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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Jan 01. 2023

목소리가 없는 것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창백한 푸른 점에 의존하고 있는 취약한 존재들에 대하여

2023년이 밝았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두 권의 책을 벗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독립연구자 박동섭의 철학에세이 『동사로 살다』와 영국의 정치학자 클라이브 폰팅이 쓴 『녹색세계사』다. 『동사로 살다』에는 일본 후쿠이특수학교에 다니는 중복장애아 마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체의 대부분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말도 거의 하지 못하는 마리는 야마시타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햄버거를 만든다. 사실 만드는 과정에서 마리는 자신의 의사를 표정으로 나타낼 뿐 손발을 직접 움직인 사람은 야마시타 선생님과 친구들이다. 저자는 묻는다. ‘마리는 과연 햄버거를 만든 걸까?’


박동섭, 『동사로 살다』 / 클라이브 폰팅, 『녹색세계사』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햄버거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누가 만들었을까? 햄버거를 만드는데 필요한 조리 도구들은? 이렇게 보면 야마시타 선생님과 친구들 역시 농부와 상인과 노동자의 조력을 받아 햄버거를 만든 것이다. 결국 하나의 요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리 중에서 햄버거를 선택한) 마리의 의지와 (마리의 마음을 읽어낸) 동료들의 공감능력 그리고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과 비인간존재의 조화로운 기여가 필요한 것이다.

  

『녹색세계사』에서 클라이브 폰팅은 인간이 아닌 비인간존재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볼 때 진보로 여겨졌던 변화들이 사실은 소수의 지배자들에게만 진보였을 뿐 지구라는 행성을 구성하는 인간-비인간 동맹의 관점에서는 착취와 파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특히, 남태평양에 위치한 이스터섬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터섬의 몰락은 인간 사회가 환경에 의존한다는 사실과, 돌이킬 수 없이 환경을 파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교훈이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표현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지구는 이스터섬과 다르지 않다. 이스터섬과 마찬가지로 지구에는 인간 사회와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 섬의 주민들처럼 인류 역시 지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2023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목소리가 없는 것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감 능력과 우리가 ‘창백한 푸른 점’에 의존하고 있는 취약한 존재라는 성찰이 아닐까?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생태적으로 좀 더 지혜로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 태양 반사광 속에 있는, 파랑색 동그라미 속 희미한 점이 지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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