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랑했던 것들에 이별을 고하며

by 치유의 통로

사실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이렇게 널 보내야만 한다는 것에. 찬바람은 진즉부터 불어왔지만, 곳곳에서 널 마주치게 되는 계절이 돌아왔지만 그럴 때마다 난 너무 혼란스러워. 작년 겨울만 해도 난 해바라기처럼 널 바라기 하느라 잘 가던 길도 돌아서며 널 향해 달려갔지. 널 향한 나의 마음은 그 누구도 막을 순 없었지. 엄마의 잔소리도 소용이 없었어. 낮이나 밤이나 네가 눈에 띄기만 하면 난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피치 못해 너에게 닿을 수 없던 날은 기필고 내일은 찾아가리라는 결심을 성실히 이행했지. 누구도 무엇도 널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었어. 그만큼 너의 매력은 독보적이었고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지. 널 거의 매일 만났지만 다음 날이면 또 다시 생각날 정도로 넌 늘 새로운 존재로 내게 다가왔어. 난 봄이 되는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였어. 일년 삼백육십오일 매일 매일 널 보고 싶었거든. 하지만 참아야 했지. 다음 번 겨울이 되기를 기다리며...


그런데 바로 그 때가 된 거야. 널 잊어보려고도 했지만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네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나고 말았어. 그러나 다시 마주하게 된 너에게 내가 해야 할 것은 이별, 오직 이별 뿐이라면... 이런 내 심정을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나만큼이나 너도 혼란스러울거야. 그러나 난 단호히 너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제 우린 헤어져야 해... 네가 너무 방심했던 걸까. 널 만나지 못한 계절 동안 나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어. 한마디로 난 고무신을 거꾸로 신게 된 거지. 겨울과 함께 사라진 네가 없는 동안 난 깨닫고야 말았어. 너와의 만남이 얼마나 내게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널 사랑하지만 나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사랑할 순 없어. 그건 진정한 사랑은 아닐 거야. 아직도 너와의 추억은 그대로야. 하지만 너에게로 가는 모든 길을 난 이제 기꺼이 차단하기로 한다. 잘 가렴. 한 때 너무도 사랑했던 나의 붕어빵이여...


퇴근길 하나 둘 눈에 띄는 붕어빵을 보니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좀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1일 1붕어빵에 충실했던 내가 떠올랐다. 이제는 코 앞에 들이대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기를 쓰고 거절할 붕어빵이 되었다. 붕어빵 입장에선 무척 서운하다 못해 황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 붕어빵을 보면 가장 먼저 자동으로 붕어빵의 성분 분석부터 들어가게 된다. 무슨 보약도 아니고 밥도 아닌 붕어빵을 거의 주식 삼아 먹었던 작년 겨울 일을 생각해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먹을 땐 이 세상에 붕어빵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 그 맛에 포로가 되었으나 거듭 삼킬수록 속이 편칠 않고 머리가 띵하며 몸이 나른해지는 까닭을 그땐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의 원인은 결국 ‘무지’였다. 무지는 반드시 미각에 복종하는 일로 귀결된다. 그나마 본능을 어느 정도 꺾을 수 있는 힘은 ‘지식’에 있다. 지금 같아서는 절대로 ’치킨‘이라든지 ’라면‘을 단지 맛있다는 이유로 먹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동안 먹은 붕어빵을 내 위장에서 마이너스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얼마나 건강해져 있을 것이며 얼마나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흘러간 세월이 아까울 뿐이다.


건강을 지킨다는 것에는 한때는 사랑했던 것들과 아프지만 단호하게 이별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그러기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 동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제 나를 즐겁해 해주던 음식이, 오늘 겪는 고통의 원인이었음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건강은 따라온다. 처음엔 쉽지 않지만 건강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르기에 점점 그 이별이 즐거워진다. 잘못된 음식 중독은 그렇게 하나 둘 끊어진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진정 나를 살리는 생명력이 충만한 음식들이 가까이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그들에게 마음을 열 때, 지금껏 한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꼭 필요한 필수 영양들이 공급되기 시작한다. 그 빛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오랜 기근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내 몸은 새로워진다. 마음도 차츰 변화를 맞이하고 삶은 저 밑바닥에서부터 점점 달라진다. 그리하여 더 이상 옛 애인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행복한 날이 찾아오는데 그 때를 이름하여 나는 ‘건강’이라 부르고 싶다.


“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서정주, ‘견우의 노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