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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쌤 Apr 27. 2022

취중 일기

내가 일기를 쓰는 건지... 일기 내용에 내가 있는 건지..

 말 그대로 취중 일기를 쓰고 있다. 오랜만에 코로나가 풀려간다는 분위기에 취해 회식을 하고 들어오는데 휴대폰에서 알람이 자꾸 울린다. 얼마 전에 올렸던 글 하나가 조회수가 계속 증가한다고 한다. 살면서 이런 관심은 처음 받아본다.

내 글을 누군가가 많이 본다고 한다.. 낯선 느낌..

 얼마 전에 올렸던 글의 조회수가 올라간다는 알림이 회식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온다. 그래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이 상태에도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려 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쓰는 취중 일기다. 교직생활 초임 때 자주 했던 상황이지만 오랜만에 취한 기분으로 컴퓨터 앞에 앉으니 옛 생각이 난다.

 한때는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아이들이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 매일 일기를 쓰고 그 내용을 공유하며 스스로 난 잘하고 있다는 주문을 외우곤 했었고 그땐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는 게 옳은 행동이라스스로 자위했던 기억이 난다.

 오타가 심하게 난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다시 고쳐 쓰고 읽어보고 수정하고 있지만 결과물이 어떨지 감이 오지 않는다. 취중에 쓰는 일기가 잘 써질 리 없지만 나름 욕심이 생기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한 문장 쓰고 다시 읽어 보고 고쳐쓰기를 몇 번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술에 취하니 같은 문장을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쳐 쓰는 게 많아진다. 분명 나는 생각한 대로 적었는데 글은 개판으로 입력되어 백스페이스 키만 연타를 하게 된다. 취한다는 것은 내 의식과 몸동작을 분리하는 의미 같다.

 일기를 쓰려는데 너무 졸릴 것 같다.  사 온 아이스크림이 녹아가고 있다. 얼른 쓰고 달달한 당분 섭취를 하며 취기를 억누르려 했던 나의 계획이 틀어진다. 얼른 쓰고 마무를 해야 이 아이스크림을 살려서 냉장고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자꾸 내가 쓰려던 문장과 다르게 눌러지는 키보드를 보며 오늘은 글 쓰면 안 되는 날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술에 취한다는 건 나의 육감과 운동능력을 다른 무언가에 기대게 한다는 말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빈번히 발생하는 오타와 나의 의식 사이의 갭은 다른 무언가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일기보다는 내 기분을 한번 쓰고 싶어서 쓴 게 아닌가 싶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 아마도 내일 아침에는 기억 못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난 일기를 써야 한다는 약속은 지켰다고 생각할 것 같다. 역시 약속을 하면 실행하게 된다. 난 누군가가 통제해야 잘하는 스타일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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