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적 삶을 위한 수학교육
수학, 사유의 언어
니콜라이 보그다노프-벨스키Nikolai Bogdanov-Belsky가 〈말로 숫자 세기Oral Counting〉에서 묘사한 러시아 농촌의 초등학교 수학 수업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검정색 나비넥타이의 정장 차림에 학구풍의 금테 안경을 낀 담임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몇 마디 말도 없이 칠판에 다음과 같은 수학문제를 적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선생님은 느긋하게 칠판 옆에 자리를 잡았다.
칠판을 응시하고 있는 어린이들은 고민을 시작했다. 선생님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말하는 어린이, 그 어린이가 뭐라고 말하나 궁금한 듯 쳐다보는 어린이, 그리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귓속)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도 보인다. 칠판 아래에는 네 명의 어린이가 서 있는데 왼 편의 두 명은 아직 문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고 오른편의 두 명은 암산에 들어간 듯하다. 맨 오른쪽에 있는 두 명의 어린이들은 서로 의논을 하고 있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정면에 위치한 두 명의 어린이다. 마치 신의 계시를 기다리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어린이는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뒤통수를 부여잡고 있다. 그리고 맨 앞에 있는 어린이는 거의 해답에 도달한 듯하다.1)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이라는 수학적 언어의 힘이다. 우리는 몇 가지 기호 – 덧셈, 나눗셈, 거듭제곱 - 로 표현된 이 수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수식을 러시아어와 힌디어로 각각 풀어서 쓰면 다음과 같다.
Найти квадрат 10. найти квадрат 12. найти квадрат 13. найти квадрат 14. найт и квадрат Наконец, разделите это значение на 365.2)
0 की शक्ति ज्ञात कीजिये। 11 की शक्ति ज्ञात कीजिये। 12 की शक्ति ज्ञात कीजिए। 13 की शक्ति ज्ञात कीजिये। 14 का वर्ग ज्ञात कीजिए। परिणामों का योग ज्ञात कीजिए। अंत में इस मान को 365 से भाग दें।.3)
수학은 사유의 언어다. 그래서 러시아어와 아랍어를 모르더라도 수학적 언어의 몇 가지 용법을 익히면 누구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수학은 유희의 언어다. 수학적 언어는 숫자와 문자 그리고 기호를 통해 일반 언어로는 보이지 않는 패턴의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10부터 14까지 1씩 커지는 다섯 개의 제곱수를 모두 더한 다음 한 해의 날수를 의미하는 365로 나눈 위의 수식은 명료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오직 먹고 살기위해서만 생각에 잠기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종류는 다양하며 우리가 특별히 수학적 사유라고 부르는 것은 오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러시아 농촌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나의 수학문제를 놓고 사색에 잠기는 모습은 인간의 오랜 수학적 사유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오직 인간만이 갖는 독특한 사회・문화적 현상, 즉 가르침과 배움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수학시간에 민주시민교육을 한다는 것
민주주의는 수학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인류가 창조해낸 무형의 산물.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 무모한 도전과 반복되는 실패. 그리고 아주 우연한 성공. 그러나 인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 그 우연한 성공에서 새로운 영감과 또 다른 열정들이 계속 이어져 왔다. 공동체 사이에서 합의된 규칙을 만들고 이를 제도화하여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 역시 수학적이다. 주어진 문제를, 제한된 시간 안에, 수없이 반복적으로 익힌 루틴에 따라 풀어내는 것이 수학의 본질이 아니듯, 이벤트처럼 때가 되면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깨어있는 시민에게 필요한 사유와 수학적 사유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4) 즉 우리나라의 교육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한 마디로 말하면 “민주 시민”이며, 모든 교육은 민주시민교육 이어야함을 의미한다.
