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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May 19. 2020

꽃과 메스꺼움

그 때야말로 꽃들이 하나 둘 거리를 채우기 시작할 것이다

함께 읽는 책 No. 21

나오미 클라인 외 지음, 비자이 프라샤드 엮음(2018),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나오미 클라인 외 지음, 비자이 프라샤드 엮음(2018).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자본주의 시대 기후 변화에 대한 단상』

나오미 클라인, 존 벨러미 포스터, 아미타브 고시 등이 글을 쓰고 비자이 프라샤드가 엮은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은 자본주의가 종식된 지구의 미래를 그리고자 한다. 이것은 비현실적인 바램인가?



메스꺼움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_AzlzFYmuy0



같은 크기로 신체가 절단된다.

수십 년을 함께 했을 땅으로부터

뿌리 채 뽑혀 나간다.


일렬로 도열한 길고 앙상한 신체들은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은은한 음악 소리 밑으로 들리는

날카로운 쇳소리는

낯설지 않다. 그것은


소, 돼지, 닭의 신체를 절단하던,

바로 그것의 소리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공포가

그 속에 녹아 있다.



집단학살


어제 독일에서 명금류가 사라진 이유를 소개한 글을 읽었어. 과학적 임업, 과학적 원예, 과학적 농업이 확산되면서 나무를 베어 냈고 명금류의 먹이 활동이 어렵게 되었고 둥지를 틀 자리가 사라졌대. 게다가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 공동목, 황무지, 관목, 낙엽도 제거되고 있는 형편이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차원이 아니라 힘없는 작은 생명들이 이토록 슬그머니, 그렇지만 거침없이 사라져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어. 눈물도 나더라.

- 로자 룩셈부르크, 「조피 리프크네히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917년 5월 2일. 투옥 중이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친구 조피 리프크네히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에서 로자는 “명금류의 소멸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집단 학살과 자연의 소멸이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한다. 이 글을 인용한 비자이 프라샤드는 “자연의 몰락은 (…) 인간과 자연을 자원으로서만 바라보는 자본주의 체계를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고 논평한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반복하여 벌어지는 집단 학살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동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화석연료의 진실은 매우 더럽고 유독하기 때문에 인간과 공간을 희생시킨다.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 역시 화석연료 희생 구역 중 하나다. 사진은 애팔래치아 산맥 웨스트 버지니아주 웹스터 카운티의 정상제거채굴 현장. 산봉우리를 제거하는 방법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정상을 파헤쳐 석탄 광산을 조성했다. 사진출처: http://san.chosun.com/m/svc/article.html?contid=2019082301600



비현실적 현실인가 현실적 비현실인가


나오미 클라인, 존 벨러미 포스터, 아미타브 고시 등이 글을 쓰고 비자이 프라샤드가 엮은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은 자본주의가 종식된 지구의 미래를 그리고자 한다. 이것은 비현실적인 바램인가?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광고 카피는 자본주의가 사라진 미래 세계의 모습을 그리기보다 기후 변화로 인해 파괴된 지구의 미래 모습을 그리는 경향을 보인다.” 비자이 프라샤드는 프레드릭 제임슨을 인용하여 세계가 종말을 맞을지언정 자본주의가 종말을 맞을 리는 없다는 신념이 우리 시대의 진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Steve Cutts가 2012년 유튜브에 올린 애니메이션 <Man>은 인간으로 인해 파괴된 지구의 모습을 그린다. 사진 출처: https://youtu.be/WfGMYdalClU 



그러나 현실주의에 입각한 이 신념을 그저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새로운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곧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 기후 변화에 대한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목표는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먼저 자본주의를 종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불어넣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대위법적 읽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이 책의 저자들은 두 가지 전략을 선택한다. 첫째, 타자화의 제도적 폭력을 규명한다. 둘째, 이를 위해 ‘대위법적 읽기’가 가능하도록 책을 구성한다. 두 가지 모두 타자화 연구의 거장 에드워드 사이드의 통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팔레스타인인(=추방당한 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타자화’에 대한 성찰을 유대인(=추방한 자) 나오미 클라인이 ‘-되기(devenir, becoming)’로 수용하는 것부터가 상징적이다. 명금류와 북아메리카 인디언으로부터 시작하여 육두구와 정향나무에 이르기까지 책의 전반을 흐르는 정신은 추방과 타자화라는 제국적 생활양식의 규명이다.


