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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자 Sep 06. 2024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출, 퇴근길 버스기사님이 밝혀준 '초심'에 대한 생각.


퇴근길.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조금 기운이 없는 채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매일 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서 오세요~."


낯익은 인사말에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이 커졌는데, 몇 달 전 인상 깊게 봤던 버스기사님이었다.


"주행 중에 움직이면 위험하니 다음 역에 도착할 때까진 가만히 자리에 계셔주세요."

"이번 역은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이니 승하차 시에 특히 유의해주세요."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매 승차역마다 같은 멘트를 하시며 승객들이 내릴 땐 꼭 "안녕히 가세요~."로 마무리를 지으시던 신기한 버스기사님. 이 노선을 운행하시는 버스기사 중 한 명인지 종종 마주치곤 했는데, 한동안 마주치지 않아 마침 생각나던 참이었다.


우연히 그 버스를 타고 처음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땐 사실 적잖이 당황했었다. 내게 익숙한 버스기사의 이미지는 꽤 무심하고 심드렁한 이미지였으니.


기껏해야 탑승할 때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면 눈인사를 맞추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사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이 기사님은 기계처럼 매 승차역마다 구구절절 멘트를 반복하시고, (사실 세상에 이렇게 상냥한 기계는 없을 테니 기계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승객들이 승하차할 때는 잊지 않고 꼭 인사를 건네주시다니.


누군가는 참 별거 아니라고 할 수 도 있겠으나 별게 아닌 게 아니다. 아직 잠이 덜 깬 눈꺼풀을 붙잡고 나선 출근길에는 그의 상냥한 인사가 마치 나의 고3 시절 매일 학교로 태워주시던 우리 아버지의 음성과 겹쳐 보이기도 했고, 고단했던 하루 끝 퇴근길에는 약간 꼬순내나는 따뜻한 솜이불 같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주행 중에 움직이면 위험하니 버스가 완전히 멈추고 나면 하차해 주세요.
이번 역은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이니 승하차 시에 특히 유의해주세요.


버스 창에 기대어 오랜만에 그의 나긋나긋한 안내멘트를 듣고 있자니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초심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나. 그가 어떤 연유에서 상냥한 안내멘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분명 흔치 않은 행위를 실시하기까지 용기와 계기가 어우러진 초심이 그를 행동하게 만들었으리라.


초심은 옅어진다는데, 아니 초심이 계속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라던데.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음성은 여전히 상냥한 톤과 살짝 느린 듯 나긋한 박자 그대로 옅어지지 않았더라. 그의 음성에서 조금 귀찮은 구석이 보이거나 톤이 낮아졌다면 나는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초심을 계속할 수 있는 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저 행복하게 일하자는 신념이 굳건한 사람인 걸까, 성급하고 바쁘게만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있는 걸까, 아니면 혹시 버스에서 부주의하게 움직이다가 크게 다친 가족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뭘까.


꽤 낯간지러울지도 모를 상냥한 멘트와 인사를 건네며 부끄러운 마음은 없었을까. 듣는둥 마는둥 하는 승객들이 그에게 혹시 상처가 되진 않을까. 버스역이 족히 스무 개는 넘어 보이는데 스무 번을 같은 멘트를 매일같이 반복하면 지치는 날은 없었을까.


아, 나의 초심은 안녕한가.


여전히 나긋한 그의 음성 아래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이 직장과 이 일을 처음 시작하던 나의 처음 마음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대하는 나의 처음 마음과 베란다에 키우는 선인장을 예뻐하던 처음 마음까지도.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가 내려야 하는 역을 놓칠 뻔했다. 그가 안내해 준 대로 버스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도 성급한 한국인인지 조금은 어색했으나) 하차태그를 찍으며 나도 용기 내어 꽤 큰 목소리로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에게도 오늘이 더 기분 좋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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