수학 교과를 살펴보자. “수학과는 수학의 개념, 원리, 법칙을 이해하고 기능을 습득하여 주변의 여러 가지 현상을 수학적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태도를 기르는 교과이다. 수학 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수학의 규칙성과 구조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고, 수학의 지식과 기능을 활용하여 수학 문제뿐만 아니라 실생활과 다른 교과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세계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과 민주적 소통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5) 즉 수학을 가르치는/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시민교육이자 세계시민교육이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표 1]은 중학교 수와 연산 영역의 내용체계이다. 수학과 교육과정에서는 “수는 수학에서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실생활뿐 아니라 타 교과나 수학의 다른 영역을 학습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수의 연산은 수학 학습에서 습득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로, 이후 학습을 위한 기초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수와 연산을 익히는 것이 민주시민교육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삶으로서의 민주주의
그러고 보니 질문을 하나 빠뜨린 것 같다. 그것은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교육기본법과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시민’은 누구인가? 그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6)하는 시민이다. 표현이 너무 진지하고 엄숙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문장이 의미하는 진실은 ‘잘못을 바로잡고 정의를 실천하는 시민’이 아닐까 싶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의 역사나 개념을 배우는 민주주의교육을 넘어선다.
이것은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 박제시켜서는 안 된다. 타임머신을 타고 4・19의 시간, 5・18의 시간, 6・10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신성시하고 이상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현재성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다. 4년마다 찾아오는 국회의원 선거일이나 5년마다 찾아오는 대통령 선거일에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 정치심리학적으로 볼 때 외딴 섬에 고립되어 있는 – 국회의사당에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물론 아니다. 즉, 현재적 삶이 이루어지는 일상적 공간 속에서의 민주주의. 그것은 삶 그 자체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의 삶,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을 구현하는 삶 말이다.
핵심역량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삶은 구현하기 위해 교육과정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다시 초・중등교육과정 총론으로 돌아가 보자.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과 교육을 포함한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핵심역량을 초・중등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과, 범교과, 비교과를 가로질러 달성해야 할 공통의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총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섯 가지 핵심역량 –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 은 바로 뒤에 등장하는 문장으로 인하여 - 민주 시민을 길러낸다는 - 본래의 정신이 퇴색되어버리고 만다.
이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추구해 온 교육 이념과 인간상을 바탕으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함양하여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 초・중등교육과정 총론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 중에서
이건 뭐지? 핵심역량이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개념으로 둔갑해버렸다! 이 문장의 논리적 귀결은 ‘창의융합형 인재’다. 대한민국 헌법과 교육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인간상이 갑자기 ‘창의융합형 인재’로 축소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수학교과의 ‘성격’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습한 수학은 고등학교 수학의 학습 토대가 되고, 자연과학, 공학, 의학뿐만 아니라 경제・경영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및 체육 분야를 학습하는 데 기초가 되며, 나아가 창의적 역량을 갖춘 융합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수학의 지식을 이해하고 기능을 습득하는 것과 더불어 문제 해결, 추론, 창의・융합, 의사소통, 정보 처리, 태도 및 실천의 6가지 수학 교과 역량을 길러야 한다.
- 수학과 교육과정 <성격> 중에서
변혁적 역량
이는 OECD 2030 학습나침반에서 제시하고 있는 역량의 사용법과 너무나 다르다. OECD 2030 학습나침반에서 역량은 학습나침반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기제다. 나침반을 학생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학생이 향하는 곳이 ‘Well-being(잘 삶/좋은 삶/더 나은 삶)’이라는 것도 신선하다. (여기서 ‘2030’은 학생이 초‧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하게 되는 해를 의미한다.) 교육의 목적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학생이 주체적으로 그리고 동료, 교사, 공동체의 격려와 협력 속에서 ‘좋은 삶’을 향하여 떠나는 여정에 가깝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주체적인 배움의 여정. 그것이 교육과정의 본질이 아닐까?
