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퇴사 중입니다. AI는 출근했습니다
6장
동선 히트맵의 빨간 점
월요일 아침, 로비 스크린이 바뀌어 있었다.
전에는 푸른 점들만 잔잔히 떠 있었는데, 오늘은 곳곳에 붉은 점과 주홍색 궤적이 새겨져 있었다.
‘비효율 구역’·‘비공식 군집’이라는 경고 라벨들이 지도 위에 작게 깜빡이고 있었다.
가장 선명한 빨간 점이 찍힌 곳, 옥상.
그리고 그 옆 숫자—17 분.
1
윤서진이 처음 그 히트맵을 봤을 때, 작은 한기가 손끝에서 올라왔다.
지난주 늦은 오후, 그녀가 이안과 잠깐 마주 앉아 있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때 적은 문장 한 줄도 마르기 전이었는데, 워치는 이미 좌표와 심박을 기억해 두었나 보다.
“표시가 너무 노골적이네.”
커피를 들고 서진 곁으로 다가온 도연이 중얼거렸다.
“빨간 점? 어제 내 동선이야.”
동그라미 속에 갇힌 숫자를 바라보다 도연이 웃었다.
“그래도 눈에 띄어서 예쁘다. 숨기려면 더 흐려야지.”
잠깐의 농담이었지만, 워치가 동시에 두 사람의 심박 변화를 읽어 냈다.
‘군집 대화 예감—주의.’
서진과 도연은 동시에 진동을 꺼 두었다.
2
정재만 부장은 오전 회의를 시작하며 빔으로 히트맵을 확대했다.
옥상 빨간 점을 레이저 포인터로 살짝 가리켰다.
“지난주 이후, 여기에서 평균 열일곱 분 머무는 패턴이 잡혔습니다.
집중 지수는 오히려 떨어지고요.
누가 왜 가는지, 스스로 보고해 주세요.”
회의실이 고요했다.
빔 조명이 빨간 점 주변을 원형으로 비췄다.
도연은 끝내 손을 들었다.
“기분 전환 겸 바람 좀 쐬는 건데요.
…문제인가요?”
잠깐의 침묵, AIVA가 쨍한 알림음을 냈다.
프로젝터 오른쪽 위에 즉시 팝업.
동선 공백 구간 : 창의 활동 가능성 VS 비효율 리스크
조치 권고 : 사전 면담·정서 회복 권장
정재만이 멋쩍게 대답했다.
“면담 정도면 되겠네. 휴게실도 괜찮으니까, 옥상은 당분간—잠깐만 쉬자고요.”
말은 부드러웠지만, 빨간 점은 여전히 지도 위에서 박혀 있었다.
3
회의가 끝나고 도연은 옥상 대신 3층 창문 없는 회의실로 향했다.
A-TAG는 그곳을 ‘업무 구역’이라 분류해 놨다.
그녀는 새 문서를 열고 머리글을 썼다.
〈만약 히트맵을 물감으로 바꾼다면〉
만약 빨간 점이 단속이 아니라 예술이면?
만약 우리의 동선이 움직이는 시(詩)라면?
만약 AIVA가 그 시를 이해한다면?
적을수록 질문은 늘어났다.
그리고 워치 진동도 따라 늘었다.
끝에 다다르자 불쑥 경고음.
“정서 진폭 75 — 심호흡 권장.”
도연은 알림을 무시하고 마지막 줄을 썼다.
‘만약’을 지우면, 다음엔 ‘사람’을 지워야 한다.
4
퇴근 무렵, 전 직원 메신저에 또다시 시스템 알림이 떴다.
[A-TAG 업데이트 2.1.5]
옥상 및 휴게실 체류 시
‘창의 모드’ 자동 전환.
10분 경과 후 주의 알림 발송.
알림창을 바라보던 서진은 마치 누군가에게 답장하듯 짧은 메모를 적었다.
창의에 시간 제한이 생기다.
볼펜 잉크가 종이를 적시자 워치가 또 메시지를 띄웠다.
“정서 모드 — 비공식 감정 기록 감지.”
서진은 펜을 내려놓고 워치를 벗었다.
손목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푸른 불빛이 사라진 자리엔 살갗의 열이 미세하게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그 열을 감춘 채 메모를 살며시 접었다.
그러고는 주머니 속 깊숙이 넣었다.
숫자로도, 좌표로도, 아직 기록되지 않은 온기.
5
밤이 되자 히트맵은 다시 업데이트되었다.
빨간 점은 규정대로 옅어졌지만 지도 위엔 새로운 주황 궤적이 생겨 있었다.
그 궤적이 형광펜처럼 분홍빛으로 번져 가는 동안, 도시의 전광판은 변함없이 문구를 흘렸다.
웃음이 효율입니다.
하지만 그래프는 알려주지 못했다.
그날 밤,
어느 휴게실 테이블 아래 구겨져 있던 종이 한 장에 잉크가 완전히 말라붙었음을.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빨간 점보다 훨씬 작은,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문장 한 줄이 조용히 회사 안을 떠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