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지속가능성 그리고 모두를 위한 변혁적 교육
친환경행동과 행복의 양립 가능성 연구는 생각보다 어려운 주제입니다. ‘친환경행동’이라는 개념은 매우 직관적이어서 어떤 행동 사례를 제시하고 그것이 친환경적인지 반환경적인지를 구별하게 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매우 높은 일치율을 보일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개념 역시 가치지향적으로 접근한다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광범위한 합의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친환경행동과 행복의 양립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산업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친환경행동과 행복이 같은 무게를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반면에 친환경행동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정도로 인식됩니다. 따라서 친환경행동과 행복의 양립 가능성을 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두 가치를 동일선상에 올리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미숙 박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당신은 희생해야 한다”는 2019년 6월 3일자 <The New Republic>을 인용하면서 발제문을 시작합니다.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포기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합니다.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것이 반드시 개인의 ‘희생’과 ‘포기’를 전제로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도 친환경행동을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친환경행동을 하는 일이 오히려 행복을 증진시킬 지도 모른다라는 문제제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색가 혹은 실천가의 널리 알려진 문장 하나를 소개합니다.
요컨대 나는 신념과 경험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숲 생활의 경제학」 102쪽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의 저작 『월든』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말하는 “소박하고 현명한 생활”이 이 연구에서 말하고 있는 친환경행동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미숙 박사의 연구는 소로우의 신념과 경험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래와 같은 연구의 가설이 이를 말해줍니다.
o 친환경행동과 행복은 양(+)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
o 검소성은 친환경행동에 양(+)의 영향을 미칠 것이다.
o 관용성은 개인의 행복에 양(+)의 영향을 미칠 것이다.
o 물질성은 개인의 행복에 음(-)의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연구의 주요 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행복(Happiness), 친환경행동(Environmentally friendly behavior), 그리고 가치관으로서 검소성(Frugality), 관용성(Generosity), 물질성(Materialism). 그런데 저는 여기서 친환경행동의 범주에 대하여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이 연구는 이정석·강택구·조일현(2018)의 연구에 근거하여 친환경행동의 예시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 일회용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음
- 물을 절약하기 위해 양치컵 사용, 세숫물 받아쓰기, 물 잠그기 등 생활화
- 가정 내 대기전력 줄이기를 생활화
- 환경보전에 도움이 되는 상품이 있다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구입
- 조금 비싸더라도 환경보전을 위해 유기 농산물을 구입
그러나 이 예시에 B-M-W(Bicycle&Bus-Metro-Walk) 등 교통에서의 친환경행동,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페스코(Pesco)-락토오보(Lacto-ovo)-오보(Ovo)-락토(Lacto)-비건(Vegan)으로 이어지는 더 나은 식습관으로서 친환경행동, 그리고 패스트 패션에 대한 반성으로서 슬로우 패션을 추구하는 친환경행동 등 더 넓은 범주의 친환경행동이 포함된다면 더욱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결론에서 개인의 주관적 행복과 친환경행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인으로서 관용성(Generosity)이 제시된 것에 주목합니다. 서미숙 박사는 관용성이 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삶을 기꺼이 선택하며 더 많이 공유하고 상대방에게 미칠 수 있는 유익한 영향을 더 많이 고려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선행 연구를 통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더 관용적이며 타인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사람일수록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최근 들어 ‘기후우울’을 겪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기후우울’은 인류가 결국 기후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실망감과 좌절감에서 비롯됩니다. 실제로 올해 2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공개한 ‘제6차 평가보고서’ 제2실무그룹(WG2)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 등 젊은이들이 더 높은 기후우울을 겪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후우울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 연구는 친환경행동 그리고 친환경행동과 행복의 연결고리로서 관용의 확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작가 모리마치 나가코가 쓴 그림책 중에 『고양이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커다란 프라이팬이 간판을 대신하고 있는 이 레스토랑은 특이하게도 손님이 텃밭에서 음식 재료를 직접 수확해 와야 합니다. 자신이 먹고 싶은 채소를 바구니에 먹을 만큼 담아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로 가면 솜씨 좋은 고양이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동화입니다. 요리사는 음식 재료를 직접 들고 온 손님들에게 감사함을 느낄 것입니다. 손님들은 이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는 요리사에게 감사함을 느끼겠죠. 우리에게는 이런 삶이 필요합니다.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내 곁의 동료를 위해 소박하지만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차려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학교를 넘어 살아 있는 일상이 필요합니다. 관용과 행복, 이 두 바퀴가 함께 돌 때 우리의 친환경행동은 지구, 아니 나와 당신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단국대학교부설통합과학교육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2022 글로벌 혁신 컨퍼런스 <행복, 지속가능성 그리고 모두를 위한 변혁적 교육>의 토론문으로 발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