학습나침반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지식, 가치, 기술, 태도의 네 가지 역량 범주 밖에 ‘핵심기초’가 있다. 우리나라의 ‘기초학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핵심기초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문해력과 수리력 뿐만 아니라 디지털·데이터 문해력과 건강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핵심기초의 둘레에 바로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이 있다. 21세기의 도전에 직면하여 학생은 개인의 Well-being을 넘어, 사회와 환경의 Well-being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니, 개인의 Well-being은 사회와 환경의 Well-being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학생들은 창의융합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가치 창출’, ‘갈등과 딜레마 조정’, ‘책임의식’이라는 세 가지 변혁적 역량을 습득해야 한다.
새로운 가치 창출 : 학생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고 할 때에는 혁신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질문을 하고 다른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고를 시도하게 된다. 이는 목적의식에 비판적 사고 및 창의성이 결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갈등과 딜레마 조정 : 지금처럼 상호의존도가 높은 환경에서 학생들은 모순적이거나 양립할 수 없는 논리나 요구들에 대해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하고, 복잡성과 모호함에 주눅 들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존중이 필요하다.
책임의식 :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학생은 (자신의 행동을) 심오하게 성찰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강한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학습나침반을 통해 우리는 수학교육의 두 가지 과제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핵심기초로서의 수리력이다. 이때 수리력을 단순히 수학교과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미래사회에 필요한 수리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속에서 교육과정의 큰 틀을 고민해야 한다. 성취기준을 하나 넣고 빼고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수리력의 확장된 개념으로서 디지털‧데이터 문해력을 어떻게 수업 속에서 반영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이는 곧 ‘세 가지 변혁적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수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제 더 이상 기존의 교과를 기본 베이스로 상정하고 그 위에 학생과 교사를 이리 저리 배치시키려 하지 말자.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학생과 교사의 자기주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준이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학생이 주체적으로 그리고 동료, 교사, 공동체의 격려와 협력 속에서 ‘좋은 삶’을 향하여 떠나는 여정에 가깝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주체적인 배움의 여정. 그것이 교육과정의 본질이 아닐까?
모두를 위한 수학교육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수학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교육과정 개혁의 목표는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그들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교육자들이 가르치도록 돕는 것”7)이라는 핀란드의 방향설정은 우리나라의 수학교육 개혁에도 유효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핀란드 교사 양성 교육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수학 학습에서 정서적인 측면이 중시된다. 즉, 수학에 대하여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갖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수학적 개념의 이해를 돕는 구체적인 학습 자료와 교육학적 수업모형을 중시한다. 셋째, 짝을 이루거나 소규모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협력적인 배움 속에서 이루어지는 추론과 문제해결을 중요시한다. 마지막으로 특수 학생을 비롯해 수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특히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학습장애와 난산증dyscalculia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수학수업이 민주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주장의 권위가 오직 ‘옳고 그름에 대한 증명’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수학에서는 옳으면 옳고 틀리면 틀린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면 판단을 유보한다. 반면에 수학은 능력주의에 기반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수학교육에서도 “누구나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완전히 발현시킬 수 있다”는 가정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가? 수학적 재능이라는 것을 선택된 자들을 위한 차별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학 상처’, ‘수포자’ 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핀란드 교육정책의 핵심 중 하나는 모든 학생이 양질의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특히 저성취자들이 겪는 학습상의 어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가급적이며 (초기 단계인) 1학년 시기에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중략) 학습자의 특별한 필요를 신속하게 인지할수록 학습 과정에서 더 나은 지원을 제공하고 미래의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 (기초교육법에 의해) 이러한 지원과정은 시간제 지원으로부터 특수교육 지원까지 3단계로 구분된다.
