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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Jan 16. 2020

인연의 끈은 낡아진다

시간이 흐른 뒤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질 때

작고 가는 끈을 모아 둘 사이를 연결한다.

어느 정도 튼튼해졌다고 생각하여

끈을 서로 당겨 하나가 된다.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밀어내며

작고 가는 줄이 하나씩 끊어진다.


서로를 연결해 온 작고 가는 줄을 엮어

둘 사이에 튼튼한 줄을 만든 것을 모르고

작고 가는 줄 하나쯤 끊어진 것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씩 하나씩 줄은 끊어지고

둘 사이를 연결하는 줄은

처음보다 반으로 줄고

또 반으로 줄고

또 반으로 줄고

또 반으로 줄어서

서로를 위태롭게 연결하고 있다.


이런 가는 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이제 의미 없는 연결이라는 걸 알고

저절로 끊기길 바라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하지만 새롭게 아주 작고 가는 줄이 연결되어도

끊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가는 줄 몇 가닥으로

끊겼다가

연결됐다가

다시 끊기고 있다.


한쪽에서 지쳐서

이 줄을 끊으려 한다.

이 줄을 끊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고

다른 줄을 만날 수도 있다.


줄을 끊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안 끊긴다.

질긴 인연


끊어야 산다.

같이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가고 있다.

다른 끈을 찾을 수가 없다.


혼자다.

혼자 끊고 올라가야 한다.


처음에는 끈으로 엮여서 좋은 줄 알았다.

이제는 그 끈들이 나를 묶어버리고 있다.

숨이 막혀 바다 위로 올라가려 해도

끈에 엉킨 발이

끈에 엉킨 손이

끈에 엉킨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끈을 엮으라고 한다.

끈을 엮으면 같이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끈을 끊으면

각자 바다 위로 올라가서 살 수 있다.

다시는 엮이지 못하지만.


난 끈을 끊으려 한다.

당장 숨이 막히는데 살아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조언한다.

바다 위에서.


숨 막혀서 죽을 것 같은 건 바로 나다.

그들은 편하게 숨 쉬고 살면서 나를 깊은 바닥으로

눌러버린다.


끈을 끊어야 살 수 있다.

끈을 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끊으면 인연도 끊어지는데

괜찮을 것인지 물어본다.


주변을 돌아본다.

끈을 이미 끊고 한숨 쉬러 올라가는 사람들

아직 끊지 못했지만 서로 힘을 모아

같이 올라가는 사람들

끈을 끊고 있는 사람들

끈을 끊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제는 숨을 더 이상 못 참는 한계에 다다른다.

힘을 다해 끊기로 한다.


끈에서 해방된 나.

바다 위로 올라온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자기가 끊은 끈 반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

아직 끈이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

다시 끈을 연결하려는 사람들


한 번 끊어진 끈은 붙일 수 없다.

아무리 두꺼운 끈도 가늘고 작은 실이 모여있는 것이다.


인연을 엮어가기엔

처음보다

더 많은 끈이 필요하다.


계속 끈을 엮어야 한다.

추억

존중

경청

대화

사랑


끊어진 끈을 엮으려 하지 말고

끊어지는 끈보다 더 많이 새로운 끈을

엮어가야 한다.


난 끊어진 끈을 손에 들고

바다 위에서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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