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24
일년 하고도 조금 몇달 전쯤 그 무렵, 시험을 준비하느라 바쁘던 학생들 사이로 우리는 매일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숱한 걱정들을 하며 시간들을 보냈다. 유쾌하면서도 착하고 늘 밝지만 또 허황되지만은 않던 그때의 내 친구는, 여전히 지금도 많은 선택지를 안고 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잘 하고 있다.
지금은 시간이 좀 더 흘렀는데도 우리의 이야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때의 걱정의 무게만큼 지금은 한 짐을 더 얻은 무게로 이야기를 한다. 그 시간을 흘려 보내고 나면 그 무게가 없어질 줄 알았던 건, 우리가 어쩌면 어려서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편하게 노골적으로 원색적인 걱정과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나처럼 의외로 진짜의 속내를 내보이지 않고 어물쩡하게 그럴싸한 표정과 말투로 넘어가려는 사람에겐 참 다행인 일이다.
이제는 서로 조금 앉은 자리가 달라졌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같은 세대로서 공감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미묘하게 달라진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이 가끔은 재밌게도 다가온다. 류진이와 전화할 때면 항상 전화 너머로 들리던 두별이의 냐옹냐옹 소리와 함께, 늘 그러했듯 툭 내뱉은 류진이의 말이 왜인지 익살스럽달까, 묘하게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재주다 재주. 작년 그 자리의 나도 나였고, 지금의 나도 나인데, 시간은 달라져 있고, 내 자리도 달라졌으며, 사람도 달라져있다.
스물 두살이 되던 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물 흐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자던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것의 결과를 혹독하게 겪고 있다. 말이 좋아 '물 흐르듯이'였지, 사실상 사람이 나에게서로부터 유실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렵고 힘들어 이겨내기 힘들때도 지나봤지만, 스물 다섯 된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과연 나는 몇 살까지 이러한 생각으로 살아갈까 문득 궁금할 때는 있지만 그래도 나름 지금껏 보낼 이는 보낼 이 답게, 받아들일 이는 받아들이는 태도로 지내곤 있다. 또 머잖아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는 그렇게 내 품에서 미끄러져 나갈 것이다. 미리 예상할 필요도, 마음 아파할 이유도 없다. 모든 이치가 그러할 뿐인 것이 가끔은 굉장히 가벼운 무게로 느껴지는 것이 기분좋기도 하다.
떠올린 이들과 더불어, 요즘 한 켠에 얇은 걱정들을 한 겹씩, 한 겹씩 쌓아가고 있다. 원체 미루었다가 한번에 하는 것이 천성인 나는 분명 이것도 어느 날 큰 마음먹고 치워버리는 날이 올 거니 이번에도 크게 걱정 할 필요는 없을거라 생각한다.
영화는 좋았다. 깊이 빠져 생각케 하고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영화는 간만이라, 담백하고 기름기 없는 좋은 작품 느낌으로 다가와서 기분좋은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오늘 하루가 좋았다. 냄새 좋은 마른빨래의 향을 맡는 기분으로. 갑자기 나가느라 하다말았던 책상정리만 조금 하고, 노래 두어 곡 듣다 자기로 한다. 좋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