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유신 Jul 11. 2021

고기 부심

조급하지 말자

삼겹살을 먹으러 가면 고기를 굽겠다고 하는 사람과 구워준 고기를 먹겠다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고기를 굽겠다는 사람이 많은 자리는 서로 고기를 더 잘 굽는다고 하면서 집게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삼겹살을 자주 뒤집으면 안 된다는 사람과 자주 뒤집어야 맛있게 구워진다는 사람을 보면서

삼겹살 굽는 것이 무슨 큰 일인지 고민하게 된다.


회사 다닐 때 삼겹살을 먹으러 파트 사람들과 간다. 

나까지 5명 중에 고기를 굽겠다는 사람이 3명이다. 

서로 고기 굽는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집게와 가위를 먼저 잡으려 한다.

물론 거의 대부분 내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있었다.

고기 굽는 기간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경력 기간으로 우기면 되고 또 내가 파트장이기 때문에 직급으로 우길 수 있었다.

남들은 파트장이 직접 삼겹살을 구워주는 것에 혹시나 감동할 수 있지만 나는 정말로 내가 고기 굽는 것이 좋아서 굽는 것이다. (물론 우리 파트원들은 이상하게 고기 굽는 것을 즐겨해서 잠시 딴짓하면 집게를 뺏긴다.)


삼겹살을 구우면서 얘기를 들을 수 있고 심심하지 않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5인분을 시켰을 때 전체 고기양을 보면서 고기 불판에 맞게 적당한 간격으로 고기를 채워나가고 또한 김치와 버섯 등 같이 굽는 것의 배치를 생각하고 삼겹살에서 흘러내리는 기름의 흐름과 방향을 제어하는 것이 좋다.


고기를 먹다가 중간에 끊기면 안 되기에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 먹었는지도 파악하면서 추가로 시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불판에 오는 젓가락 회전 속도를 계산하면서 속도가 느려지면 추가할 것인지 물어보고 남은 재고량과 소비량을 생각하면서 추가 발주가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고기를 굽는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배가 많이 고프다고 고기가 빨리 구워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고기가 늦게 구워지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고기 익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불판이 달궈져서 고기가 빨리 익는 것도 있지만 배가 불러짐에 따라 고기 익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이 느껴질 수 있다.


퇴사하고 난 후에 빨리 자리를 잡고 싶었다. 

마음은 조급한 데 무엇인가 결과로 보이는 것은 없었고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주변에 모든 일이 확실하지 않은 결과를 향해 느릿느릿 가고 있다고 느꼈다.

불판에 삼겹살을 올리고 난 후 아직 달궈지지 않은 불판을 보면서 지난번 식당에서는 빨리 구워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식당에 괜히 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불판이 달궈지고 난 후에 고기를 올리라고 하는데 고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올린다.

고기는 익는 것 같지도 않아 바로 뒤집어본다.

한참을 기다리면 익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기름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일이 많지가 않고 나를 찾아주는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강의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전화 돌리고 찾아간 사람 중에 나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먼저 나를 찾고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조급한 마음에 불판이 달궈지기 전에 고기만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 것 같다.


불판이 달궈지기 전에 올려놓은 삼겹살 한 면이 익은 것 같아 뒤집으니 불판에 붙어버린 부분이 있어 고기 뒤집기가 쉽지 않다.

빨리 먹으려고 기다리지 못하고 올려놓은 것인데 오히려 제대로 구워지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요청하는 일을 모두 한다고 했다.

아직 불판이 달궈지지 않았는데 고기를 올린 것과 같이 이때 했던 일은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처음 올린 삼겹살이 익어서 불판에서 내려놓고 두 번째 삼겹살을 올린다.

이미 불판이 충분히 달궈져서 이제는 제대로 익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면 안 된다.

삼겹살은 양쪽면이 익어야지 먹을 수 있는 법이다.

뒤집을 때를 잘 봐야 한다.

너무 자주 뒤집으면 삼겹살이 불판에 있는 시간보다 불판 위에 떠있는 시간이 많아 오히려 늦게 구워진다.


불판이 달궈지는데 거의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두 번째 고기를 올릴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또 조급했던 것인지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다.

다시 찾아줘야 하는데 여러 사정에 의해서 불려지지 않는다.


제주로 왔다

다시 조급해져서 고기를 많이 올려놓았다.

새로운 식당에 가면 새로운 불판으로 구워야 하는데 아직 불판이 달궈지지 않은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도 1년이 지나 이제 불판이 달궈진 것 같다.

어쩌면 이제 두 번째 고기를 올릴 때가 되었다보다.

고기를 잘 보면서 알맞게 뒤집어야겠다.


삼겹살은 뒤집는 때가 있다

조금 더 굽는다고 하다가는 고기가 타버린다.

급하다고 계속 뒤집으면 고기가 오히려 늦게 익는다.

고기는 불판 위에 있을 때 익는다.

뒤집는 동안은 불판에서 떨어진다.


삼겹살을 뒤집을 때는 삼겹살이 스스로 알려준다.

지켜봐라.



작가의 이전글 제품 개발 전에 생각할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