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서 배운다
음악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방식이 있다.
하나는 잼(Jam)이고, 다른 하나는 긱(Gig)이다.
둘 다 연주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태도와 목적은 완전히 다르다.
잼은 즉흥이다.
정해진 악보도, 엄격한 리허설도 없다. 누군가 먼저 한 소절을 뽑아내면 옆의 연주자가 그 멜로디를 이어받고, 드러머가 새로운 리듬을 얹고, 베이스가 흐름을 살린다. 각자의 개성이 부딪히고 섞이며 순간의 대화가 음악이 된다.
여기서는 정답보다 반응, 계획보다 흐름이 중요하다. 그래서 잼은 ‘놀이’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깊은 몰입과 창조성이 녹아 있다.
긱은 공연이다.
청중이 있고, 무대가 있고, 리허설과 대가가 있다. 연주자는 미리 정해진 곡과 순서를 따라가며 완성도 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과정보다는 완성, 즉흥보다는 정돈이 중요한 무대다. 긱은 ‘프로페셔널한 약속’이며, 관객은 그 결과에서 감동과 가치를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원래 하루짜리 공연이나 단기 계약을 뜻하던 ‘긱’이라는 단어가 음악계를 넘어 경제 용어로 확장됐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필요할 때만 계약해 일을 맡기고, 일을 마치면 관계가 끝나는 경제 구조를 말한다.
음식 배달, 대리운전, 프리랜서 디자인, 단기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인 예다.
플랫폼이 사람과 일을 연결해주고, 노동자는 고정 고용 대신 건당 수익을 얻는다.
긱 이코노미는 유연성과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불안정성과 복지 사각지대라는 그늘도 함께 지닌다.
이 잼과 긱의 차이는 음악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도 적용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을 할 때 긱처럼 하기를 강요받는다. 정해진 시간표, 정해진 양식, 정해진 보고 방식. 심지어 혼자 일하는 사람조차도 정답을 맞추듯 일을 한다.
그 순간 몰입은 사라지고, 평가가 시작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창의적인 결과는 언제나 잼처럼 일할 때 나왔다.
제한이 없고, 흐름을 따라가고, 서로의 아이디어에 반응하며, 목적 없이도 즐겁게 몰입했던 그 시간 속에서 진짜 좋은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나는 대기업에서 일하다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내가 일하는 방식을 두고 사람들은 “대기업병”이라고 했다.
실제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회사는 시스템이 없고 사람도 부족하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하던 방식대로 보고 라인과 프로세스를 만들고, 문서 양식을 통일하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일을 진행하려 했다.
문제는 스타트업의 하루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긱처럼 계획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사실은 잼처럼 즉흥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았다.
누군가 바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갑자기 들어온 요청을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하며, 원래 없던 역할을 당장 맡아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때 깨달았다.
작은 조직에서는 잼과 긱이 동시에 필요한 순간이 많다는 것을. 계획과 완성의 구조(긱)를 지키되, 순간의 변화에 반응하고 즉흥적으로 해결하는 잼의 감각 없이는 일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게다가 AI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혼자 일하는 사람도 혼자 일하지 않는다.
글을 다듬는 데 GPT가 있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코드 어시스턴트가 있고,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데 이미지 생성기가 있다. 모든 창작자는 이제 작게나마 협업을 한다. 그 협업은 잼처럼 흘러야 한다. 정답을 정해놓고 AI를 부리듯 대하면 그것은 단순한 ‘툴’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듯 반응하며 함께 흐르면, AI조차 ‘잼의 파트너’가 된다.
과거의 일은 대규모 협업, 정해진 프로세스, 매뉴얼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가 빠르고, 팀은 작아지고, 예측보다 실험이 더 중요해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몰입과 흐름의 방식으로 일하는 태도다. 그리고 그걸 전달 가능한 결과로 마무리짓는 능력이다.
일은 잼처럼 해야 한다.
정답보다 흐름을 따르고, 즐겁게 몰입하며, 함께 반응하는 것. 그러면서도 완성은 긱처럼 해야 한다. 정리되고, 설계되어 있고, 전달 가능한 형태로 마무리짓는 것. 이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잼의 감정과 긱의 완성이 공존하는 일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새로운 일의 방식이지 않을까.
잼처럼 일할 것인가, 아니면 긱처럼 일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