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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 Apr 22. 2016

빨리 벗어날 것

2015.4.16

정말로 간만에 참 마음이 힘들다. 이러기도 오랜만이라 어쩔줄을 모르겠다. 예전엔 내가 이럴 때 어떻게 했더라 하는 기억만 되짚어본다. 마음이 아프고 속상도 하고 밉기도하고 짜증도 나는 것 같고 그냥 그렇다. 결국 못참아 독립문 공원 한바퀴 돌고 왔는데 다시 들어오니 괜히 더 억누르느라 신경써서 속만 더 쓰린 밤이다.


책을 읽어도 풀리지 않고, 이 늦은 밤 삼십분씩이나 공원을 뛰고와도 조금도 괜찮아지질 않는다. 가슴속에 콱 들어앉은 이 무거운 느낌이 조금도 없어지질 않는다. 이제는 꽉 막힌 느낌을 넘어서서 숨쉴 때마다 가슴팍이 싸하게 신경통이 느껴진다. 집에 가서 그냥 숨어만 있고싶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솔직하게 나 스스로와 대면 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렇게까지 해결 방법이 없는 터질것같은 괴로움을 느껴본지가 몇 년 전이었는데, 과연 지금 이 상황이 내가 이렇게까지 감정적 소화를 해야 할 만큼 과하게 받아들여질만한 일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겠다.


어떠한 것들로부터, 이미 나에게 이것에 대해 예견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긴장하고 있었다. 주사를 맞기 직전이 가장 무섭듯, 바로 그런 느낌으로 미리 이런 상황을 맞을것에 대비를 해왔다. 그래서 맞닥뜨릴 때 난 단단하고 유연하게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에 대한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이 상황에 직면한 순간에 덮칠 엄청난 감정의 거대한 집체로부터 나를 온전히 보호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해왔다.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럴 수 있다. 그래 그럴수도 있는 거다.


나는 참 말이 많기도 하고, 솔직하다는 소릴 자주듣는데, 일정부분 사실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나를 몰라서 하는 말들이다. 사람들은 내가 본인들에게 다 털어놓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이 그렇게 느끼게끔 내가 말을 했을 뿐이다. 정작 나의 깊은 감정에 관한 속내를 털어놓았던 사람은 25년동안 살면서 단 서너 명 이었을 뿐.


평생을 살면서 사람과의 분리를 처음 경험한 것은 스물 두살의 해, 2012년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나의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나의 모든 치부를 보여주어도 늘 보듬어 곁에 그대로 있어주면서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으며 예뻐해주길래 그게 영원할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의 작은 생각부터 나의 모든 내면의 것을 다 허용했는데, 그 존재가 나에게서부터 분리된 순간 나의 주체권은 나에게 없었다. ‘나’라는 존재 요소를 다 줘버렸던 것이다. 지금 되돌아보니 그 모습은 나를 알게끔 허용한 것이 아니라, 그저 무분별한 전면적인 의존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나의 힘든것이나 나의 생각들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져 허망함을 느끼기가 무섭게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직까지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다. 밀접하고 가깝고 비슷한 존재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에게 이 사람을 선물해 주심을 감사했고 지금도 그렇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편견없이 나대로 바라봐주는 사람인데다, 영 이해못할만한 뜬구름 잡는 듯한 나의 생각들에 진심으로 동조해주는 사람이었다. 내 행복했던 20대 초반의 8할은 이 사람에게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 그렇지만 뜻한 것이 있어 훌쩍 일년 넘게 외국으로 떠나자_ 나는 그 때 부터, 나는 그렇게나 많이, 자주 울었다. 혼자 감정을 이겨내는법을 몰라서 그랬다. 나는 어렸고 무지했고 나약했다. 지금도 뭐 크게 다를바는 없지만 그때는 혼자서 감정을 독대하는 법을 경험해보지 못한데서 두려움이 비롯됐다.


그때부터 쌓이기만하고 분출되지 못했던 넘쳐나는 생각들의 흐름과 감정의 동요들을 글로 옮기는 행위를 함으로써 나는 조금씩 혼자 무엇가를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혼자서는 생각을 정리할 줄 몰랐고, 무분별하게 몰아치는 감정을 해결할 줄을 몰랐기 떄문에, 혼자 남은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책을 읽거나 글로 생각을 풀어나가는 것 밖에 없었다. 덕분에 좋은 습관 여럿 생긴거다. 그나마 참 다행이다. 그 허전함과 외로움을 메꿔 보고자, 올바른 판단력 없이 무분별하게 이성을 만남으로서 허전함과 맞바꿨다거나, 혹은 술담배로 빠지지 않고, 내 성격에 충분히 밖으로 나돌만 한데도 그저 얌전히 앉아 책읽고 글쓰니 다행일 수밖에.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또다시 지금의 내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선물 해 주셨지만, 예전에 겪었던 것 처럼, 그들 역시 언젠가 나에게로부터 분리되는 순간이 닥치면 속상해 견디기 힘들까봐 나는 무섭기만 하다.


2013년 연말, 그 추운 겨울을 기점으로 새 버릇이 내게 깊숙히 자리잡은 덕분에, 요즘에는 또 떠날까 두려워 사람에게 의존하기가 조심스럽다. (그치만 사실상 사람에 꽤나 의존하고있다). 언제나 사람으로 인해 나는 생채기는, 새롭게 감정을 소화하는 방법을 찾았어도 그것이 무용할만큼 단연 제일 힘들다. 아빠가 나 스무살 일 적에 말하길,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힘든것의 90%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앞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위해 늘 노력하고, 사람때문에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해 질 줄 아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이야기했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 두가지 모두 지키지 못하고있다.'


이렇게 글로 풀고나니 울컥했던 마음은 한결 무뎌져 잠은 잘 수 있을 것 같다. 또 오늘과 같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날, 나는 여전히 똑같이 오늘처럼 마음이 무거워 오고 또, 잠들 수 없을만큼 속상하겠지만 오늘로부터 나는, 충분히 그 고통을 감내할 수는 그릇이 되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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