가 원칙적으로 대등한 것처럼, 교원과 부모 사이도 원칙적으로 대등하며, 따라서 양자의 교육권 충돌의 경우, 개별적인 경우마다 법익형량에 의해 판단한다.
이번 사안을 교육권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교육청의 역할이 어떠해야 했을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교육자치와 학교자치가 논의되고 있는 최근 흐름 속에서 볼 때 교육청이 재량행위에 소극적이었던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사안이 교육권이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일단 매뉴얼이 존재하며 매뉴얼에 따라 ‘사안’으로 규정된 이상 행정기관의 재량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전히 의문이 떠오른다. 이번 사안이 교육청의 독자적 판단이 불가능한 기속행위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면 굳이 시청이 아닌 교육청이 맡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부의 매뉴얼이 문제인 것이라면 교육부가 답을 해야 할 것이다.
행위주체성
행위주체성Agency이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주체를 상정하지 않고 행위를 통해서만 행위주체가 발생한다는, ‘행위를 통해 구성된 비본질적 주체성’ 개념을 의미한다.9)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주체가 행위를 결정한다는 근대적 사유를 전복하기 때문이다. 남성/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주체에 의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수행되는 행위에 의하여 형성된다. 이러한 관점은 교사/학생의 수행에 대해서도 반성적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교사/학생 개인에게는 자율적인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사회적 권력 관계와 지배적인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행위주체성을 발휘하는 주체Subject라고 여겨지는 각 개인들도 기실 사회에 편재한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에 의해 구성된 자신의 주체성Subjectivities을 무너뜨리는 지속적인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10)
행위주체성이라는 개념은 OECD 교육 2030: 미래 교육과 역량 프로젝트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현재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인 2030년 무렵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핵심역량에 대한 탐색 속에서 등장한 학생의 행위주체성Student agency은 학생들이 학습의 과정에서 미래의 목표에 대해 예측하고 심사숙고하며 비판적 사고와 함께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학생들은 스스로 계획을 세워 행동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행동을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펼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하면서 키워야 한다. 따라서 학생의 행위주체성은 학습의 과정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동시에 학습의 결과 도달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은 종종 교사나 교과서가 대답할 수 없는 현실 문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가 모든 것들을 가르쳐야한다거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교사나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이 마주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학생의 자기주체성은 관계적인 것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적 맥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교사의 행위주체성Teacher agency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교육청의 수행 역시 행위주체성의 관점에서 반성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행정행위로서의 기속행위와 재량행위의 범위에 대한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학교의 변화를 위해 교육청이 무엇을 관리・감독할 것인가 보다 교사들의 행위주체성이 발현될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장학獎學’의 정의가 되어야 한다. 교사 자신들의 교수 실천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문화, 학교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문화를 오롯이 교사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폭증하고 있는 학생/학부모의 민원에 대해 교육청이 오직 매뉴얼대로 처리하겠다고 한다면 학교 역시 그러한 관행을 수용할 것이며 이에 대한 부작용은 고스란히 교육청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번 사안은 교육자치 및 학교자치가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지 말해준다. 권한의 배분은 하방을 지향해야 한다. 그 종착지는 당연히 학교다.
마치며
우리는 ‘광주 배이상헌 교사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배이상헌 교사에게는 너무나 잔혹한 2019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와 그를 지지하는 동료들의 수행이 하나의 교육적 교훈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못된 바람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배이상헌 교사를 비롯하여 성평등을 추구하던 다양한 그룹들에게 이번 사태가 ‘잔혹극’으로 각인되지 않으려면 역지사지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헌법 제31조 제4항을 수호하는 것은 이처럼 어렵다. 그러나 결말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우리는 담대하게 갈 길을 가야한다.
“내가 보기엔 나한테 그대를 보낸 그 재판관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될 것 같소. 그자를 처형하는 이유나 그자를 사면하는 이유가 저울에 똑같은 무게로 달리니 그자를 자유롭게 지나가게 하라고 말이오. (중략) 이는 내 생각으로 말한 게 아니라, 내가 이 섬으로 통치하러 오기 전날 밤에 내 주인 되시는 돈키호테 나리께서 주신 많은 교훈들 중 하나인데 그게 문득 내 머리에 떠올랐지. 그건 판단을 내리기가 애매한 경우에는 자비 쪽으로 가서 자비에 호소하라는 교훈이었소.”
산초 판사는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어떤 교훈을 구했다. 교훈은 이번 사안의 진행 과정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우리는 스스로 자율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판단은 개인 또는 개인이 속한 집단이 내린 기존의 판단의 완결성을 유지하는데 이용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다. 판단을 중지하고 교육 주체들 사이의 상호연결성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가운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덧
이 글을 2020 전국참실대회 학교학 분과에서 발표했었다. (그 자리에 배이상헌 선생님도 계셨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알다시피 그 사이에 코로나19가 있었다. 인간의 탐욕과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이 이어졌다.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이 왔다. 기록적인 장마가 쏟아졌다. 뒤늦게 기후변화에 대한 자각과 기후위기 선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코로나가 잦아들자 축배를 들기 시작했고 어디선가는 방정맞게 '코로나 시즌2'를 외쳤다.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고 엉겁결에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년의 시간을 삼켜버린 지금,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는 배이상헌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서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해서 외치고 있었다. 위의 글을 쓸 당시 "너무나 잔혹한 2019년"이라고 말했으나, 그 이후로 1년이 더 흘렀다. 선생님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으리라.
2019년 광주광역시교육청이 배이상헌 선생님을 직위해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후 사건을 수사해온 광주지방검찰청은 2020년 8월10일 제기된 범죄 사실들에 대해 모두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광주광역시교육청의 판단은 달랐다.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나는 이번 결정이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박탈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법률적 판단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교육청의 결정이 교육기본법이 명시한 교육의 전문성 및 유네스코에서 규정한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를 침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는 배이상헌 교사 한명의 개인적 고통과 불행을 넘어 교직사회 전체에 매우 잘못된 교훈을 줄 수 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을 비롯한 광주의 교육공동체가 지금이라도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2014). 돈키호테. 열린책들.
2) 권혜경(2020). 도덕과 교육과정의 성평등교육. 2020 참교육실천대회 학교학분과 토론문.
3) 이 영화를 제작한 엘레노어 프리아트는 한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디, 의미 없는 싸움을 멈춰주세요. 대신 차별과 싸우세요. 여성들을 희롱하는 것에 대항해 싸우세요. 여성을 향한 폭력과 성차별에 대항해 싸우세요. 강간의 문제와 싸우세요. 하지만 당신에게 성차별과 성희롱에 대한 정보를 주고자 했던 사람과 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이야말로 당신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분들이니까요.” 오마이뉴스 2019년 8월 10일자 <안녕하세요, 성윤리로 물의 빚은 그 영화의 감독입니다> 참조.
4) 신현직(1999).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의 법리. 교육법학연구 제11호.
5)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는 다음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portal.unesco.org/en/ev.php-URL_ID=13084&URL_DO=DO_TOPIC&URL_SECTION=201.html 아울러,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 국문파일도 첨부한다.
6) 정용주(2008). 헌법에서 교육의 전문성에 관한 논의.
7) 신현직(1999). 같은 글.
8) 양건 외(2003). 교육주체상호간의 법적 관계: 교육권의 갈등과 그 조정. 한국교육개발원.
9) 주디스 버틀러(2008).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10) 김정윤(2019). 교사 행위주체성에 관한 체계적 문헌 조사와 지원 방안 탐색. 교육문화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