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경계한다
1.
작년 파견나갔던 한 기관에서 '브라운 백 미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고든 브라운과 브로크 백 마운틴이 떠오르는(물론 영어로는 bag과 back이 다르지만 내 귀에는 같은 발음으로 들린다) 이 신선한 미팅의 의미는 회의에 참석하는 구성원 각자가 알아서 먹을 것을 봉투에 담아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사면 브라운백에 담아주지 않는가) 어떤 겉치레나 격의 없이 편안하고 실용적으로 회의에만 집중하자는 의미다.
그러나 점심시간까지 - 실무자가 기안해서 결재를 득한 - 브라운백 속의 식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대단하신 분의 일장연설을 듣는 것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듯 하다. 더군다나 소위 높으신 분들이 참석하는 중요한 회의에 브라운 백이 등장하는 것은 의전상 무리라는 시각이 훨씬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브라운 백 미팅이라는 것은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젊은 직원들이 선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따뜻한 카페와 샌드위를 먹으며 직원들의 교양도 쌓을 수 있는 일종의 전문적학습공동체모임을 칭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게 된다.
굳이 브라운 백 미팅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나?
실무자는 브라운 백 미팅이라는 것이 필요없을 뿐더러 브라운백 50개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더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정말로 고위공직자들이 슈퍼에서 자기가 먹을 것을 재활용이 가능한 브라운 백에 담아 그들만의 미팅을 하기를 소망해 본다. 그 풍경이 훨씬 멋지지 않은가? 이왕이면 실무자의 브라운백까지 하나 더 준비해 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2.
올해 들어와서,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뉴 노멀'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실천이 따라붙지 못하는 새로운 언어의 잦은 등장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새로운 표준'을 의미하는 뉴 노멀의 의도는 어렴풋이 알겠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몰고 온 충격이 크기 때문에 과거의 사회적 계약 상당수가 수정되거나 폐기될 것이라는 예측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속을 채우는 내용이지 단어 자체가 아니다. 아무리 뉴 노멀을 부르짖는다한들 뉴 노멀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컨셉 자체가 올드 노멀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첫째, 뉴 노멀을 말하기 전에 올드 노멀이 무엇인지 명확히 성찰해야 한다. 둘째, 뉴 노멀의 발화 주체를 전복시켜야 한다. 올드 노멀의 전달자들이 또다시 뉴 노멀을 외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뉴 노멀의 본질을 살펴야 한다. '노멀'이라는 것 자체가 계속 필요한가부터 따져야 한다. 뉴 노멀의 특징은 생태성, 투명성, 분권성 등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교육적으로는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 및 'AI 시대의 교육'이라는 두 가지 화두를 기초학력(또는 핵심역량)과 (생태시민, 세계시민, 민주시민을 포함한) 시민성이라는 그릇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가와 관련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