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 Process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두 가지 접근이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과 트리즈(TRIZ)다.
두 방법은 모두 창의적 문제 해결을 지향하지만, 출발점이 다르다.
디자인싱킹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용자의 감정을 관찰하고, 그들이 겪는 불편 속에서 숨은 욕구를 발견한다.
공감(Empathy)에서 출발해 문제를 정의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시제품을 만들어 실험한다.
이 과정은 사람의 경험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혁신을 감성의 언어로 풀어낸다.
반면 트리즈는 기능에서 시작한다.
러시아의 발명가 겐리히 알트슐러가 수백만 건의 특허를 분석해 발견한, 문제 해결의 공통 패턴을 기반으로 한다.
트리즈는 모순(Contradiction)을 찾아내고, 그 모순을 시스템적으로 해체해 이상적 상태(Ideality)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한다.
문제를 감정이 아니라 구조와 기능의 언어로 다룬다.
나는 이 두 사고법의 간극에 늘 아쉬움을 느꼈다.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디자인싱킹은 깊지만, 구조적 분석이 약했고, 논리적이고 기능 중심적인 트리즈는 정확하지만 인간의 맥락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 두 축을 잇는 새로운 사고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디자인 트리즈(Design TRIZ) 다.
디자인 트리즈는 사람 중심의 관찰과 시스템 중심의 분석을 하나로 잇는 사고 프레임이다.
그 구체적 프로세스가 바로 EAST Process다.
EAST는 Empathy, Analysis, System Thinking, Transformation, 이 네 단어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다.
즉, 사람의 감정에서 출발해 문제를 분석하고, 시스템의 구조를 살피며, 끝내 문제를 전환하는 사고의 여정이다.
공감(Empathy)은 출발점이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입이 아니라, 시스템이 보낸 신호를 읽는 일이다.
불편함이라는 감정 속에는 언제나 구조적 원인이 숨어 있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선 먼저 그 감정을 데이터로 읽어야 한다.
분석(Analysis)은 방향을 세우는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목표는 ‘강을 건너는 것’ 일 수도 있다.
문제의 정의가 바뀌면 해결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이상적 상태, 즉 문제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한다.
트리즈의 이상성(Ideality)은 바로 그 상상에서 출발한다.
시스템 사고(System Thinking)는 관점을 넓히는 과정이다.
문제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의 한 조각으로 존재한다.
정책, 제도, 관계, 문화, 시간 같은 상위시스템이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EAST는 문제를 상위–시스템–하위의 구조로 보고, 과거·현재·미래의 흐름 속에서 행정적 모순(해야 하지만 할 수 없는 문제)을 찾아낸다.
시스템을 보면 문제의 경계가 넓어진다.
전환(Transformation)은 문제를 바꾸는 일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단순한 브레인스토밍을 멈추고, 논리적 전환으로 구조를 새롭게 설계한다.
트리즈의 11가지 분리·전이 원리를 통해 모순을 해체하고, 기존 시스템의 흐름을 재배치한다.
좋은 해결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존재하던 자리를 옮기는 일이다.
결국 EAST Process는 문제를 ‘풀기’보다 ‘새롭게 정의하기’ 위한 사고의 구조다.
공감에서 출발해, 분석으로 나아가고, 시스템으로 확장하며, 전환으로 완성된다.
이 네 단계가 순환하면서 문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바뀐다.
문제를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문제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다.
EAST는 그 이해를 위한 지도의 이름이다.
문제는 선형적으로 풀리지 않는다.
감정에서 시작해, 구조로 확장하고, 다시 정의로 돌아올 때 비로소 혁신은 현실이 된다.
좋은 답은 좋은 문제에서 태어난다.
문제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