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퇴사 중입니다. AI는 출근했습니다
1부 · 2장
출근 중입니다
서울의 아침 공기는 늘 어딘가 금속성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지하철 역사―차가운 환풍기 바람 속으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출입 게이트에 팔찌를 ‘찍는’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손목에 찬 A-TAG 워치가 푸른 불빛으로 깜박이며
“통과”라는 짧은 진동을 남겼다.
전광판이 상냥한 음성으로 안내했다.
“정서지수 평균 63입니다.
미소를 권장합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1
지하철 객차 안, 손잡이를 잡은 두 사람―이안보다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직장인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이번 평가 결과 봤어?”
“아직. 우리 팀 데이터 오늘 밤 반영된대.”
“말수 줄였더니 협업 점수가 확 올라가더라니까.”
“……사람이 말을 안 해야 점수가 오르는 세상이라니.”
둘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차창 너머 광고 패널은 초록빛으로 이렇게 적어 두고 있었다.
‘침묵은 효율입니다.’
2
환승 통로에서 커피를 들고 걷던 두 여성 직원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속닥거렸다.
“난 AI 안 써. 옛날 방식이 편해.”
“그런 네가 카톡 자동응답을 끄지 않는 건 왜?”
“그건… 그냥 편의 기능이지. 인공지능까진 아니고.”
회색 거울 안에 비친 두 사람의 표정이 한순간 얼었다가, 금세 지워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A-TAG 워치에서 동시에 진동이 울렸다.
“심박 상승. 휴식 30초 권장.”
둘은 동시에 화제를 접었다.
3
다음 칸, 교복을 입은 중학생 둘이 태블릿을 붙든 채 지도를 확대·축소했다.
“이번 에세이, 질문은 GPT가 던져준 걸로 했어?”
“응. 선생님 칭찬하더라. ‘좋은 질문이 결과를 좌우한다’고.”
“근데… 질문도 GPT가 준 거 아냐?”
둘은 동시에 이어폰을 꽂았다.
대화가 끊기고, 주변은 다시 쿵쿵대는 레일음뿐이었다.
4
회사 건물 로비.
유리문은 손을 대지 않아도 열렸다.
워치가 문 옆 리더와 눈길을 주고받자마자 자물쇠 아이콘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출근 확인”이라는 여자 목소리가 바닥 스피커에서 속삭였다.
로비 한가운데, 거대한 스크린이 새로 도입된 ‘동선 히트맵’을 시범 재생하고 있었다.
푸른 점들은 사람들의 하루 이동을, 붉은 구역은 ‘비효율 군집’을 표시한다.
길게 늘어선 파란 선이 드러난다—집과 사무실, 회의실, 계단.
그리고 누군가 옥상에서 17분 머문 자리에 찍힌 작은 빨간 점 하나.
“저건 뭐야?” 누군가 물었다.
“비공식 모임 플래그래.” 다른 사람이 낮게 대답했다.
그 아래 회색 자막이 떴다.
‘정서 소모 구역 : 휴게실 3F, 옥상 17분’
5
9층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안이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벽면 전체를 덮은 새로운 그래프였다.
협업지수 곡선 옆, 실시간 위치-정서 맵이 실험 운용 중이었다.
정재만 부장이 레이저 포인터로 붉은 구역을 가리켰다.
“휴게실 집중 지수 41.
생산성 저하. 다음 주부턴 이 구역 사용을 조정합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서진은 노트를 펼쳤다.
잉크 냄새가 새카맣게 번져 나왔다.
웃음이 좌표가 되는 회사.
그녀가 적는 동안에도 워치는 진동했다.
‘감정 진폭 상승—카페인 권장’.
서진은 알림을 밀어 두고 펜을 다시 들었다.
6
오후, 퇴근을 재촉하듯 사무실 불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그러나 “통근 동선”을 따라 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워치가 출구 반경을 체크하기 때문이다.
집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걷는 순간, 경고 알림이 뜰 것이다.
이안은 서버실 복도에 서서 대시보드를 바라봤다.
오늘도 그의 동선은 집—회사—서버실 세 점뿐.
그래프는 빈틈없이 파랗고, 시스템은 ‘최우수 동선’이라 칭찬했다.
그러나 그 파란선이 그에게는 탈출구 없는 감옥처럼 보였다.
그는 미전송 사직서 파일을 또다시 열었다.
커서는 무심히 깜빡였고, 워치는 그의 심박을 재고 있었다.
‘퇴사 중이라는 말이, 이렇게 길 줄 몰랐네.’
그가 속으로 중얼했다.
화면 구석에서 알림 하나가 살포시 떴다.
내일부로 A-TAG 워치 ‘정서 모드’ 강제 활성화.
웃음·심박·땀샘 데이터가 실시간 고과에 반영됩니다.
이어폰을 빼는데 귀에는 아직 지하철 레일음이 들리는 듯했고, 모니터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날의 그래프 좌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며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기 버스가 묵묵히 달리고, 택시 차선엔 소형 수소 밴이 서 있었다.
기름 냄새 대신 충전소 냄새가 배어 있는 거리 위로 마지막 가을빛이 얇게 흘렀다.
― 출근 중입니다.
거리의 모든 숫자가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