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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 Apr 22. 2016

겨울, 늦은 밤 책을 읽다가.

2015.11.28


겨울이 좋다, 겨울이 좋다. 말하고 다닌 작년이 정말 얼마 전 같은데 올해 겨울이 또 와버렸다 싶다. 나는 늘 그러하듯이 겨울이 오면 불가항력의 힘 처럼 양말을 사고서는, 일년중에서 양말신는 한시적인 기간으로 지내는 것 같다.

유달리 올해는 겨울에 도달하기까지가 마음 아플 일들도 많고, 포기하는 것도 많고, 또 그렇지만 열심이기도 했고 가끔은 널어둔 빨래처럼 늘어져있어도 죄책감이 안 드는 시기가 되었다. 그만큼 혼자서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했다는 걸 나 스스로가 깨달아 주어서 정당하게 고개 드는 보상심리처럼, 정말 그런마냥 쉴새없이 노곤하다. 그만큼 올 겨울은 헛헛하다.

많은 것들을 버리고 비워 나 자신 본원만으로 단촐히 살아가보자 다짐했던 한 해 였지만 닥쳐올 겨울이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정말 헛헛한 그 마음 뭐로든 채워보려던 건지 또 나는 월동준비를 하고있다. 도저히 안되겠어. 히터를 사야겠어_라는 카톡 하나로 시작해서 아예 내년 삼월까지 부둥켜 안고 갈 것들을 장만했다. 고맙게도 엄마는 귀여운 말로 그런 나를 예뻐라 해 준다. 사랑이기 그지없다. 그리고는 엄마가 끝에 또 마지막 귀여움의 화룡정점을 찍어줬다. "택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우리 딸 따스하게 지내게~" 어련히 때 되면 오는 것이 택배이건만, '우리 딸 추울까봐'도 아닌, '우리 딸 따스하게 지내게~'라는 말이 왜이리 나는 귀여운지. 나이 오십 넘은 우리엄마가 저렇게 생각하는 걸 보니 사뭇 마음이 산뜻해진다. 귀엽다. 우리엄마는 걱정도 귀엽게 하는 재주가 있나보다.


덕분에, 유럽에서 쓴다는 건조해지지 않는 전기 라디에이터도 올해는 장만을 했고, 잘 때 만이라도 따뜻하자 싶어 겨울 담요도 구비했으며, 지난 주 본가에다 손목시계를 두고온 덕분에 왼쪽 손목의 자리를 대신 해 줄 새로운 손목시계도 생겼다. 이제는 정말 과감히 정리하자 싶어 버릴 옷가지들을 쏟아내었고, 창가 아래에 둘 하얀 수납장도 생겼다. 찬 바닥에 깔아 둘 귀여운 담요를 고를 땐, 러그로 살까 했지만 이 정도면 됐지 얼마나 더 호사를 누리겠다고! 라는 생각에 비싼 러그 대신 그냥 내 마음에 드는 값싼 담요로 결정하는 나 딴엔 대담한 결정도 했다. 이미 늦어버린 월동준비를, 엄마의 조그만 도움 아래 풍성하다 싶게 마무리 한 감이 있다. 특히 전기 라디에이터. 가장 비싼 것이라 살 엄두는 못 내고 있었는데 흔쾌히 따뜻하게 보내라며 엄마가 사 준 덕분에 올 12월에 읽을 책들을 살 수 있었다.

내가 책 읽는 걸 너무도 싫어라 하는 엄마지만 그래도 엄마 덕분에 고이 읽고싶은책으로 보관만 해 두었던 리스트를 꺼내서 여지없이 알라딘 중고서점에 접속해서 비교해보고 살 수 있었다. 이번엔 참고 참아보고 진짜 읽고싶었던 조금만 사자! 했지만 늘 중고로 사도 책은 늘 비싸기만 하다. 도도한 고양이 마냥.

이제 새로운 담요도 곧 오겠다, 엄마가 겨울 김치와 햅쌀도 보내줬겠다, 라디에이터도 오겠다, 심지어 읽을 책도 다 준비되어 있겠다, 이번겨울 잘 나기만 하면 되겠다. 잘 해보자 신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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