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역사학의 시간과 지질학의 시간은 다르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고대, 중세, 근대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역사학의 시간 개념이라면 지구를 중심에 놓고 대(era), 기(period), 세(epoch)로 구분하는 것은 지질학의 시간 개념이다. 지질학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지금 신생대 4기 홀로세(Holocene)라는 시간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국제지질과학연맹 산하 국제층서위원회에서 지질연대에 인류세를 도입하는 문제를 심사숙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세(Anthropocene)란 2000년 2월, 오존층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제안한 것으로 지금 이 시대는 인류가 지질학적 흔적을 남길 정도로 자연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게 된 시대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세의 지질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최고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합성유기화합물, 플라스틱, 방사능물질, 콘크리트 등이 인류가 미래에 남긴 흔적이 될 것이다.
2020년 12월 <네이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를 이끈 론 밀로 박사는 인류가 생산하거나 건설한 인공물의 무게를 계산한 결과 약 1.1테라톤(1조1000억톤)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자연 생물의 총 무게는 1테라톤에 그칠 것으로 봤다. 인공물의 무게가 자연 생물보다 무거워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연구팀은 "플라스틱만 해도 지구상 모든 육지·해양 생물의 질량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태평양 한복판에는 우리나라 면적의 7배가 넘는 거대한 인공 쓰레기 섬이 만들어졌다.
지난 10월 28일 단국대학교부설통합과학교육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2022 글로벌 혁신 컨퍼런스의 주제는 ‘행복, 지속가능성 그리고 모두를 위한 변혁적 교육’이었다. 인간의 행복과 지속가능성은 깊은 연관을 가진다. 특히 관용성과 친환경 행동이 결합될 때 ‘지속가능한 행복’을 창출할 수 있다. 원래 우리 선조들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생태적 세계관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소유냐 존재냐. 가벼운 삶, 존재만으로 충만한 삶이 필요하다. 마침 11월 넷째 주 금요일은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다. 이날 SNS에 #BuyNothingDay 해시태그를 공유하자.
위 글은 단대신문 1497호(2022년 11월 9일 발행)에 개재된 글입니다.
http://dknews.dankoo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