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랜선독서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지만지드라마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지만지드라마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지만지드라마
아이스킬로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지만지드라마
1.
외아들이었던 데다가 성격도 내향적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안타깝거나 안됐다는 듯이 바라보는 분들이 계신데 그것도 일종의 편견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지만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봐 여전히 두렵긴 하다.
2.
요즘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히키코모리'의 의미가 재해석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번역 자체가 일종의 혐오를 담고 있다는 해석도 본 적이 있다. 그냥 '은둔' '칩거' 정도의 의미로 쓰였어도 되었을 말이라는 것이다. 물론 국가와 사회의 '미래'여야만 하는 '젊은 것'들이 은둔하고 칩거한다고 하니 절로 혐오의 정서가 생겼을 수도 있다.
3.
은둔과 칩거의 시대 -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 - 를 맞이하여 나만의 혼자 놀기 비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샤워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워서 상상 속의 (우주)여행을 하는 것이다. 한 시간은 거뜬히 즐길 수 있다. (가끔 꿈으로 바로 연결되기도 한다.) 둘째, 혼자 바둑을 두는 것이다. 둘만큼 두다가 - 포석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탕진(?)할 수 있다 -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셋째, 미로를 만드는 것이다. 언제부터 미로를 그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아주 오래 전부터 미로를 그렸다. 다른 이가 만든 미로를 찾다가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4.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세계 혼자 놀기 달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컨텐츠는 바로 '책'과 '독서'일 것이다. 이와 관련한 두 가지 로망을 공유한다. 첫 번째 로망: 하루 중 한 시간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그리스 비극>을 읽는다. (그러나 왠지 적포도주가 제격일 것 같다.) 출근 전 아침 시간이나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딱 한 시간 책을 읽는 것이다. 낭독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두 번째 로망. <제주책방올레지도>를 들고 한 달 동안 제주의 책방들을 순례한다. 두 번째는 당분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니 첫 번째 로망이라도 이뤄보자. 8월 한 달 동안 만이라도.
5.
당장 내일까지 작성해야 할 문건이 떠올랐다.. (로망은 로망일 뿐인가.) 일단 책은 신청한다. 읽거나 말거나.
여기까지가 지난 8월 3일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제주의 책방 순례는 예측했듯이 이루어지지 못한 로망으로 끝이났다. 기대를 걸었던 책방이음×지만지드라마 랜선 독서 챌린지 <그리스 비극> 읽기도 첫 주는 『오이디푸스 왕』으로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끝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일들에 치여 두 번째 책 『안티고네』를 중간쯤 읽다가 흐지부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이 벌써 <그리스 비극 읽기> 프로젝트 마지막 날이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버렸다. 오늘이 지나기 전 안티고네 - 그의 아버지이자 오빠였던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에게 닥친 운명 앞에서 끝까지 고결함과 존엄성을 잃지 않은 - 를 읽어야겠다. 나는 『안티고네』를 여성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읽는다. 그것은 『오이디푸스 왕』이 남성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다.
오 무덤이여!
내가 영원히 살게 될 바위 굴 속의 신방이여!
페르세포네가
지하의 혼령을 받아들이는 그곳으로
나 안티고네가 갑니다. 내 사랑하는 이 모두 가 버린
그곳으로 생명 다한 나도 갑니다.
먼저 그곳에 가 계신
아버님께서 나를 반기시고
나의 어머니와 오빠도 날 반기네.
당신들 돌아가셨을 때마다
당신들 죽음 앞에 애도하고 축원했지.
내손으로 당신들의 시신을 씻어 주고
수의를 입히고, 무덤 위엔 제주를 뿌렸지.
(후략)
소포클레스,『안티고네』p.8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