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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 Apr 22. 2016

겨울

2015.11.1 / 늦은 밤 우리 집, 아가와 함께


01 /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어제오늘 사람들이 유독 겨울이 싫다고들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 마음 너무나 이해하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 한편에 겨울이 못내 반갑기 그지없다. 그렇게 날씨 추운 게 너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화 틈으로 나는 겨울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왜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그래서 찬찬히 생각해보면 왜인지를 잘 모르겠다. 그저 사람들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져서 인 것 같다고 말하곤 하는데 오늘 집에 돌아와서 아빠에게 줄 가죽제품들을 찾아보다 깨달았다. 겨울이면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진다기 보단 나만 마음이 말랑말랑 해 지는 듯하다.

02 /
엄마의 생일은 늦가을, 아빠는 초겨울, 나는 한겨울, 시온이는 엄동설한. 그렇게 10월부터 1월까지 한 달에 한 명씩 생일이 죄다 겨울 즈음에 몰려있다 보니 자연스레 더 그런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에게 줄 선물에다, 내 마음이 이만큼이에요!라고 듬뿍 담아서 줄 수 있는 선물로 표현하려 고민하는데만 한 달을 쏟는다. 그리고 연말이면 편지를 써 주는 엄마, 새해에 잊지 않고 매년 우리에게 마음 표현을 말로 해 주는 아빠까지. 늘 그런 일은 겨울에 있었던 것 같다.

03 /
그리고 조금의 비밀이지만 여름에 버스 정류장과 길거리마다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 난해하다. 그렇잖아도 무심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여름이면 오만상을 짓고 있는 걸 자주 봐야 해서 그렇다. 더워 죽겠는지 손부채를 해 가며 땡볕에 서 있지만 그 넘기는 머리카락들 뒷 목덜미로 엉겨서 흐르는 땀을 보는 것도 뭔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마치 못 볼 속살을 본듯한 그런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딱 그 순간 눈이 마주치면 아무래도 불편하지. 그래도 가끔은 더워서 얼굴 옆 광대가 주름이 지도록 찡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귀여울 때가 있긴 하다. 얼마나 더우면. 아침마다 사람 가득한 버스로 들어설 때 맨 살이 맞닿는 그 순간 이름 모를 우리는 서로 불편해진다. 이 모든 게 다 여름이라 그렇다. 그렇지만 한겨울엔 아무리 추워도 더울 때 짓는 짜증 가득한 표정은 아니다. 칼바람에 온 몸이 시려 눈을 못 뜨는 우리 집 아가 고양이 같은 표정이지. 겨울엔 내 애정 하는 코트의 면 덕분에 서로 생 살을 맞닿아야 할 경우도 없으니 가까이 부딪힐 때면 데면데면한 얼굴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 별 거 아닌 듯 통용되는 그 너그러운 분위기랄까.

04 /
어쨌든 초 겨울에 생일을 맞을 우리 아빠를 위해, 이번엔 마음 담은 직접 만든 선물을 꼭 해주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는 정말 신성한 거라 말했던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말을 십분 곱씹으면서 공감은 백분하고 있다. 내가 선물한 스웨터는 아깝다며 단 한 번도 입지 않고 장롱에 고이 모셔두더니, 시온이와 내가 해 준 핸드폰이라며 삼 년을 바꾸지 않던 모습, 새로 사 준 지갑 외피가 생각보다 딱딱해서 뒷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힘들다 하더니 기어코 매일을 넣고 다녀 결국은 잘 쓰고 있는 모습, 향수를 사 드렸더니 너무 좋아라 하며 매일을 뿌리다가 두 달 만에 동이 나서 엄마 향수를 뺏어 쓴다는 말에 또 지난번엔 향수를 넉넉히 사드렸었다. 이런 아빠의 모습 때문에 늘 아빠에게 주는 선물은 많은 고심을 하게 된다. 주는 사람의 마음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이 더 큰 경우다. 그래서 그 마음 더 채워주고 싶어서 이번엔 부드럽고 좋은 가죽으로 또 새로운 지갑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아빠의 지갑, 핸드폰, 벨트, 향수는 그렇게 한 번 우리가 해드린 이후로 또다시 우리가 바꿔주지 않으면 애들이 준거라며 안 바꾼다 고집부리는 모습이 기분 좋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05 /
이 모든 일들은 매년 겨울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 내가 겨울을 안 좋아할 수가. 매년 했었던 연말 편지 쓰기를 올해는 또 누구에게 쓸지 목록을 쓸 때가 됐다. 그 때면 내가 참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는다. 점점 껴입는 옷의 가짓수만큼, 그리고 두터워지는 옷의 두께 딱 고만큼만 올해 정리를 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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