비자이 프라샤드가 서문에서 쓴 남태평양 카나리아 제도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나오미 클라인의 글에서 “익사하든지 말든지”로 변주되는데, 이러한 변주-대위법적 읽기-는 책을 읽는 내내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즉, 레바논 출신의 인류학자 가산 하게의 글 「민족 ‘타자화’와 환경 ‘타자화’의 관계에 대한 단상」에서는 ‘길들임의 일반화’로 표현되고 있으며, 인도 델리의 언론인 샬리니 싱의 글 「무장한 타자」에서는 한국 기업 포스코로 인하여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고 포스코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외부인’으로 간주되는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알면서도 행동을 취하지 않는 무모함


나오미 클라인은 「익사하든지 말든지: 더워져 가는 세계에서 자행되는 타자화라는 폭력」에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삭제된 환경운동을 ‘녹색식민주의’라고 규정한다. 말로는 환경보호를 외치지만 애팔래치아 산맥의 산봉우리가 잘려나가도, 남태평양 카나리아 제도의 섬들이 가라앉아도, “그러든지 말든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저항하지 않는 것. 바로 그 행위가 타자화를 제도화하는 행태이다.


알면서도 행동을 취하지 않는 무모한 행태의 이면에는 은밀한 또는 노골적인 형태의 제도화된 인종차별, 오리엔탈리즘, 권력이 더 적은 사람들의 목숨을 낮잡아 보는 권력자들이 손에 쥔 강력한 도구가 자리 잡고 있다.

- 나오미 클라인, 「익사하든지 말든지」 중에서


“인간의 상대적인 가치를 따져 서열을 매기는 이러한 도구 덕분에” 우리는 현상을 더욱 근시안적으로 보게 되고 분절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주체/객체, 주연/관객, 교육자/피교육자라는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계몽주의는 객관적 진리를 가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주체/주연/교육자의 진리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우리는 구조와 체계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사유해야 한다. 인간의 책임에 대하여 사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 경제, 교육을 분절적이 아닌 통합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삼차 자연: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설명하려 하지만 모두 헛수고. 벽은 듣지 못하고.
단어라는 허울 뒤에 숨은 수많은 암호와 부호.
태양은 병자를 위로할 뿐 새롭게 하지 못하고
맥락을 잃고 떠도는 슬픈 현실을 딛고
한 송이 꽃이 거리에 피어났다!

(중략)

트램, 버스,
강철 자동차의 물결 사이에서
색이 바랜 꽃.
경찰의 눈을 피해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완전한 침묵 속에 당신의 사업을 멈추게 하고
피어난 꽃.

(중략)

예쁘지 않아도 꽃은 꽃이다.
아스팔트, 지루함, 혐오, 증오를 헤치고 꽃은 피어났다.

- 카를로스 드루몬드 지 안드라지, 「꽃과 메스꺼움」중에서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맥락을 잃고 떠도는 슬픈 현실을 딛고 피어난 꽃. 지루함, 혐오, 증오를 헤치고 피어난 꽃. 그 꽃은 강철 자동차의 물결 사이에서 색이 바랬다. 아니, 색상이 없다. 하지만 진정한 꽃이다.


존 벨러미 포스터가 「제3의 자연: 생태학과 제국주의에 대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입장」에서 말하는 ‘삼차 자연’이 아마도 이 꽃과 같지 않을까? 우리는 결코 원시 자연 또는 역사 이전 자연 - ‘일차 자연’ - 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편 겉으로는 성찰하고 사고하는 자연을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적 생활양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차 자연’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박탈당한 자연으로부터 삼차 자연을 탐색, 발견, 발명 또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이 지닌 우연성의 힘을 모른다. 자연의 시간과 공간을 재배치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일방성과 타자화의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호하게 행동해야 하지만 성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언제부터인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용어가 “광범위한 혐오감을 설명하는 용어로 전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바보야, 문제는 자본주의야”라고 외친다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정향나무와 육두구가 국제무역의 중요한 산물이던 시절부터 터를 잡기 시작한, 문화적-물적-현실이다. 우리는 이를 하나의 담론 – 예를 들면 ‘인류세’라는 호명과 같이 - 으로 환원시킬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우리는 각자의 삶의 토대를 이루는 담론들을 생성하고 ‘-되기(devenir, becoming)’의 혁명을 통하여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그 때야말로 꽃들이 하나 둘 거리를 채우기 시작할 것이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정향나무와 육두구가 국제무역의 중요한 산물이던 시절부터 터를 잡기 시작한, 문화적-물적-현실이다. 우리는 이를 하나의 담론 – 예를 들면 ‘인류세’라는 호명과 같이 - 으로 환원시킬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우리는 각자의 삶의 토대를 이루는 담론들을 생성하고 ‘-되기(devenir, becoming)’의 혁명을 통하여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함께 읽는 책 No. 21

나오미 클라인 외 지음, 비자이 프라샤드 엮음(2018),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나오미 클라인 외 지음, 비자이 프라샤드 엮음(2018).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자본주의 시대 기후 변화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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