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한 소중한 인연을 수소문하여 재회하는 컨셉이었다. 나 또한 글 쓰기란 애인을(?) 추억 속에서 소환하여 다시금 만나 사랑에 빠진 요즘이다.
오늘도 글 쓰는 게 너무 즐겁다. 차가운 모래바람만이 주인인 이스라엘 광야와 같이 황량하기 짝이 없던 메마른 내 일상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내 어릴 적 꿈은 작가였다. 세파에 시달리며 살다보니 꿈을 잊고 살았다. 아주 가끔은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그 때마다 먼지 자욱한 보자기로 저만치 덮어 놓은 내 꿈을 꺼내어 글을 쓰곤 했다. 그러면 여지 없이 마치 무언가에 빨려들어가듯이 글에 몰입되었다.
대학 때는 리포트 쓰는 것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었다. 햇병아리 신입생 때는 리포트란 걸 처음 써봐서 겨우 구색 맞추기에도 힘에 부쳤다. 그러다 학년이 점점 올라가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각 잡고 써내려가기 시작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때부터였다. 내 리포트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리포트는 더 이상 숙제가 아니라 나를 맘껏 표현하는 장이 되었다. 자랑이 아니라 그만큼 글 쓰기가 재밌었다는 얘기다.
문학동아리 활동을 잠깐 했었다. 처음으로 미션이 내려졌다. 대뜸 시 한 편을 써오라는 것이었다. 글 중에 가장 고난이도가 ‘시’ 아닌가. 내가 어찌…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1차로 시도한 시는 속된 말로 ‘쓰레기’ 같았다. 나는 좌절했다. 그러나 심기일전하여 각 잡고 새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나니 3 시간 쯤 지나있었다. 시간이 그렇게 된 줄도 몰랐다. 내 인생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시‘라는 것을 처음 써봤다. 드디어 숙제 검사날!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는 그대로 학교 문집에 실렸다. 물론 지금 읽어보면 그땐 뭐가 그렇게까지 심각하고 센티멘탈해야 했는지 안쓰럽기까지 하지만.
일부러 쓰진 않고 딱 쓰고 싶을 때만 쓴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불이 켜진다. 내가 무슨 예술가는 아닐진대 소위 말하는 시상이라든가 악상이라든가 뭐 그 엇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다. 글로 토해내고 싶은 이야깃거리들이 스멀스멀 뇌를 간지럽힌다.
“이번엔 이 얘기를 꼭 해줘.”
첫 문장부터 시작하면 나머지는 스르륵 써진다. 내가 글을 쓰는 건지 글이 나를 써내려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게 된다. 적어도 이 때 만큼은, 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듯 세상 모든 시름이 글 뒤 편으로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굉장한 자연치유 효과가 아닌가. 무슨 보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그저 글만 썼을 뿐.
시작부터 끝까지 글을 쓰는 모든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다 쓰고 나서도 글에서 한 동안 떠나지 못하고 곁에 머무른다.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보고… 놀이동산에서 하루 종일 실컷 놀았다가도 집에 가기 싫은 그 심정 말이다. 참으로 글 쓰기는 나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준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서도 글 쓰기는 내 곁에서 변함 없는 좋은 친구로 함께해줄 것 같다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도 든다. 취향저격인 유행가 가사처럼 요즘 같은 백 세 시대 긴긴 세월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글 쓰기와 ‘열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