- 헤이디 크르쉬바키 외, <수학적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핀란드 수학교육>
래드포드Lewis Radford는 수학교육이 “공동체의 중요한 쟁점들을 수학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새로운 개개인을 창출하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인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학교에서 조장하고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양식과 지식의 생산 양식에 대하여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8)
그러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양식과 지식의 생산 양식”은 수학 교과서 속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 수학교과서가 천편일률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과서 검정 기준과 그것을 포괄하는 더 큰 범위의 암묵적 기준에 의해 매우 촘촘하게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으로서의) 수학적 엄밀성에 대한 강조와 정치적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무미건조한 내용 전개와 같은 것들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독일의 경우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교과서는 어떨까? 먼저 독일 베스트팔렌주의 종합학교Gesamtschule에서 사용하고 있는 10학년 수학교과서를 살펴보자. 학생들은 첫 단원에서 ‘생활비는 얼마인가?(Was koste das Leben?)’에 대하여 공부한다. 이 단원에서 학생들은 ① 총소득에서 순소득을 계산하기, ② 사회보장기여금의 중요한 개념들이나 집세 등을 다루며 퍼센트 계산 적용하기, ③ 연간계획을 세우기 위해 집세, 보험, 휴가, 신용카드, 운전학교 등록 등등에 드는 비용을 계산하기, ④ 적용과제에 나오는 원그래프, 상자 그림, 스프레드 시트 등을 심화하여 다루기 등을 배운다.
이 단원을 통해 우리는 독일사회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살펴볼 수 있다. 교과서는 직업에 따른 급여의 차이나 지역 - 구동독과 서독 – 에 따른 급여의 차이를 실제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수입에 맞춰 살아가기’ ([그림 4] 참조) 단원을 보면 통장에 잔고가 부족해 전기가 끊기는 상황이 등장한다.9) 교과서는 주장하지 않고 단지 데이터로 보여준다. 이를 성급하게 사회적 구조의 문제라거나 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해석과 문제제기는 수업의 내용이 되겠지만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진실을 대면하고 이에 대하여 교사와 학생 모두가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하나만 더 살펴보자. ‘데이터로 논증하기’ ([그림 5] 참조) 단원에서는 실제 삶 속에서는 너무나 현실적이지만 오히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내용이 나온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병가를 자주 쓰면 회사의 수익률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자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노동자들의 병가를 분석한 통계 조사다! 그러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대응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경영참여노동자대표협의회’를 통해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여기에서도 섣불리 사용자/노동자를 편들지 않고 그냥 하나의 현상으로 보여줄 뿐이다.
교과서는 주장하지 않고 단지 데이터로 보여준다. 이를 성급하게 사회적 구조의 문제라거나 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해석과 문제제기는 수업의 내용이 되겠지만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진실을 대면하고 이에 대하여 교사와 학생 모두가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이번에는 핀란드 7~9학년의 수학교과서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에 테우보 라우리놀리Teuvo Laurinoli 등이 쓴 『Laskutaito 7』, 『Laskutaito 8』, 『Laskutaito 9』가 번역되어 있다.11) 핀란드 수학교과서의 구성은 우리나라 교과서의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수학적 엄밀성의 측면에서 보면 허술해 보일 정도로 구성이 단순하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문제집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다만 서문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를 책의 독자로 상정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은 신선하다. 서문의 일부를 옮긴다.12)
종합학교 고학년 수학과목은 쉽지 않은 과목이지만, 여러분 모두 아래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잘 따라하면 누구나 수학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잘 듣고, 이해가 안 될 때는 질문하세요.
・숙제가 있으면 꼭 하세요. 직접 풀어봐야 수학실력이 늘게 됩니다.
・공책은 깨끗이 쓰는 습관을 가지세요. 자를 사용하세요. 필기가 깔끔해야 본인도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계산기는 필요할 때 절제해서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암산을 연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습만이 전문가를 만든다!
지은이들
아마 협력을 강조한다고 알려진 핀란드의 수학교과서에서 공책을 깨끗이 쓰는 습관을 가지라는 말을 들을 것으로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몇 가지 차이가 보인다.
