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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May 15. 2020

언스케일 너머의 미래

왜 탈규모의 교육이 탈규모의 경제와 다른가

함께 읽는 책 No. 20

헤먼트 타네자, 케빈 메이니(2019), 『언스케일: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


헤먼트 타네자, 케빈 메이니(2019), 『언스케일: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



탈규모의 경제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언스케일>은 우리 시대가 규모의 경제에서 탈규모의 경제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한다. 탈규모 시대는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가속화되고 있다. 물론 플랫폼은 두 가지가 추가로 결합되어야 한다. 하나는 ‘데이터를 집어삼킨 기계’, 즉 인공지능이며, 다른 하나는 수요자(소비자)로서의 군중이다.


앤드루 맥아피와 에릭 브린욜프슨은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에서 기계, 플랫폼, 군중이 각각 인간성, 제조업, 전문직에 대응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두 그룹을 대결적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되며 오히려 새로운 진보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기회는 누군가에게는 위협이다. 그것이 위기(危機)의 본질이다.


앤드루 맥아피, 에릭 브린욜프슨(2018),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언스케일 혁명은 ‘인간강화’ 뿐만 아니라 ‘인간잉여’를 불러올 수 있다. <언스케일>의 저자는 ‘기술이 인간에게 맞춰주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고용주 및 소비자의 관점이지 노동자의 관점은 아니다. 모두가 기업가가 된다는 장밋빛 전망은 언제든지 임시직 노동자의 양산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잉여’의 문제를 해결하는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탈규모의 노동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흔히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보편적 기본소득제도의 실시와 평생학습의 강화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첫째, 보편적 기본소득제도가 사회보장제도의 대체물로 사용된다거나 소득격차의 확대를 감춰주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평생학습이 노동의 탈전문화와 임시계약노동 양산의 이론적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의 입장에서 볼 때 ‘규모화’에서 ‘탈규모화’로의 전환은 ‘탈전문화’에서 ‘전문화’로의 전환을 의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전문성의 창출과 연결되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신자유주의의 토대에서 ‘기업가 정신’은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더라도 ‘법과 제도를 악용한 약탈 정신’으로 환원되고 말 것이다. 이보다는 ‘커먼즈’를 창출하는 ‘커머너’ 또는 세계를 변혁시키는 ‘체인지메이커’로서의 전문성을 고민해야 한다.



탈규모의 교육


이 책이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난제들을 염두에 두고서 ‘탈규모의 교육’을 다시 바라보자. ‘포디즘’으로 상징되는 규모화된 교육, 규모화된 학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한 교육, 자기계발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더 나은 학교를 만드는 일은 수십 년 동안 교육 부문의 지속적인 목표였다. 그동안 차터스클, 바우처 제도, 팀티칭, 공통 교과과정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이 모두는 하향식 규모화 접근법이었다. 정책 입안자들은 교사들이 개별 교실을 개선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개별 교실이 소속 학생들의 필요을 중심으로 기술을 활용해 학생 및 학부모와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최선의 수업을 교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칸 아카데미 수업 같은 인공지능 주도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각자의 속도에 맞게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 이때 교사는 국가에서 제시한 교과과정을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공부를 돕는 일종의 코치가 된다.
(중략)
교육 체계를 경제체제에 맞춰야 한다. 이전 세기에는 당대의 규모화된 공장 및 기업에 맞추기 위해 규모화된 학교를 구축했다. 교육 체계는 경제구조에 맞는 인재들을 양성했다. 오늘날의 학교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경제가 탈규모화되고 변화하는 데도 대다수 학교는 여전히 100년 전처럼 운영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다. 향후 10년 동안 정책 입안자들과 교육자들은 이 문제를 바로잡아 경제 변화에 맞춘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이 일을 회피할 길은 없다.

<언스케일> 280~281쪽


우선 두 가지 가정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첫째,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최선의 수업”을 말할 때 “최선”의 기준이다. 둘째, “교육 체계를 경제체제에 맞춰야 한다”고 말할 때 “경제 체제”의 종류이다. 저자가 말하는 최선의 수업이 학생과 (학생이 속한) 공동체의 삶과 연결된 수업을 의미한다면,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경제 체제가 기후위기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경제 체제를 의미한다면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1995년 5‧31교육개혁 이후 우리나라는 공적‧국가기반 접근부터 시장기반의 경제적 접근까지 폭넓은 스펙트럼 상에서 거버넌스, 교육과정, 재정, 리더십에 관한 상이한 교육담론이 각축해왔다. <언스케일>은 교육을 시장경쟁에서 벗어난 공공재로 보는 공적‧국가기반 접근을 규모화 시대의 산물로 단정 짓고, 5‧31교육개혁이 강조해 온 시장기반의 경제적 접근에 손을 들어주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교육자치 담론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국가주의적 획일성과 포디즘에 기반한 대량생산체제는 배격되어야 마땅하나 그 빈자리를 신자유주의가 차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문제는 여전히 공동체와 민주주의이다. 코로나-19 정국에서 대한민국이 전 세계적으로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은 공공재로서의 방역시스템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투명성이 (다른 국가에 비해) 역동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쟁과 효율의 기치 속에서 공공성이 압사된 미국이나 서슬 퍼런 일당 독재 속에서 민주적 투명성이 소거된 중국 - 코로나19 이후 G2의 추락을 전세계가 목격했다 - 이 대한민국과 극명히 대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탈규모의 교육은 탈규모의 경제와 다른 개념이다. 기술이 소비자의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학생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또한 인간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을지언정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다. ‘기술이 인간에게 맞춰주는 시대’는 그럴듯한 표현이지만 그럴수록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 역시 중요해질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알고, 부족함을 스스로 깨달으며, 부끄러움을 느낄 때라야 비로소 성숙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자. 교육은 만족스러운 소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 인간을 만드는 일이다.


덧.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의 미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일까? 책에서는 뭔가가 더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아 뭐라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본문에 제시된 학습앱 클래스도조와 살만 칸이 세운 초등학교 <칸 랩 스쿨>을 놓고 평가하자면, 클래스도조는 우리나라의 수준에서 그저 평범해 보인다. <칸 랩 스쿨>에 대해서도 책에서 묘사하듯 "인공지능 주도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다음 기사를 보라. 


https://www.home-learn.co.kr/newsroom/news/A/926



기술이 소비자의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학생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또한 인간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을지언정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다. ‘기술이 인간에게 맞춰주는 시대’는 그럴듯한 표현이지만 그럴수록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 역시 중요해질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알고, 부족함을 스스로 깨달으며, 부끄러움을 느낄 때라야 비로소 성숙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읽는 책 No. 20

헤먼트 타네자, 케빈 메이니(2019), 『언스케일: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

헤먼트 타네자, 케빈 메이니(2019), 『언스케일: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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