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 보이게 쓰고 그냥 내가 좋아서라고 읽는다.
올해 옮긴 이 조그마한 학교의 한편에는 골프 연습장이 있다. 어떤 바람직한 관리자분께서 만드신 건지 모르겠지만 학교에 처음 들어설 때 보였던 푸르른 녹색 그물망이 매서운 찬바람에도 그리 싱그러워 보일 수 없었다. 그렇다. 골프라는 스포츠에 입문한 지 벌써 8년 차...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고 이제 그 둘째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쯤 되니 내방 한편에 모셔둔 골프가방이 다시 눈에 들어올 무렵 이 학교로 둥지를 옮기게 된 것이다. 골프가방이 오랜만에 바깥 나들이를 나선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골프 수업이 아침 1교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의 손에 골프장갑을 씌어 골프연습장으로 보낸 후 난 내 차에서 골프가방을 챙겨 학생이 된 마음으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공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치다 아이들은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에 둘러보면 아주 다양한 스윙을 구경할 수 있다. 파워스윙 권O은, 공이 아플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김O담, 친구들의 스윙만 관찰하는 김O윤, 나보다 빨리 칠 순 없지 김O원, 내가 곧 공이고 공이 곧 나니라 박O관, 우아한 스윙을 보여주마 배O화, 곡괭이 스윙 우O 현, 좀 더 낫고 함께하자 이O윤, 공이 아플까 봐요 정O아, 노동 스윙 조O율, 그래도 난 배운 사람 홍O주...
강사 선생님이 들어오신 수업 시간이 이렇게 신난 적이 있던가? 오늘 아이들과 40분 수업 동안 공을 50개는 친 것 같다.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갈고닦은 실력 발휘를 하고 나니 등에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정말 바람직한 교육과정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 했다는 마음에 운동까지 했다는 뿌듯함이 더해져 바람직한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쓸데없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교육활동에 교사의 참여는 필연적이다. 체험학습을 하거나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운영되는 수업에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물불 가리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수영복 갈아입고 물속에 뛰어들던 신규교사 시절 열정의 온도는 시간이 지난 만큼 서서히 식어 감을 느낀다. 지금도 모든 활동에는 교사가 함께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변함없지만 신규교사 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가진다. 아니 그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바쁘게 돌아가는 학사일정, 잠시 정신을 놓고 수업을 하다 보면 쌓여가는 메신저 속의 많은 목소리들, 간혹 생기는 학생 간의 갈등 조정 등 일거리가 늘어나면 학급운영을 위해 쌓아 둔 많은 것들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곤 한다.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후자 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여전히 학급 운영을 하는 데 있어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접근하다 보니 학기가 진행될수록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외부강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오늘 오랜만에 골프채를 잡고 아이들과? 공을 치면서 다시금 느꼈다. 아이들의 교육활동에는 교사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나게 참여했다는 것은 비밀이다. 학기말에 건의를 좀 해야겠다. 이런 바람직한 교육활동은 시수를 더 늘려야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학생의 사진 사용을 학생,학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학기말 학급특색 내빛깔책만들기에 들어갈 원고에 쓰일 예정인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