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영림중학교에 필요한 질문
매주 수요일 선생님들께 편지를 씁니다. 올 3월 영림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생긴 변화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뭔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그런 대화입니다. 단순한 한탄과 푸념일 때도 있고 구체적인 불만과 요청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보고', '회의' 등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의사소통이죠. 뭔가 찬찬히 저의 생각을 이야기할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편지'를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지난 화요일이었습니다.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와 『오늘의 교육』 76호 특집 「교사, 노동, 교육 불가능: 교사들의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라는 글을 읽다가 '연대와 협력'이라는 말에 꽂혔습니다. 그리고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하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선생님들께 드린 편지를 공유합니다. 우리 학교 만의 문제가 아닌 교육 현장 전체의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연대와 협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충격적인 에피소드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하나. 지난 겨울 영림중학교에서 교장을 공모했을 때 저 말고는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둘. 제가 심층면접을 위해 여기 계신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받은 질문 중의 하나가 지금 부장 자리 두 개가 공석인데, 교장으로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거였습니다. 셋. 나중에 들어보니 혁신학교를 지속하는 것도 교직원 투표에서 간당간당하게 이루어졌더군요. 한 표 차이였던가요? 혁신학교를 지속하는 것도, 교장과 부장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았던 학교. 그게 일 년 전 우리 학교의 모습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단순하게 말하겠습니다. 힘들어서. 혁신학교를 하는 것도 힘들고, 교장을 하는 것도 힘들고, 부장을 하는 것도 힘들고. 힘드니까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거죠. 제 말이 틀렸나요?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영림중학교가 해냈다는 것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도 있었지만 그 위기를 극복할 힘도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코로나 19 팬데믹이 영림 공동체에 두 차례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한 차례는 눈에 보이는 위기였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고 교사와 학생이 단절되었을 때, 교사와 학생을, 가르침과 배움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것이 첫 번째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영림중학교는 그것을 아주 멋지게 잘 해결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두 번째 위기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첫 번째 위기를 멋지게 해결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위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위기. 그것은 교사와 교사가 서로 단절되고 우리 사이에 균열이 만들어진 위기였습니다.
2023년 코로나가 없는 첫해를 보내고 있지만, 아직 바이러스가 완벽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림중학교 역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부족한 것을 보완하면서 그럭저럭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지만, 위기의 원인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정말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는가는 학교평가가 끝나야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영림중학교의 다양한 교육활동에 대하여 교사, 학생, 학부모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저는요, 주변 학교, 아니 서울 전역을 비교해봐도 우리 영림중학교가 교육과정의 다양성이나, 수업혁신의 진정성이나, 행정업무의 효율성이나, 복무환경의 자율성 등에서 결코 다른 학교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공동체 모두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렇게 자율적으로 그리고 헌신적으로 움직이는 학교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학교를 그리고 선생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우리 아이들이 착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결국은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재되어 있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학교의 ‘자율성’과 ‘민주성’이라는 가치를 ‘공동체성’이라는 가치와 잘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영림중학교는 자율성과 민주성은 잘 형성되었지만 공동체성은 다소 부족했다는 것이죠. 우리 영림중학교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 포용과 공존의 지혜, 연대와 협력의 기술입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우리 영림중학교에 필요한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제가 심층 면접 때 받았던 질문을 다시 꺼내어 봅니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저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어서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대와 협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새로운 바람: 세 가지 연대와 협력
그래서 저는 2024년을 준비하는 영림중학교 혁신학교 운영 TF의 목표를 명사적 표현으로서 ‘포용과 공존’ 그리고 동사적 표현으로서 ‘연대와 협력’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연대와 협력’은 다양한 양상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연대와 협력입니다. 이것은 종적 연대입니다. 고경력 교사의 경험/지혜를 저경력 교사의 역량/열정과 연결하는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교직의 성장체제를 구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학생에게 존경받는 교사연구자와 학교를 지원하는 교육행정가를 키워내는 일입니다. 끝까지 혁신학교를 지키는 위대한 평교사를 길러냄과 동시에 혁신학교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장학사와 교육연구사도 길러내야 합니다.
둘째는 교육의 회복탄력성을 위한 연대와 협력입니다. 이것은 횡적 연대입니다.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이 말해주듯, 어떤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교사의 교육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사를 보호하는 중층의 구조가 필요합니다. 학년부장을 중심으로 한 학년부서의 팀워크, 교감을 중심으로 한 업무부서의 팀워크, 그리고 행정실장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서의 팀워크가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때, 외부의 급작스러운 충격에도 학교는 쉽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교장은 긴급한 순간에 책임 있는 의사결정자의 역할을 합니다.)
셋째는 교육과정-수업-평가에서의 연대와 협력입니다. 아시다시피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깊이 있는 학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서는 ‘삶과 연계한 학습’, ‘학습 과정에 대한 성찰’ 그리고 ‘교과 간 연계와 통합’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교과, 창의적 체험활동, 범교과 학습주제를 아우르는 영림중학교의 고유한 학교 교육과정 – 소위 ‘영림교육과정’ - 을 함께 만들기 위해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할 것인가?” 이를 위해 우리는 ‘수업 연구의 날’을 좀 더 개선하거나,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를 활성화하거나, 다양한 ‘교직원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학교 #영림중학교
내년에 학교를 옮기시는 선생님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는 뜻이기도 하죠. 저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영림중학교에서 근무했었던 경력이 자랑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 혁신학교와 # 영림중학교가 선생님이 뽐내고 싶은 해시태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도에도 계속 영림중학교를 지키실 선생님들께도 부탁드립니다. 2024년의 보직교사 인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작년 12월 제가 들었었던 질문, “부장 자리가 공석이다.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또다시 저를 시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혁신학교 교장에게 부여된 인사상의 권한을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일에 온전히 쓰고자 합니다. 앞으로 남은 두 달, 영림중학교의 새로운 바람을 선생님들과 함께 신나게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