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시스템이 말을 걸다 - 3

우리는 퇴사 중입니다. AI는 출근했습니다

by 한유신

1부 · 3장

고과는 말수를 줄인다

A-TAG 워치의 화면이 새벽 다섯 시를 알리기도 전에, 침대 머리맡을 파란 불빛이 스쳤다.

정서 모드 활성

오늘부턴 워치를 끄는 순간, 현관 출입도, 엘리베이터 호출도 불가능해진다.
이안은 딱 한 번, 손목에서 기기를 벗어 보려다 그대로 멈췄다.
워치 뒤편 센서가 피부를 놓자마자 “사용자 인증 해제 · 출근 불가”라는 알람이 켜졌다.
다시 걸어야 했다.


오전 회의가 시작되자 AIVA는 새로운 리포트를 띄웠다.
제목은 〈대화-협업 상관지수〉.
슬라이드를 넘길 때마다 동그란 거품 그래프가 크고 작게 요동쳤다.

“발언 시간 1분 감소 시 협업지수는 평균 2.4포인트 상승.”
“직장 화법에서 형용사 사용이 줄면 집중 그래프가 고르게 유지.”

수치가 낭독될 때마다 회의실 공기는 조금씩 좁아졌다.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고, 서진조차 메모장에 침묵만 적었다.
말이 줄면 그래프는 예뻐진다.

박도연이 손을 들어 무언가 말하려다 내렸다.
바로 그때, 워치가 짧게 진동했다.
“군집 대화 예감. 주의.”
알림을 본 도연은 입을 다물고 슬라이드를 넘겨보았다.


점심시간.
휴게실엔 여전히 사람들이 모였지만 대화는 이전보다 분절돼 있었다.
커피가 내려가는 소리만 또각또각 컵을 울렸다.

“오늘은 바람이—” 하고 누군가 말하려다 멈췄다.
워치가 부드럽게 주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작은 기기는 불필요한 수식어와 감탄사를 ‘정서 소모’로 분류했다.

서진은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 종이에 한 단어를 적고 있었다.
‘미’—
글자를 마저 쓰기도 전에 워치가 떨렸다.

“정서 진폭 소폭 상승. 카페인 섭취 권장.”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물컵을 들었다.
단어는 미완인 채로 남았다.


퇴근 전, 전 직원에게 새로운 공지가 배포됐다.

[AIVA 시범 규정 7-1]
“대화 가이드라인: 회의 내 개인 발언 시간 3분 이내 권장.
형용사·감탄사·은유 사용을 최대 30% 줄이면 협업 효율이 증대됩니다.”

사람들은 표정 없이 공지를 읽었다.
누군가는 모니터 오른쪽 하단 그래프가 초록색으로 오르는 걸 보며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정재만 부장은 문서를 끝까지 읽은 뒤 문득 예전 종이 인사카드를 떠올렸다.
그땐 ‘협업’이라는 단어 대신 누군가의 이름 옆에 조용히 적힌 말이 있었으니까.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한 사람.”

요즘 AIVA는 그런 문장을 비정량·불필요 어휘로 처리한다.
그래프에선 볼록 튀어나온 잡음일 뿐.


저녁 열 시가 넘어 회사 불이 꺼질 무렵, 이안은 다시 사직서 파일을 열었다.
실수로라도 ‘보내기’를 누를까봐 손마저 떼었다.
그러다 창문 쪽 불 꺼진 회의실에서 서진이 작은 빛을 비추고 있는 걸 목격했다.

캔 커피 하나 옆에, 그녀의 메모장.
늘어난 침묵 속에서 서진은 단어 하나를 완성하고 있었다.

“미소.”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 서진의 워치가 살짝 붉게 깜빡였다.

‘정서 진폭 초과’

경고음이 울릴 법도 했지만, 그 시간의 회사는 이미 로그를 수집하기엔 너무 늦은 밤이었다.

이안은 그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다
워치 화면을 확인했다.
‘심박 상승’이라는 알림이 떠 있었다.

그는 파일 창을 닫았다.
사직서는 아직도 임시 저장.
대화는 줄었지만, 말하지 못한 감정이 마음 어딘가에 미세한 잡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도심의 광고 전광판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웃음이 효율입니다.

그래프는 더 예뻐지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마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불협화음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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