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완전한 동반자로 여기며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을까?
수학교과와 관련하여 민주시민교육적 관점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같은 고민을 한 고대 그리스의 한 철학자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그는 그리스 세계에서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 지 3~4년 후에 태어났다. 전쟁은 예상 밖으로 길었다. 전쟁은 그의 십대와 이십대를 관통했다. 스물 네 살의 청년은 결국 아테네의 패전과 델로스 동맹의 해체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국가政體, The Republic』는 아테네의 몰락과 그 후에 이어진 정치적 혼란 그리고 나름 기대를 품었던 민주파 정부 하에서 자행된 소크라테스의 처형을 목격한 플라톤Plato, BC 428/427~BC 348/347이 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다. 그것은 아테네적인 것의 복원을 꿈꾸며 만든 플라톤의 근본적 교육개혁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제7권에 수학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라고 번역하는 democracy는 그리스어 Demokratia로부터 파생된 말이다. 알다시피 Demokratia는 시민을 뜻하는 Demos*와 지배를 뜻하는 Kratos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적 관점에서 수학교육을 생각한다는 것은 시민들에 의한 국가의 지배, 즉 민주시민들의 자율과 자치의 역량을 기르는데 있어서 수학교육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 플라톤의 고민도 정확히 이 지점에 있었다.
mathemata
“그렇다면 교과들mathemata 중에서 어느 게 이런 힘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만 되지 않겠는가?”*
그리스어 mathemata에서 유래한 ‘mathematics’를 우리나라에서는 ‘수학數學’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mathematics가 수數만 다루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번역은 mathematics의 의미를 매우 협소하게 한정지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과들/학문들’을 의미하는 mathemata가 어떻게 mathematics의 어원이 되었을까? 플라톤이 『국가』에서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mathemata, 즉 교과들은 수론, 평면기하, 입체기하, 천문학, 음악, 그리고 변증법辯證法; dialektike*이었다. 당시의 천문학이 천체의 운행에 대한 규칙성을 연구하고 음악이 소리의 조화에 대한 규칙성을 연구하던 것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그리고 인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발상지에는 어김없이 수학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것들 대부분은 이제 역사책 속에서나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수학의 뿌리는 그리스에 닿아 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국가』에서 평면도형 다음에 회전체를 배워서는 안 되며 그 전에 다면체를 다뤄야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지금의 중학교 1학년 기하 단원의 전개와 일치한다. 탈레스Thales, BC 625/624~BC 547/546가 증명한 이등변삼각형의 성질은 중학교 2학년 기하 단원에서 배운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민주주의에 대한 두 가지 견해
고대사회에서,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직 그리스에만 민주주의가 존재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리고 르네상스Renaissance*와 함께 그리스의 정신, 정확히는 유클리드Euclid, BC. 365~BC. 275의 『원론Elements』으로 상징되는 그리스의 수학정신이 부활했을 때 민주주의 역시 근대 유럽에서 발전적으로 복원된 것을 상기한다면, 그리스의 수학과 민주주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지나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추론의 근거에 대하여 말하기에 앞서 미국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Myles Dworkin, 1931~2013이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서 소개한 민주주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인용하고자 한다.
“다수결주의 견해에서 민주주의란 다수의 뜻에 의한 정치다. 곧 보편참정권을 보장하는 선거를 통해 표현된 가장 많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정치다. 다수가 공정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시스템 상 다수가 소수의 이해를 묵살하게 되므로 소수에게는 불공평한 결정일 수 있다. (중략) 이와 대립하는 동반자 견해에서는 민주주의란 집단적 정치 과업에서 서로를 완전한 동반자로 여기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며, 따라서 다수결에 따른 결정은 완전한 동반자로서 각 시민의 지위와 이해를 보호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민주적이다.”*
서로를 동반자로 여기며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을까?
다수결이 아닌, “서로를 완전한 동반자로 여기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아테네적인 것의 복원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 『국가』를 비롯하여 플라톤의 많은 저작에서 소크라테스Socrates, ?~BC 399는 대화를 통하여 그 사람이 원래 알고 있던 지식을 상기해 내도록 돕는다. 이 방식, 즉 변증법을 교과서적으로 구성한 것이 유클리드의 『원론』이다.* 가정으로부터 결론이 참임을 이끌어내는 것을 증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정이 참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시 가정이 참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결국에는 더 이상 증명할 수 없는 명백해 보이는 가정에 도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정을 수학에서는 공리公理, axiom라고 한다. 『원론』에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공리가 나온다.
