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고객은 AI가 쓴 줄 알았다

우리는 퇴사 중입니다. AI는 출근했습니다

by 한유신

3부 · 14장

고객은 AI가 쓴 줄 알았다


A-TAG 워치가 아침부터 분주했다.
회의가 잡히자 ‘외부 방문’ 모드가 자동으로 켜졌다.
“고객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라벨이 달린 일정에 심박·발화·표정 지수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도록 세팅되었다.

윤서진은 손목을 톡톡 두드렸다.
전날 밤 늦게까지 다듬은 슬라이드 제목이 떠올랐다.

캠페인 슬로건 1안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단 열세 글자였다.
그러나 글자 수보다 더 무거운 의미가 걸려 있었다.
이 문장이 AI가 아니라 ‘사람’이 썼다는 사실.


1 ― 프레젠테이션 룸

고객사 임원 네 명이 자리에 앉자마자 자사 AI 시스템 이름부터 열거했다.
GPT 5.1 파인튜닝 버전, 디자이너봇, 콘셉트 제너레이터….

서진은 노트북 화면을 공유하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번 캠페인의 핵심은 ‘사람이 건네는 50자’입니다.
숫자로 반영되지 않는 마음을, 문장으로 복원하는 시도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객 쪽 팀장이 손을 들었다.

“아, 그 카피! 어젯밤 저희도 돌려 봤습니다.
생성 모델이 감성 필터로 뽑아 준 줄 알았는데, 직접 쓰신 거였어요?”

서진의 워치가 미묘하게 떨렸다.
“정서 진폭 상승”—알림을 밀어 두고 그녀는 웃었다.

“네, 손글씨로요.”

임원들의 눈썹이 동시에 올라갔다.
“손글씨?”
“사람이 직접?”


2 ― AI의 오해

고객사 내부 슬랙 화면이 회의실 모니터에 띄워졌다.
전날 밤, 그들은 카피를 분석한 뒤 “감성 스코어 97”이라는 레이블을 붙였다.
분석 결과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간 작성 가능성 … 8 %
LLM 4.x 이상 생성 … 92 %


회의실에 잠깐 웃음이 번졌다.
도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사람이 8%고 AI가 92%라면…
사람은 점점 사라질 텐데요.”

임원 중 한 명이 덧붙였다.
“그래도 효율이 중요하잖아요.
모델이 97점을 주면 충분히 쓸 만한 카피라는 뜻 아닙니까?”

정재만 부장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효율이 기준이라면, 우린 오늘 국밥 대신 알약을 먹는 게 더 빠르죠.”

잠깐 정적.
그러나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워치가 조용히 ‘완곡 대화’라 기록했지만 회의실 공기는 눈에 띄게 풀렸다.


3 ― 핸드라이팅 파일

서진은 주머니에서 작고 접힌 종이를 꺼냈다.
전날 정미순 식당에서 썼던 손글씨 원본.
옅은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AI가 만든 것인지, 사람이 만든 것인지 가려내고 싶으시다면…
잔여 잉크 냄새까지 분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종이를 건네받은 고객팀장은 잠시 말없이 종이를 바라보다 웃었다.
“우린 냄새 센서는 아직 못 달았습니다.”

이안이 노트북 트랙패드를 눌렀다.
덧붙인 슬라이드가 떴다.

동료 감성 코멘트 로그
“국 한 그릇으로,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이건 AI가 쓴 문장이 아닙니다.”
이안은 덤덤히 말했다.
“워치는 심박과 땀은 기록했지만 국물 맛은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적었습니다.”

고객사 임원들의 시선이 슬라이드와 종이를 번갈아 봤다.
AIVA는 슬라이드를 ‘알 수 없는 어휘’로 표시했다.


4 ― 알림음이 꺼진 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고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효율”이라는 단어가 한 번쯤 입술 끝에 맴돌았지만 최종 코멘트는 달랐다.

“우리가 가진 AI도…
가끔은 ‘사람’에게 배우게 해야겠군요.”

회의실을 나서며 서진의 워치가 진동했다.

“협업 지수 상승 — 대화 길이 적정.”

그 알림이 칭찬인지, 아니면 단지 로그에 불과한지를 판단할 기준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오늘 발표가 끝난 뒤 고객사 내부 슬랙에는 아마도 이런 메시지가 떠 있을 것이다.

“AI가 썼다던 카피, 사실은 손글씨였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손글씨를 흉내 내려면, 몇 줄의 코드가 더 필요하죠?”


서진은 회의실 문을 닫고 주머니 속 종이를 다시 접었다.
종이는 조금 더 낡아졌지만 잉크 냄새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워치가 알려 주지 않아도 그 냄새만큼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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