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유신 Jun 22. 2021

제품 개발 전에 생각할 것들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옮긴지도 3년이 넘었다.

스타트업 회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8년 간 떠났던 한국은 많이 바뀌었다.

러시아에 있는 동안 한국은 IMF라는 힘든 시기를 지나며 기업 분위기와 환경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들어와서 삼성과 LG에서 근무하니깐 모든 회사는 이렇게 근무하는 줄 알았다.

아침 8시 출근해서 오후 5시 퇴근이지만 5시에 저녁 먹고 야근하다가 밤에 퇴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사무실에서 회사 밖이 보이지는 않지만 2층 이상 올라가면 담장 너머로 회사 밖이 보였다. 

물론 천안과 평택이라는 지방에 있고 또한 공장이 있는 단지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었지만 업무시간에 회사 담장 밖에는 트럭만 돌아다니고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회사를 나와서 스타트업 회사로 옮겼다.

회사는 서울 강남에 있었다. 

퇴사하고 난 후에 평일 낮에 강남을 가서 충격을 받았다.

낮시간에는 강남에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학생이나 주부 또는 은퇴하신 분들만 길에 있을 줄 알았다.

길에서 마주친 30대, 40대 남자들을 보고 출장이나 외근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복장은 전혀 직장인 같지 않았다. 

꼭 정장을 입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직장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직장인과 다른 형태인 직장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나도 법인을 만들고 대표로 있지만 거의 프리랜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강의가 있으면 강의를 가고 업무가 있을 때 나가지만 대부분 집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

같은 환경에서 오래 있으면 모든 세상은 같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내가 속해있는 환경이 익숙해지면 다른 세상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보다.

제품을 만들 때에 중요한 것은 사용하는 사람이 속해있는 세상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신제품을 만들 때 일반적으로 제품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생산하고 판매 중이 제품을 개선해서 신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때 형식적으로 고객 반응도 살피게 되고 유사 제품도 분석해보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분석하기도 한다.

이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좋은 부분을 모두 담아서 제품에 반영하려고 한다.

좋은 것을 모두 담아서 시장에 내놓으려 하는데 가격이 비싸지므로 다시 몇 가지 부분을 빼고 제품을 다시 만든다.

결국에는 기존에 있는 제품보다 약간 좋은 (가격에 맞춘) 제품이 나오게 된다.

제품 품질은 많이 좋아지지 않고 고객 만족도도 큰 변화가 없게 된다.

누구를 위한 제품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기존 제품에서 신제품을 만들게 된 결과이다.




삼성에서 LG로 이직했을 때 사내 포탈에 대하여 물어보고 근태관리와 출장 시스템 등에 대하여 물어봤다.

LG에서 활용하고 있는 사내 포탈에 적응하는 데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본적인 회사 생활에 필요한 부분은 거의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적응할 수 있었다.


LG에서 퇴사하고 난 후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가서 사내 포탈에 대해 물어보고 시스템에 대해 물어봤다.

사내 포탈이 없어도 회사가 돌아가는 것을 알았다.

회사가 3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굳이 사내 포탈이 필요하지 않았고 업무 관리 등 스타트업이 많이 활용하는 협업 프로그램으로 일정 및 과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스타트업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이 의외로 많이 있다. 대기업에서 활용하는 시스템은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사내 시스템을 활용하는데 반해서 스타트업에서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은 효율에 초점이 맞춰 있다.


물론 업무 효율이 우선인데 이미 한국에 와서 시스템이 완성된 직장에서 근무하다 보니 시스템이 없으면 일을 못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기업 내부에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용하기는 많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스템을 구축하는 목적을 생각하면 아직 작은 회사에서는 업무를 우선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업무 위주로 속도가 나는 방법을 적용해서 진행한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 여러 가지를 비교하고 그중에 스타트업 업무와 가장 잘 맞는 시스템을 선택하여 사용하게 된다. 

업무 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지 일정관리가 중요한지에 따라 각각 특성이 우수한 시스템을 선택한다.

필요하면 약간 비용을 투자하여 필요한 기능을 추가하기도 한다.


대기업을 나와서 다른 기업들을 컨설팅할 기회가 있었다.

흔한 주간업무 형식도 정리되어 있지 않고 업무 프로세스도 없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회사를 떠나서 반드시 있는 것은 보고체계였다.

물론 지금은 수평적인 보고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곳이 많지만 대부분은 순서대로 올라가는 보고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책임과 권한 측면에서 보면 보고체계가 필요하지만 보고체계에 있어서 순서만 정해져 있을 뿐 책임과 권한에 대한 한도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로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크게 보면 어느 정도 선까지는 정해져 있는 곳이 많다.


대기업도 내부로 들어가 보면 작은 회사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 

팀 하나를 회사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다. 팀원 숫자는 작게는 2명에서 100명 이상으로 구성되지만 그 안에 팀원 각각 역할이 있고 팀 단위에서 운영하는 공통 업무도 있다.


회사와 다른 것은 회계와 인사 등 운영에 대한 업무 비중이 작다는 것이다.

회사의 목적과 운영 수준이 당연히 팀과 다르지만 팀 하나 속에도 회사 업무를 작게나마 거의 대부분을 수행하고 있다.


대기업에는 상품기획, 연구개발과 같이 특정 업무만 하는 팀이 있다. 

작은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팀을 구성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런 업무 위주로 사람을 뽑게 되면 작은 회사는 인건비 부담이 많이 될 것이다.

회사가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역량이 작은 회사에는 없다.


회사는 정해진 업무가 있는 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업무를 다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스타트업 회사에서 시스템을 도입하자 하면 그런 시스템은 대기업이니깐 운영되는 것이라고 하고 심하면 '대기업병'에서 아직 못 벗어났다고도 한다.


'대기업'에서 하던 업무 중 하나인 상품 기획을 일반 기업에서 진행하려고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첫 번째 이유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

시장 조사를 하려고 해도 대기업에서는 정리된 '유료'보고서를 구매하여 결과를 보면 되는데 일반 회사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무료'정보를 통하여 직접 분석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시작부터 다르기 때문에 대기업과 일반 기업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중요한 문제는 대기업에서는 유명한 컨설팅 업체에 의뢰하고 결과를 들으면 되는데 일반 기업은 지원 과제 등에 신청서를 작성하고 선정이 되기 위해 발표도 해야 하고 필요한 서류도 준비해 놓아야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원과제가 선정되지는 않고 그중 하나가 선정되면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내가 컨설턴트인데 또 다른 컨설팅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컨설팅 시간이 있으므로 컨설턴트와 만나서 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기다린다.


나도 사내 컨설턴트였는데 퇴사하고 난 후에 컨설팅을 받는다고 하니 기대가 됐다.

마케팅 컨설턴트인데 다 아는 얘기만 하고 몇 가지 방법론을 가져와서 설명하고 있다.

고객 페르소나 작성하는 것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컨설팅 결과는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컨설팅이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컨설팅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고 컨설턴트 관점에서 바라보는 제품과 고객을 알 수 있었다.

무조건 컨설팅을 많이 받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제품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제품을 처음 보는 사람 관점에서 개선할 것과 불편한 것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싸고 만들기 쉽게 개발하는 것이 첫 번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작가의 이전글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