공리1. 모든 점에서 다른 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공리2. 유한한 직선이 있으면, 그것을 얼마든지 길게 늘일 수 있다.
공리3. 임의의 점에서 반지름을 갖는 원을 그릴 수 있다.
공리4. 직각은 모두 서로 같다.
공리5.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이처럼 누구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로부터 논증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의 수학정신을 집대성한 『원론』의 위대함이다.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한 주춧돌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쌓아가는 『원론』의 형식이야말로 가장 아테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클리드의 『원론』이 수학의 역사에서 아직까지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동반자 관점에서의 민주주의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합의한 공리 위에서 출발한다고 가정된다.*
물론 수학은 = 과 함께 ≠ 를 다룬다. ≠은 '다름'이 아니라 '같지 않음'임을 주목하자. 교실이 “과학적인 담론에 참여하는 공공장소이고, 학생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조율하는 꿈만 같은 장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용어로 바꿔 말하면 학생들을 의식화시키고 빨갱이 사상에 물들어 있다는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은 소크라테스를 잊지 말아야 한다. “차이점과 모순들을 제거할 수 없고 우리가 세상과 우리 자신을 바꾸기 원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그 차이점과 모순들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그리스의 수학정신인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로부터 논증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의 수학정신을 집대성한 『원론』의 위대함이다.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한 주춧돌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쌓아가는 『원론』의 형식이야말로 가장 아테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클리드의 『원론』이 수학의 역사에서 아직까지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동반자 관점에서의 민주주의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합의한 공리 위에서 출발한다고 가정된다
1)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맹주로 있던 델로스 동맹의 해체로 막을 내렸다.
2) 플라톤은 『국가』 7권에서 수, 도형, 비율, 운동을 규정성 인식의 보편적 기준으로 제시하면서 보편수학을 전개하고 있다. 이상인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 이제이북스, 2006, 314쪽 참조.
3) demos는 자유로운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지역 혹은 공동체 속의 구성원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복수적 의미의 시민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4) 플라톤 『국가・政體』, 박종현 역주, 서광사 2005, 521d.
5) “변증술적 탐구 방법만이 이런 식으로, 즉 가정들을 하나하나 폐기하고서,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리 자체로 나아가네.” 플라톤, 앞의 책, 533c. 변증법이란 이성적 주장을 통해 진리를 확립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두 명 이상의 사람들 사이의 담론(談論)이다. 비슷한말로 대화법, 문답법이 있다. 모순을 통해 진리를 찾는 철학방법이다. 변증의 방식은 정명제와 반명제를 사용하여 이들 간에 모순되는 주장의 합명제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논법이다. 위키백과 참조.
6) 플라톤, 앞의 책, 521d.
7)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재(re)탄생(naissance)을 의미하나 사실은 재평가 혹은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8) 로널드 드워킨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새로운 정치 토론을 위한 원칙』, 홍한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 175쪽.
9) 플라톤 학파에 속했고 플라톤의 철학을 신봉한 것으로 알려진 유클리드는 철학의 이론 정신을 수학 분야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상인, 앞의 책 284쪽 참조.
10) “그러면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종류’의 다른 한 부분으로 내가 뜻하는 것은 다음 것이라 이해하게나. 이는 ‘이성 자체’가 ‘변증술적 논변’의 힘(능력)에 의해서 파악하게 되는 것으로서, 이때의 이성은 가정들을 원리들로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밑에(hypo) 놓은 것(thesis)’들로서 대하네. 즉 ‘무가정의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원리(근원)’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들이나 출발점들처럼 말일세(후략).” 플라톤, 앞의 책, 511b.
11) 플라톤 사상의 수학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는 『원론』의 형식을 차용한 사례는 많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공리에서 출발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대표적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스피노자의 『윤리학』,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역시 원론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EBS 문명과 수학 제작팀 『문명과 수학』, 민음인, 2014, 68쪽 참조.
12) 루이스 래드포드 『사회기호학적 관점의 수학 교수・학습: 대상화 이론』, 권오남 외 옮김, 경문사, 2016, 57쪽.
13) 루이스 래드포드, 앞의 책 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