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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Feb 04. 2023

교육의 지동설

인간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듯이,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된 근대 교육 체제 역시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생물 전체를 포괄한는 개체individuum와 대비하여 개인individual은 인간의 특권적 지위를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를테면 1982년 발효된 캐나다 권리 자유 헌장Canadian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s에는 “모든 개인은 법 앞에서 그리고 법 아래에서 평등하며 차별 없이 법의 평등한 보호와 평등한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1)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여성, 원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 범주가 인간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법의 보호와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2006년 천성산에 사는 동식물을 대표하는 도롱뇽과 지율스님 등 ‘도롱뇽의 친구들’이 ‘천성산 원효터널 착공금지 가처분 신청’ 일명 ‘도롱뇽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법원은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뉴질랜드 정부는 2017년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요청을 수용하여 팡아누이강의 권리를 인정한 ‘팡아누이강 청구권 합의법’을 제정했다.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구현한 나라는 에콰도르다. 에콰도르 정부는 2008년 “생명이 재생산되고 발생하는 자연은 생명주기, 구조, 기능 및 진화 과정의 유지 및 재생에 대해 완전한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 공동체, 민족 및 국가는 자연의 권리를 집행하기 위해 공공기관에 요청할 수 있다”는 문장을 에콰도르 헌법에 명시했다.

  

지각 있는 모든 존재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 애쓴다. 그들의 ‘잘삶wellbeing’을 위한 노력은 생명현상으로서의 경이를 넘어 숨을 쉬는 존재에 대한 경외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도대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누군가에게 희생되는 삶이나 누군가의 희생으로 연명하는 삶이나 모두 좋은 삶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OECD 교육 2030: 미래교육과 역량」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모든 학습자가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개인과 공동체, 지구의 잘삶에 기초한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말한다.2) 개인을 넘어 공동체, 공동체를 넘어 지구의 잘삶을 교육의 목적에 포함시킨 것이다.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듯이,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된 근대 교육 체제 역시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근대 교육은 인간을 불평등한 세계의 최상위층에 위치시키고 비인간생명을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료가 아닌, 인간의 복지를 위한 자원으로 전락시켰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성찰은 의심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나는 (지각있는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깨달음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Sumak Kawsay (출처: http://telejornaisecriancasnobrasil.blogspot.com/p/sumak-kawsay.html)



1) Every individual is equal before and under the law and has the right to the equal protection and equal benefit of the law without discrimination. 

출처: https://www.justice.gc.ca/eng/csj-sjc/rfc-dlc/ccrf-ccdl/check/art15.html


2) “We are committed to helping every learner develop as a whole person, fulfil his or her potential and help shape a shared future built on the well-being of individuals, communities and the planet.” 




이 글은 월간 에세이 2023년 2월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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