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by 한유신

발견은 세상에 없던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보통 대륙 정도는 찾아야 발견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냥 있는 것에 조금 좋게 만드는 건 발견이라기보다 발명이다.

아무도 몰랐던 것을 찾아내는 게 발견이다.

그래서 발견이라는 단어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큰 것을 찾아야 할 것 같고, 남들이 놀랄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발견은 꼭 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다만 아무도 몰랐던 것을 찾아야 한다.

물론 아무도 몰랐던 것을 찾는데 아무거나 찾으면 안 된다.

벚꽃나무 밑에 떨어진 벚꽃 잎이 지금 이 시간에 몇 개였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물론 떨어진 벚꽃 잎을 실험하여 일정한 주기와 경로가 있다는 것을 찾는 것은 다른 얘기다.

벚꽃 잎이 떨어지는 경로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실제 꽃잎 낙하 경로를 연구한 사람이 있었다.)


발견은 발로 뛰는 일일지도 모른다.

책상 앞에 앉아서만 있으면 발견이 잘 안 된다.

왜냐하면 머리만 써서 되는 건 발견이 아니라, 그냥 생각이다.

머리로만 찾으면 그건 발견이 아니라 머리견일 것이다.

발견에는 몸을 써야 한다. 걷고, 보고, 만지고, 돌아다니면서 발견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많이 뛰는 게 아니라 어디로 뛰느냐이다.

아무 데나 뛰어다니면 그냥 운동이지 발견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닐수록 발견이 잘 안 된다.

꼭 뭔가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머릿속에 이미 정답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

발견은 늘 예상 밖에서 나올 수 있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한다.

멀리 가야 발견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주변이 제일 어둡다.

늘 보던 것, 늘 지나치던 것, 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발견을 잘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하다.

관찰을 잘한다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보았던 것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관찰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관점 변화 없이 같은 시각으로 본다면 그냥 자세히 보게 된다.


발견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나만의 발견이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나만의 발견을 많이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할 때부터 발견은 할 수 없어진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발견은 하루에 한 번만 있어도 된다.

대단한 게 아니라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나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발견을 하다 보면 관심이 생기게 된다.


세상을 바꾸는 발견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발견이 중요하다.

어제와 똑같은 길인데 오늘은 다르게 보이는 것도 발견이다.


발견은 멀리서 찾는 게 아니다.

무엇인가 발견했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내 관점이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주변을 다른 관점에서 쳐다보기 시작하면 많은 것을 찾을 수 있다.

발견을 하기 위해 먼저 질문을 발견해 보자.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을 만드는 것이 발견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