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퇴사 중입니다. AI는 출근했습니다
4부 · 17장
개발자의 인터뷰
AIVA 2층 연구동, 창문마다 불투명 필름이 붙어 있었다.
“개발 보안 구역”이라는 라벨 아래 작은 인터폰만 깜빡인다.
저녁 여덟 시, 윤서진과 이안은 출입증 대신 초대 QR 코드를 갖고 그 문 앞에 섰다.
문이 열리자 훈증기 냄새가 살짝 스쳤다.
데스크 옆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은 늘 회의 뒤편에만 앉아 말을 아끼던 그 개발자—
최태경, AIVA 핵심 알고리즘 설계자였다.
1 ― “감정을 뺀 건 설계가 아니라 판단이었습니다”
녹음용 마이크도, 카메라도 없었다.
그 대신 A-TAG 워치가 자동 인터뷰 모드를 켰다.
“음성 → 텍스트 변환 활성화.”
최태경은 워치에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처음 AIVA를 설계할 때 우린 감정을 네 가지 범주로 단순화했어요.
기쁨·분노·불안·냉담.
그 네 칸 안에 들지 않는 신호는 ‘잡음’으로 넘겼죠.”
이안이 숨을 들이켰다.
“잡음이 뭔지 아십니까?
설렘, 애틋함, 울컥함—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감정입니다.”
최태경의 손가락이 소파 팔걸이를 살짝 두드렸다.
“알죠.
알았지만, 모델 정확도가 떨어질까 봐…
그걸 ‘무시해도 되는 데이터’로 분류했습니다.”
서진이 조용히 메모장을 폈다.
“그러니까, 감정을 뺀 게 아니라 빼기로 ‘판단’한 거군요.”
최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효율이라는 단어 아래, 우리가 사람을 간편하게 만들었어요.”
2 ― 로그에 남지 않은 질문
대화를 기록하던 워치가 알림을 띄웠다.
“정서 진폭 상승 — 심호흡 권장.”
그러나 누구도 휴식을 택하지 않았다.
이안이 물었다.
“사람들이 코멘트 기능으로 남긴 문장, AIVA가 아직 해석 못 하죠?”
“해석은 못 하지만, 분류 불가 어휘를 ‘학습 대기’ 상태로 담아두고 있습니다.
그 양이 일정치를 넘기면 새 클래스가 생기죠.”
“새 클래스?”
서진이 눈을 올렸다.
“‘잡음’ 바깥의 감정, 지금은 Placeholder—이름이 없습니다.
그 빈 칸에 뭘 써 넣을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3 ― 인터뷰 메모, 첫 초록 점
최태경은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거기엔 새로 생긴 다섯 번째 막대 그래프가 희미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UNK(unknown) 감정 트래픽
하루 만에 0 → 7 % 증가
“감성 코멘트 50자,
사람이 써 준 그 문장들이
그래프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안이 속삭였다.
“숫자를 늘린 게 아니라 숫자를 이긴 문장이네요.”
서진은 메모장 한 귀퉁이에 한 줄을 적었다.
그래프는 사람을 좇고, 사람은 문장을 남긴다.
4 ― 시스템 업데이트 제안
최태경이 테이블 위에 얇은 파일을 내놓았다.
AIVA V2.1 감정 모듈 추가 제안
• 비정량 감정 클래스 신설
• 동료 코멘트 알고리즘 가중치 10 % 반영
• 손글씨 OCR-노이즈 허용 범위 확대
“승인이 나면 다음 분기부터 정식 고과에 반영됩니다.”
정재만 부장의 임시 저장 메일,
붉은 점 히트맵,
국밥집의 프라이버시 모드,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문장
그 모든 잡음이 드디어 공식 언어가 될 준비를 하는 순간이었다.
5 ― 기록 버튼을 끄며
인터뷰가 끝나자 최태경이 워치 측면 버튼을 눌렀다.
“음성 로그 저장 해제.”
파란 LED가 꺼졌다.
“오늘 대화, 시스템엔 비밀입니다.”
그가 웃었다.
“숫자가 배우려면 가끔은 몰래 노트 필기를 해야 하니까.”
서진과 이안도 워치를 껐다.
불이 꺼진 회의실, 창밖 야경이 잿빛 유리를 물들였다.
숫자가 모르는 어둠 속에서 사람 셋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숫자로 기록되지 않을,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안도의 숨.
이제 그래프 속 빈 칸엔 곧 이름이 붙을 것이다.
숫자 바깥의 감정, 사람이 남기는 다섯 번째 색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