먼저 7학년에서는 <식과 방정식> 응용편에서 ‘생태적 배낭’을 다루고 있다([그림 6] 좌측 참조). “환경 친화적인 개발을 통해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우리들이 현재 누리는 생활환경을 물려줄 수 있다. 우리가 환경보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가능하면 천연자원을 해치지 않고 만들어진 수명이 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다.”는 문장과 함께 ‘생태적 배낭’이라는 개념을 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8학년에서는 <백분율과 거듭제곱의 계산> 단원에서 ‘학교 학생회 선거’를 다루는데 놀랍게도 비례대표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그림 6] 우측 참조). 핀란드는 중학교 학생회 선거를 통하여 이미 비례대표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수학교과가 민주주의 제도를 학습하는데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9학년에서는 <방정식과 연립방정식> 단원에서 ‘세금’을 다룬다. [그림 7]에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매우 실제적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세청에서 발급했을 만한 통지서가 그대로 교과서에 실려 있다. 학생들 대다수가 노동자가 될 것이므로 학생 때부터 ‘원천징수세액’이나 ‘과세대상 근로소득’에 대해 아는 것은 중요하다. 심지어 심화학습을 보면 연금, 실업보험금, 노동조합 회비, 근로소득비용 공제액(620€), 출퇴근 비용 중 본인 부담금 등이 공제대상금액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핀란드에서는 중학교 학생들이 알아야할 ‘삶의 지식’인 것이다.
삶 속으로!!!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수와 연산을 익히는 것은 민주시민교육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수는 방정식의 해의 존재를 보장하기 위해 정수, 유리수, 실수 등으로 확장된다.” 또한 “각각의 수체계에서 사칙계산이 정의되고 연산의 성질이 일관되게 성립한다.” 수의 체계를 만들어낸 인간이 민주주의의 체계도 만들어냈다. 민주주의 체계를 작동시키는 ‘operation’이 존재하듯 수의 체계를 작동시키는 ‘operation’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것을 ‘연산operation’이라고 부른다.
인류의 역사 아니, 민주주의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operation’이 성인에서 비성인으로, 남성에서 비남성으로, 다수자에서 소수자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20년 대한민국 시민의 ‘선거권’이 만18세까지 확장된 것도 이러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수와 유리수와 실수를 배우면서 선거권의 확대를 이야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수학의 쓸모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13) (니콜라이 보그다노프-벨스키가 화폭에 담아낸) 러시아 농촌의 학생들이 복잡한 분수식을 계산하는 것도 가르침/배움에 임하는 교사/학생의 학교/교실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수학적 사유를 몸으로 체득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클랜디닌Jean Clandinin은 가르침과 배움을 내러티브적 탐구의 여정으로 규정하면서 탐구란 삶을 살아내고(living), 이야기하고(telling), 다시 이야기하고(retelling), 다시 삶을 살아내는(reliving) 가운데 만들어지며 이러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경험들을 수업의 현장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14) 미국의 수학교사 넬 나딩스Nell Naddings는 삶을 세 가지 범주 - 개인적 삶, 직업적 삶, 시민적 삶 – 로 나누고 각각의 삶을 위한 21세기 교육의 과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15) 삶의 층위는 다양하며 삶에 쓸모가 있는 교육을 말할 때 그것을 단지 직업적 삶이나 개인적 삶에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개인적 삶만 강조하다 보면 공동체는 사라지고 자신의 불편과 편의만 호소하는 자폐적 사회가 될 것이다. 직업적 삶만 강조하다 보면 삶의 모든 가치가 소위 ‘먹고사니즘’에 종속되는 각자도생의 사회가 될 것이다. 결국 개인적 삶과 직업적 삶은 시민적 삶과 함께 연결될 때만 풍요로워질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이 바닥에 떨어지고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사회에서 시민적 삶은 사치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교육은 – 특히 수학은 - 단지 신분상승과 그 현상으로서의 대학서열화의 ‘공정한’ 변별을 위한 도구가 될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시민적 삶은 중요하다. 그것은 개인적 삶과 직업적 삶의 균형과 풍요로움을 위한 밑바탕이다. 시민적 삶은 요구하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적인 삶이며 책임지는 삶이다. 공동체를 위하여 실천하고 변혁하는 삶이다. 이와 같이 시민적 삶을 장려하는 것이 수학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헌법과 교육기본법 그리고 수학과 교육과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시민을 위한 수학이다.
