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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Apr 18. 2020

코로나-19 시대의 교육 2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3가지 키워드


2010학년도 한성여중 졸업생 윤OO 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벌써 10년 전이라니.. 당시 열 여섯 중학생은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과거를 생각하면 항상 부끄러움이 앞선다. 옛날 사진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면 어딘지 어설프고 낯간지러운. 그래서 그 시절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학생을 보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간지러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한다.




1.
2009년 겨울, 나는 집 앞 카페에 틀어박혀 (전국수학교사모임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수학과 교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우리교육>을 펼쳐놓고는, 협동수업에 대해 탐독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함께 읽던 책이 Thomas J. Sergiovanni가 쓴 <학교 공동체 만들기>와 사토 마나부의 책들이었다.) 내가 협동수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7년 우리학교의 수학과 수준별수업 시간강사로 모신 서OO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협동학습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지니신 그 분의 수업이 협동수업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Thomas J. Sergiovanni, <학교 공동체 만들기>



2.
2010년 모든 수업을 협동학습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모든 수업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촬영한 영상은 편집을 하여 수업자료(프리젠테이션 및 활동지)와 함께 블로그에 탑재했다. 관심있는 학생/교사들이 언제든지 복습/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윤OO은 그 해 3학년 6반 학생이었다. 모둠별로 앉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던, 종종 수줍은 표정으로 수학 문제를 들고 교무실을 찾던 학생이었다.



3.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나의 수업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교사의 가르침에 대하여 학생들이 우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은 어떻게 준비되는가? 진심을 다해 가르치는 다른 교사들의 열정이 병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교사의 수업을 이야기할 때 자주 무시되는 부분이다. 동료교사의 성공적인 수업은 나의 수업에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수업 실패와 동료의 수업 성공이 겹쳐질 때 이를 외면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성찰과 성장으로 바꿔내는 힘. 가르침이 배움을 불러일으키고 그 배움이 또 다른 가르침을 이끌어낼 때 우리는 이것을 학교문화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혁신학교에서 학교문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4.
어제 밤 아내가 식탁에서 동영상을 보며 피식피식 웃고 있길래 뭔가 하고 보니 어느 학교의 온라인 개학식 동영상이다.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패러디한 퍼포먼스였는데.. 선생님들의 협업이 웃기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전에 없던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의 아노미는 새로운 시도를 불러일으킨다. 옛날 같았으면 튀는 행동으로 손가락질을 받았을 만한 일들이 찬사를 받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교사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다.



5.
고작 이틀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을 보니 선생님 없이 수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누구는 디지털과 온라인이 시간과 공간을 단축시킨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반복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지금 학교와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복노동이 고스란히 기업의 빅데이터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교사의 눈빛과 음성과 제스쳐를 보고 들을 수 없다는 것은 큰 손실이다. (출석을 확인하기 위해 쌍방향 수업이 필요하다는 아메바급 멘트는 제발 없어지기를.) 그렇다고 쌍방향 수업이 더 낫다고 쉽게 단정짓기도 어렵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아이가 -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도 아니고 -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 벌 받는 것도 아니고 -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닌 듯 하다.



6.
아이들이 크면 지금 이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마도 기성세대가 무게 잡고 이야기하는 - 수업일수, 대학입시, 평가의 공정성 등 - 그 무엇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로 변장한 교장 선생님의 모습일지도. 코로나 이후의 만남을 기약하는 담임샘의 음성일지도. 기약할 수 없는 오프라인 개학날의 교실일지도. 거듭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사(의 마음)와 학생(의 마음)이 서로 연결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가에 있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학생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을킬 때, 그리고 학생들의 호응에 다시 교사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게 될 때 교육은 비로소 성공적이었다 말할 수 있을 있을 것이다.



7.
요즘 하늘이 맑다. 황사도 없고 미세먼지도 없다. “인간이 격리되자 가려졌던 지구 모습 복원됐다.” ‘코로나 시대의 역설이라   하다. 이러한 역설이 교육에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가르침과 배움의 본질에 집중할  있는 여건이 잠시나마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코로나가 극복되면서 빠르게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서 무엇인가 희망을 발견할  있다면 그것은 테크놀로지 탓이 아니다. (오해 마시라. 테크놀로지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테크놀로지 무용론과 테크놀로지 만능론은 동전의 양면이다. 똑같이 편협한 족속들의 잘못된 시각이다. 나는 스마트패드와 유튜브를 테크놀로지로 인식하면서 칠판과 교과서는 테크놀로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없다.) 나는 자율성, 실패가 용인되는 제도, 그리고 연결에 대한 욕망.   가지 키워드가 코로나 이후의 교육에 있어서 계속 성찰되어야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율성, 실패가 용인되는 제도, 그리고 연결에 대한 욕망.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코로나 이후의 교육에 있어서 계속 성찰되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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