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씻을 때마다 매일 확인하는 것이 일이었는데 오늘 보니 고질적이던 습진이 깨끗해졌다. 끈질기게 관리한 결과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는 결코 습진이 생기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던 만성 질환이 하나둘 해결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자연치유를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방법으로도 낫지 않았던 증상들이 비로소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며 자연치유의 위력을 실감한다. 이 과정에서 인내심은 필수다. 오래 겪어온 병을 단방에 없앨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생채식의 비중을 늘릴수록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어정쩡하게 화식을 겸하게 될 경우, 치유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특히 외식을 피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외식 메뉴가 화식이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 식단 관리는 아주 잘 되는 편이다. 하지만 집 밖에는 애써 정렬한 식단을 무너뜨릴 온갖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로 완전 무장하고 ‘오늘은 출발이 좋군.’ 하며 상쾌한 기분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나섰다가도 집으로 돌아올 땐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 이것 먹고 저것 먹으며 얻어 터진 패잔병처럼 자괴감에 빠져 귀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때문에 어느 정도 대인 관계는 내려놓아야 한다. 이번에도 또 한번 약속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다 쥘 수는 없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결국엔 선택하게 되어 있다.
엊그제 점심 모임은 불가피했다. 식당이 아니라 집으로의 초대였건만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대로 여기저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밥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밥상 위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가까이 할 수 있는 반찬은 김치 정도였다. 아침부터 쫄쫄 굶은 터라 평소 같았으면 손도 대지 않았을 감자 조림이라도 먹어야 했을 땐 왠지 모르게 허탈하고 서글픈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게 타협하게 되다니......
“동태전 드셔보세요.”
“와, 맛있겠다!”
누가 봐도 오늘의 메인 메뉴는 동태전이었다. 모두의 오감이 향하는 그곳으로 젓가락들이 바삐 움직였다. 두들겨 패도 나에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메뉴가 있는데 그건 바로 기름에 조리한 음식이다. 대표적인 메뉴가 튀김이고, 전이다. 고온의 기름에 절이고 절여진 데다가 산화된 기름 범벅인 이 요리들은 그야말로 건강에 치명타를 가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그 한 점과 타협하는 순간, 그 동안의 치유와 회복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내 몫의 동태전만이 마지막까지 덩그러니 그릇에 남았다. 금단의 열매가 코 앞에 있었다.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왜 안 드세요?”
“전 소화가 안 돼서요.“
소화가 안 된다는 말처럼 예의를 갖추면서 거절하기 딱 좋은 멘트는 없다. 그럼 더 이상 권하는 일은 없으니까. 동태전이라... 예전 같으면 한밤중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라도 우겨넣을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다. 물론 지금도 얼마든지 먹고 싶은 동태전이다. 다만 참을 인자를 세 번 마음 속에 새기며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것 뿐. 동태전이 내 식도로 넘어가는 순간 내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기를 쓰고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에게 동태전 한 점 먹는 것은 일종의 자기파괴적인 행위로서 내 몸에 대한 배반과 다름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
다음 고비는 떡볶이였다. 물론 떡볶이를 너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 먹고 싶을 땐 모든 재료들의 성분을 확인한 후 직접 만들어 먹는 그것만이 허용되었다. 물론 이마저도 안 먹는 게 최선이다.
“전 괜찮아요. 소화가 안 돼서요.”
이번에도 같은 멘트로 넘어가려했다.
“그러지 말고 맛만 봐요.”
맛만 보는 그것조차 나에게는 몹시도 어려운 일이기에 재차 거절했다. 하지만 먹으라는 권유보다 더 위기로 다가오는 것은, 나 자신 뭘로 만들었든 떡볶이란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거듭되는 권유에 갈대 같이 파르르 떨리는 내 연약한 의지가 꺾일까봐 그것이 더 두려웠다. 에잇, 이번 한 번 쯤이야... 그러나 그 한 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겨우 고비를 넘겼다. 이날 더 이상의 시험은 없었다. 동태전이든 떡볶이든 날 쓰러뜨리진 못했다. 사람들은 동태전에서 떡볶이로 그리고 그 다음 코스인 김말이 튀김으로 밥상 위의 젓가락 여행을 즐기며 연신 흐뭇해하고 있었다. 김말이 튀김은 내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맹독으로 인식되기에 다행히 조금의 내적 갈등도 유발하지 않았다. 대신 턱 없이 부족한 식사량으로 인해 채워지지 못한 허기로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온전히 나를 위한 맞춤형으로 구비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꽉 들어찬 나의 냉장고가 그리울 뿐이었다. 심히 아름다운 내 고향, 젖과 꿀이 흐르는 저 가나안으로 어서 가야 한다......그렇게 나는 시계만 쳐다봤다.
매일 마주하는 밥상이지만 한 번의 식사가 우리의 건강을 쥐고 흔든다고 한다면 과연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다 말하기엔 현대인의 식탁은 너무나 잘못 돼 있다. 대부분에게 건강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식 또한 상당 부분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무늬만 백 세 시대인 요즘 같다. 아픈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한 번 병에 걸리면 좀처럼 낫질 않는다. 저속노화가 핫이슈가 된 것은 오히려 조로 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래서는 백 세 시대란 면이 서지 않는다.
추락하는 밥상에는 건강이 없다. 한 번의 무분별한 식사로 인하여 오히려 건강은 이전보다 더 곤두박질치게 될지 모른다. 병을 고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도로 나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깨끗해진 두 발을 다시 바라본다. 이 발로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했는지 헤아려 본다. 비록 지금은 깨끗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오늘 한 끼를 절제하지 못한다면 증상이 재발하는 것은 시간문제란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을 관리한다는 것은 어쩌면 끼니 때마다 벌이는 살고자 하는 치열한 사투일지도. 밥상을 거절하며 “소화가 안 돼서요.”라는 멘트를 날리면서 동시에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고 나 자신에게 절박한 경고를 던졌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