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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Jul 29. 2023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급변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

함께 읽는 책 No. 39

파스칼 보니파스(2019), 『지정학 -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지정학이 서점, 도서관, 텔레비전 화면과 신문 지면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습격하고 있다. 이제 지정학이라는 단어를 모든 곳에서 보고 들을 수 있다. 아니, 모든 것이 지정학이 되어버렸다. 강대국 간의 경쟁, 학문의 전통적인 토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천연자원,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첨단 기술, 우주 공간과 극지방, 세계 스포츠 경기, TV 드라마, 여행, 사람들의 감정과 노동조합의 투쟁 그리고 종교, 폭동, 기아, 포도주, 대도시 주변 혹은 정당의 내적 재구성 문제까지 지정학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한 때 이데올로기적으로 나치즘과 너무 근접해 있다는 이유로 외면 받던 지정학이라는 단어는 이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상생활의 특정 분야에까지 출몰하고 있다."


- 파스칼 보니파스, 『지정학 -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5쪽


파스칼 보니파스(2019), 『지정학 -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지정학이란 무엇인가


프랑스의 파리8대학 유럽학연구소에서 국제관계와 지정학을 강의하고 있는 국제정치학자 파스칼 보니파스의 저서 《지정학,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가 가디언에서 출간되었다. 지정학이란 무엇인가? 여러가지 정의가 존재하지만 저자는 이브 라코스트의 정의를 으뜸으로 내세운다. 이브 라코스트는 지정학을 "영토를 둘러싼 여러 유형의 권력 경쟁을 연구하는 것, … 영토 내부의 잠재력에 따라 평가되는 역량, 그리고 영토의 외부와 점점 더 확대되는 격차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평가되는 힘"으로 정의하면서 "지정학이란 단어는 영토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지배력과 영향력의 측면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모든 것을 지칭하며 현 세계에서 다양하게 사용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경쟁이란 (국가 간의 경쟁뿐 아니라 정치 단체나 다소 불법적인 무장 세력 간의 경쟁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정치 권력 간의 경쟁, 크고 작은 규모의 영토를 지배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실제 경쟁을 말한다." 요약하면, 지정학은 "영토에 대한 권력 경쟁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1905년 최초로 '지정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은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과 웁살라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연구했던 요한 루돌프 셸렌이다. 그는 발틱해를 향한 러시아의 침략을 심각하게 우려하면서 "한 국가의 삶은 국경과 같은 물리 - 지리학적인 측면 이외에 4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경제 활동의 진원지, 민족적·인종적 특징을 가진 국민, 계급과 직업으로 대변되는 사회공동체 그리고 헌법·행정 측면에서의 정부이다. 이는 같은 힘의 5가지 요소로 평화로운 시기에는 협력하고 전쟁 시에는 싸우는, 하나의 손에 달린 다섯 손가락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학의 하위 학문으로 유기체 혹은 사회적 현상으로서 국가를 연구하는 지리정치, 경제정치(경제학), 인구정치(인구와 정치 조직 간의 관계), 사회정치(국가와 사회 간의 관계), 그리도 대중정치를 상정했다. 루돌프 셀렌에 따르면 국가는 유기체와 같아서 심각한 질병을 겪기도 하는데 지정학은 "국가의 취약한 부분을 파악하여 전략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듯이 지정학은 제국주의의 학문이자 나치의 이론적 배경이다. 이를테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카를 하우스호퍼는 나치 지정학의 선두에 섰던 인물로, 유럽이라는 공간은 독일에 의해, 독일을 위해 정비되어야 하며, 독일이 규모가 작은 국가들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독일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통제하고, 유라시아 대륙은 러시아가 통제하며, 동아시아는 일본이 통제하는 체제를 구축하여 (서유럽과 미국이 통제하는) 범아메리카 지역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대단히 황당무계하고 위험하며 사악하기까지 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지정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치 이론과 동일시되며 잘못 알려져 있던 지정학의 정치적 명예를 회복시킨 인물로 이브 라코스트를 꼽는다. 라코스트 덕분에 지정학은 더 이상 "특정 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 기획이 아닌,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지적인 학문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지정학이 필요한 이유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경쟁 구도에서, 그리고 소련의 몰락 후 미국의 일극체제 속에서, 그리고 21세기 들어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는 가운데에서 지정학이 과연 명예를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지정학이 냉전 종식과 함께 다변화, 다양화되는 국제사회의 문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틀로서 다양한 학문 분야를 뛰어넘어 일상생활에서까지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자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분쟁과 내전, 급격하게 재편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지정학이 있다고 말한다. 패권 전쟁으로 확대된 미중 갈등, 분열하는 유럽과 독주하는 미국, 강도는 약해졌으나 전 세계에서 고착화되는 테러리즘, 난민들의 무덤이 되어버린 지중해,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해 분쟁과 국제사회에서 외면받고 있는 아프리카의 내전까지, 지금 세계가 직면한 모든 문제들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지정학이라는 무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지정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의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듯이, 남과 북은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이며,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갈등, 이와 연결된 남중국해 문제도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에 이른 기후위기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있는 식량문제도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북한의 핵무장 역시 한반도의 평화와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매우 어려운 변수다.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영토의 넓고 좁음이나 자원의 많고 적음이 더 이상 지정학적 강점/약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드 파워'의 시대가 저물고 '소프트 파워의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대한민국에게도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그러니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기후위기, 핵위기, 경제위기 등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협하는 현실 속에서 국제사회는 진정으로 연대·협력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한민국은 세계 평화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세계 정세에 대한 냉철한 이해 속에서 우리가 지닌 능력과 한계를 명확히 자각하고 오직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우리의 오랜 염원을 이룰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현 세계의 지정학은 무엇인가? 국제관계란 어떤 것인가? 세계화로 인해 물리적 국경이 의문시되고 학문의 경계가 재평가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 오랫동안 국제 관계는 국가 간 관계라는 협소한 범위 안에서 인식되었다. 빈 라덴, 구글, FIFA, 국제 엠네스티, 튀니지의 시위자들, 이 모두는 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은 국제 무대에서 현실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다. 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 지리학, 사회학, 법, 경제 그리고 정치학 등 여러 분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정학'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용어가 되었으며, '국제관계'라는 말 대신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제 지정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 파스칼 보니파스, 『지정학 -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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