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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차림

나를 알아가기

by 한유신

다른 사람의 SNS를 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었다. 바로 명상에서 쓰이는 ‘알아차림’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설명을 읽어 내려가니 그 뜻이 서서히 마음에 와닿았다.

알아차림은 단순히 순간의 인식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고, 그 상태를 직접 느끼고 체득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생각을 알아차리고 감정을 알아차리며 몸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의식하는 것. 그렇게 현재의 나를 온전히 자각하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이라는 것이다.


이 단어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상차림’이 떠올랐다.

잘 차려진 상차림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더 쉽다.

밥과 국, 반찬들이 제각각 놓여 있지만, 그것들이 하나로 모였을 때 비로소 풍성한 한 끼가 완성된다.

각각의 음식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맛과 향, 색감이 서로 어우러져 전체적인 균형을 이룬다.

알아차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단편적인 한 조각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결국 어떤 전체를 만들어내는지를 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상당히 어려운 과정에 가깝다.

알아차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에 하는 행동, 반복되는 생각, 무심코 드러나는 습관, 타고난 성격, 심지어는 몸의 특성까지도 모두 살펴야 한다.

단지 들여다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를 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모아진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균형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조금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옷차림'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옷차림은 내 안을 보는 일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 맺는 외부적인 행위다.

어쩌면 옷차림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과 마주하는 순간, 내가 입은 옷은 나의 내면을 대신해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어떤 옷을 고르고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태도로 세상과 어울리고 싶은지가 드러난다.


결국 나를 위한 알아차림과 남을 위한 옷차림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만나 서로를 비춰주며, 마치 잘 차려진 상차림처럼 전체적인 균형을 완성한다.

상을 차린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모두 조화롭게 어울리듯, 나 또한 내 안을 돌아보고 동시에 바깥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알아차림, 상차림, 그리고 옷차림.
이 세 가지 차림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내 안을 알고, 내 안의 것들을 고르게 하고, 그 조화를 세상과 어울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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