추상으로의 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가 구체적 삶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그대로 수학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정도, 수업도, 평가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수학의 어원 ‘mathemata’는 ‘배움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수학의 쓸모에 대한 질문은 본질적으로 배움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잃은 사회에서 수학이 설 자리는 없다. 수학은 근본적으로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수학에 대해서 갖고 있는 어려움은 결국 우리의 삶이 배움으로부터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학생들만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다. 학생이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갈 때, 부모는 맞벌이를 하고 투잡을 뛰고 야근을 한다. 학생은 과잉 학습, 부모는 과잉 노동에 시달리는데 그것이 삶의 성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에 대하여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회. 아니, 물음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따라서 나는 삶을 위한 수학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삶의 본질과 직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삶 속으로 들어가자. 수학교육의 새로운 서사Narrative를 만들어가자.
민주주의는 수학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인류가 창조해낸 무형의 산물.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 무모한 도전과 반복되는 실패. 그리고 아주 우연한 성공. 그러나 인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 그 우연한 성공에서 새로운 영감과 또 다른 열정들이 계속 이어져 왔다.
1) 비고츠키, 《생각과 말》 표지그림 해설 참조. 니콜라이 보그다노프-벨스키는 19세기 말 러시아의 학교 풍경을 많이 그렸다.
2) 10의 제곱을 구하시오. 11의 제곱을 구하시오. 12의 제곱을 구하시오. 13의 제곱을 구하시오. 14의 제곱을 구하시오. 결과들의 합을 구하시오. 마지막으로 이 값을 365로 나누시오.
3) 10의 제곱을 구하시오. 11의 제곱을 구하시오. 12의 제곱을 구하시오. 13의 제곱을 구하시오. 14의 제곱을 구하시오. 결과들의 합을 구하시오. 마지막으로 이 값을 365로 나누시오.
4) 교육부 고시 제2015-80호 [별책1]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추구하는 인간상’의 첫 단락을 이루고 있는 이 문장은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를 옮긴 것이다.
5)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8] 수학과 교육과정
6) 대한민국헌법(http://www.law.go.kr/lsEfInfoP.do?lsiSeq=61603)
7) Irmeli Halinen 「The new educational curriculum in finland」, 『Improving the Quality of Childhood in Europe · Volume 7』, 2018, p.77.
8) 루이스 래드포드 『사회기호학적 관점의 수학 교수・학습: 대상화 이론』, 권오남 외 옮김, 경문사. 2016.
9) 여기서 교과서 속 주인공 바네사는 남동생 미카엘에게 전화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카엘, 지금은 내가 너한테 신경을 쓸 수가 없구나! 네 궁금증은 나중에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은 내 친구 라르스 문제 해결이 급해서 말야. 계좌에 늘 잔고가 부족해서 은행에서는 계좌를 폐쇄한다고 하고 전기가 끊겼대. 라르스한테는 지금 뭐라도 도움이 필요해서, 내가 계산을 좀 해봐야겠어.”
10) 여기서 바네사의 친구 자비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짜 짜증나. 경영진이 1년 전에 우리한테 우리 제약부 노동자들이 너무 자주 병가를 쓰는 거 아니냐고 말했거든. 그게 이름만 알파벳으로 가명처리하고 리스트를 작성해서 상자그림으로 발표된 거야.”
11) Laskutaito를 영어로 번역하면 Numeracy이다. 출판사는 <Sanoma Pro>로, 『Laskutaito 7~9』는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채택되는 중학교 수학교과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솔빛길 출판사가 번역을 했다.
12) 테우보 라우리놀리 외, 『핀란드 중학교 수학교과서 7, 8, 9』 솔빛길. 2014.
13) 수학이 과학과 공학의 도구로만 쓰여서는 안 되듯 수학을 민주시민교육의 도구로만 접근해서도 안 될 것이다.
14) Jean Clandinin 『내러티브 탐구의 이해와 실천』, 염지숙 외 옮김, 교육과학사. 2015.
15) 넬 나딩스 『21세기 교육과 민주주의』, 심성보 옮김, 살림터.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