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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 Apr 22. 2016

격정의 삼일

2015.9.24

격정의 삼일.

하루가 멀다 하고 그들과 함께 있어주어야 하는 날을 겪고 있다. 실질적으로 물리적인 시간들을 쏟아야 했던 지난 3일 이었기로서니, 덕분에 하루에 세 시간만 자는 결심을 기분 좋게 감행하고 있다. 그들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만큼은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구태여 의식적으로 잊어버려고 한다. 피곤하지만 함께 애도하고 쏟아내서 소화시키고 정리까지 하는 과정들을 의외로 본인들 스스로 잘 해 내는 것을 보면서 내심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이리도 다르다는 것을 충격적 이리만치 겪어야 했던 격정의 삼일이었다. 사람이 말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존재였다면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하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수단이 말이라는 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말은 한 마디에 열 가지의 오해 섞인 억측을 불러오기 가장 좋은 수단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 우리도 그렇게 서로가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나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만약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산이 언니가 어제 내 등 뒤의 소파에 누운 채로,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말똥 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신혜야 너는 정말 폐쇄적이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걸 진짜 이렇게나 어려워하는 앤 데, 왜 사람들은 너를 낯가림조차 없는 애라고 생각하지?" 나는 서류작성을 하던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산이 언니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언제나 그렇듯, 아래층 그 자리에서 담배를 피운다. 산이 언니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뒤적거릴 때 꼭 항상 오물오물 말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때 언니가 짓는 표정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아마 산이 언니는 인도에서 사는 동안에도 자기도 모르게 그 버릇 고스란히 가지고서 담배를 피웠을 거다. 한동안 달콤한 바닐라 향이 나던 잎담배를 가지고 다니면서 정말로 종이에 담뱃잎을 돌돌 말아 피우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가끔 그때가 생각나서인지, 언니가 편의점에서 샀을 게 분명한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면 무언가 아쉬움이 든다.


사십 분을 혼자 기다려놓고, '어차피 가던 길'이라고 널찍하게 웃어버리는 얼굴을 봤다. 분명 평소의 나라면 내 잘못이 아니지만 미안함을 느꼈을 텐데, 오늘 그 얼굴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은 미안함이 아니라 고마움이었다. 누군가 내게 호의를 베풀 때마다 되갚아 주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의 가책 없이, 처음으로 고마움만을 느껴본 것 같다. 더욱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드디어 내가 미쳤나 라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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