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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Sep 12. 2020

그리스 비극 읽기

코로나 시대의 랜선독서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지만지드라마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지만지드라마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지만지드라마

아이스킬로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지만지드라마



1.

외아들이었던 데다가 성격도 내향적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안타깝거나 안됐다는 듯이 바라보는 분들이 계신데 그것도 일종의 편견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지만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봐 여전히 두렵긴 하다.



2.

요즘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히키코모리'의 의미가 재해석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번역 자체가 일종의 혐오를 담고 있다는 해석도 본 적이 있다. 그냥 '은둔' '칩거' 정도의 의미로 쓰였어도 되었을 말이라는 것이다. 물론 국가와 사회의 '미래'여야만 하는 '젊은 것'들이 은둔하고 칩거한다고 하니 절로 혐오의 정서가 생겼을 수도 있다.



3.

은둔과 칩거의 시대 -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 - 를 맞이하여 나만의 혼자 놀기 비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샤워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워서 상상 속의 (우주)여행을 하는 것이다. 한 시간은 거뜬히 즐길 수 있다. (가끔 꿈으로 바로 연결되기도 한다.) 둘째, 혼자 바둑을 두는 것이다. 둘만큼 두다가 - 포석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탕진(?)할 수 있다 -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셋째, 미로를 만드는 것이다. 언제부터 미로를 그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아주 오래 전부터 미로를 그렸다. 다른 이가 만든 미로를 찾다가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4.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세계 혼자 놀기 달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컨텐츠는 바로 '책'과 '독서'일 것이다. 이와 관련한 두 가지 로망을 공유한다. 첫 번째 로망: 하루 중 한 시간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그리스 비극>을 읽는다. (그러나 왠지 적포도주가 제격일 것 같다.) 출근 전 아침 시간이나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딱 한 시간 책을 읽는 것이다. 낭독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두 번째 로망. <제주책방올레지도>를 들고 한 달 동안 제주의 책방들을 순례한다. 두 번째는 당분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니 첫 번째 로망이라도 이뤄보자. 8월 한 달 동안 만이라도.



5.

당장 내일까지 작성해야 할 문건이 떠올랐다.. (로망은 로망일 뿐인가.) 일단 책은 신청한다. 읽거나 말거나.



책방이음×지만지드라마 랜선 독서 모임 <그리스 비극 읽기>


제주의 책방 순례는 이루어지지 못한 로망으로 끝이났다




여기까지가 지난 8월 3일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제주의 책방 순례는 예측했듯이 이루어지지 못한 로망으로 끝이났다. 기대를 걸었던 책방이음×지만지드라마 랜선 독서 챌린지 <그리스 비극> 읽기도 첫 주는 『오이디푸스 왕』으로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끝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일들에 치여 두 번째 책 『안티고네』를 중간쯤 읽다가 흐지부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이 벌써 <그리스 비극 읽기> 프로젝트 마지막 날이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버렸다. 오늘이 지나기 전 안티고네 - 그의 아버지이자 오빠였던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에게 닥친 운명 앞에서 끝까지 고결함과 존엄성을 잃지 않은 - 를 읽어야겠다. 나는 『안티고네』를 여성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읽는다. 그것은 『오이디푸스 왕』이 남성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다. 



오 무덤이여!
내가 영원히 살게 될 바위 굴 속의 신방이여!
페르세포네가
지하의 혼령을 받아들이는 그곳으로
나 안티고네가 갑니다. 내 사랑하는 이 모두 가 버린
그곳으로 생명 다한 나도 갑니다.
먼저 그곳에 가 계신
아버님께서 나를 반기시고
나의 어머니와 오빠도 날 반기네.
당신들 돌아가셨을 때마다
당신들 죽음 앞에 애도하고 축원했지.
내손으로 당신들의 시신을 씻어 주고
수의를 입히고, 무덤 위엔 제주를 뿌렸지.

(후략)

소포클레스,『안티고네』p.86~87


샤를 프랑수아 잘라베르,『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左)와 나키포로스 리트라스,『죽은 폴리네이케스 앞의 안티고네』(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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