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퇴사 중입니다. AI는 출근했습니다
2부 · 7장
점심시간, 차를 고르다
식당 라인은 오늘도 조용했다.
국물이 끓는 소리와 식판이 부딪히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울릴 뿐, 잡담은 대부분 워치 알림에 눌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트레이를 들고 막 나온 막내 지훈이 뜻밖의 한마디를 던졌다.
“선배님들, 혹시 전기차 타 보셨어요? 저… 내년에 차를 살까 해서요.”
순식간에 몇 짝의 눈길이 그에게 모였다.
‘차’라는 단어는 이 회사에서 꽤 오랜만에 꺼내진 낭만이었다.
윤서진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오, 대담한데? 요즘엔 차를 ‘구매’ 자체보다 구독 서비스로 돌리는 사람이 더 많잖아.”
지훈은 머쓱하게 웃었다.
“충전소가 늘어나서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수소차도 눈에 들어오고, 하이브리드가 과도기라던데….”
그가 말을 잇기 전에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도연이 흥미롭다는 듯 몸을 기대었다.
“만약 수소 인프라가 네 회사-집-여행 코스를 따라 깔린다면?”
도연 특유의 ‘만약’이 튀어나오자 워치가 두 사람 손목을 동시에 울렸다.
“군집 대화 예감 — 주의.”
지훈은 급히 볼륨을 줄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전기차가 기본이긴 하죠? 주행거리도 늘어나고….”
옆자리 이안이 조용히 컵을 내려놓았다.
“도심 통근이면 600킬로짜리 전기 SUV가 가장 무난할 거야.
충전망도 촘촘하고, 배터리 보증이 길어서 유지비가 낮아.”
이어폰을 빼고 듣던 서진이 손가락으로 식판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그래도 가끔 장거리 여행 가면 불안하지 않아?
수소 스테이션이 루트 따라 있으면 장거리 주행은 수소가 더 편해.”
정재만 부장은 국을 후루룩 마시다 말고 끼어들었다.
“보험료 생각하면 아직 하이브리드가 나아.
전기 충전료도 전기요금제 따라 천차만별이야.”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재만의 워치가 깜박이며 진동했다.
“스트레스 지수 상승 — 심호흡 모드 권장.”
도연이 낮게 웃었다.
“차 한 대 사겠다는 고민에도 워치가 이렇다니까.
만약 워치가 대출 금리까지 추천해 주면 어쩌죠?”
지훈은 형광등빛 아래서 작은 한숨을 터뜨렸다.
“휴식 모드 해제 못 할까 봐, 차도 맘대로 못 고르겠네요.”
윤서진이 컵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워치가 잡는 건 심박수뿐이야.
설렘인지 스트레스인진 구분 못 해.”
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
“결국 결정은 네 일상 동선이 해 주는 거고, 워치는 예의상 휴식하라 권고할 뿐.”
그 순간, 서진의 워치도 짧게 울렸다.
“심박 상승 — 카페인 섭취 권장.”
서진은 알림을 무시하고 지훈에게 눈짓했다.
“예상 주행 코스랑 충전소 위치 지도 먼저 모아봐.
숫자로 안 보이면, 너 마음은 계속 흔들릴 거야.”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가엔 어쩐지 어린 설렘이 번졌다.
잠시 뒤 워치가 ‘휴식 모드’를 재촉했지만, 그 진동은 이번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식당 천장 스피커가 부드럽게 안내했다.
“현재 식당 내 정서지수 67.
웃음은 생산성을 높입니다.”
그러나 다들 입술에만 실금 같은 미소를 그린 채 다시 파란 불빛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워치는 저마다 심박과 땀과 동선을 기록했고, 지훈의 머릿속엔 전자지도와 충전소 마커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 오늘 밤, 그는 집에서 전기 SUV 사양표를 다시 펼칠 것이다.
워치가 ‘구매 스트레스’를 감지해 휴식을 권해도, 그 설렘까지 멈추게 하진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