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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코지마 여행기 2

by 양세호

일론 머스크라는 미치광이가 있기 전 내가 대학에 다닐 땐 스티븐 잡스가 있었다. 이건희는 잡스와 싸우고 있었고, 무한도전에선 노홍철이 잡스처럼 입고 나와 사기를 쳤고, 교수님들은 종강 끝인사로 잡스 얘길 했다. "여러분 나의 모든 행동을 점찍고 선으로 그었을 때 현재가 나옵니다 방학 알차게 보내세요." 잡스식으로 내가 왜 미야코지마에 있는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난여름 본가에 포도농사를 도우러 갔다 / 부모님은 300만 원짜리 당도측정기를 갖고 싶어 한다 / 때마침 큰돈이 생겼다 / 새것은 부담되어 중고나라에서 당도측정기를 구매한다 / 사기를 당한다 / 화가 난다 / 매일밤 달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 기왕 달리는 거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한다 / 우연히 미야코지마 브이로그를 본다 / 미야코지마 바다거북을 보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난 뒤 보상으로 미야코지마로 바다거북이를 보러 간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재채기가 나왔고 콧물이 흘렀다. 한국은 겨울이었고 여긴 여름이어서 극단적인 환절기를 겪은 탓인지 감기기운이 있었다. 거북이를 보기 전 나약함을 허락할 수 없었다. 몸에 기강을 잡기 위해 나와의 싸움 즉 극기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은 찌뿌둥했지만 곧바로 러닝화를 신고 달리러 나갔다. 숙소 옆 해수욕장을 끼고 달렸다. 어제는 밤이라 몰랐지만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름다웠다. 조식을 먹고 나와 수영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와 조식을 먹었다. 반다나를 쓴 친절한 직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조식으로 빵과 오믈렛 그리고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븐에 빵을 구웠다. 기계가 익숙하지 않아 조금 탔다. 버터와 샐러드로 탄 부분을 가리고 빨리 입으로 욱여넣었다. 누룽지 맛이 났다. 목이 막혀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테이블에 뜨거운 커피밖에 없어 호호 불며 느리게 갈증을 해결했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 일어났다. 스노클링 장비를 챙기고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숙소 문을 나서는 순간 강한 바람과 이슬비가 내렸다. 다시 숙소로 돌아갈까 생각하다 아침에 다짐한 극기훈련이다 생각하고 바다로 억척스럽게 걸었다. 바다에 3명 정도 있었다. 고집스러운 사람들만 나온 것 같다. 남민우에게 빌린 물안경을 착용하고 방수케이스를 낀 핸드폰과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숙소 옆 해수욕장에서 바다거북을 볼 수 없지만 가끔 출몰한다는 블로그 글이 있었다. 일단 파란색 물고기와 얼룩말 무늬 물고기가 보였다.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 뒤에 몽둥이처럼 생긴 군소와 해삼들을 봤다. 기대감이 높아졌다. 바다뱀을 봤다. 너무 놀라 바다에서 뛰쳐나왔다. 검색해 보니 독이 없는 녀석이었다. 1시간 30분 정도 수영을 했지만 결국 거북이는 보지 못했다. 몸이 떨리고 콧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래사장으로 걸어가니 중국인 관광객이 말을 걸었다. 바다거북을 보기 위해 오타니처럼 바다에서 쓰레기를 주워 나온 상황이었다. 관광객은 내 손에 있는 쓰레기를 보고 엄지를 들어줬다. 태어나 처음 중국인에게 칭찬을 받았다. 몸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서로 웃으며 목례하고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와 자고 일어나니 배가 고파졌다. 라멘이 먹고 싶었다. 돈을 챙기려 금고를 열려고 하는데 왜인지 열리지 않았다. 프런트로 가니 한국인 직원이 있었다. 중년의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난처한 상황인 거 같았다. 나에게 다가와 잠시 뒤 해결해 줄 테니 방에 있어달라고 말했다. 객실에서 오래 기다려도 오지 않아 빨래를 했고 1시간쯤 뒤 금고에서 돈을 뺄 수 있었다. 숙소 밖으로 나오니 어둡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미야코지마에서 운이 좋으면 은하수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 밤은 못 볼 것 같다. 어제 발견한' 맥스벨류' 종합쇼핑몰로 갔다. 소금라멘과 교자 볶음밥 세트를 시켰고 맥주도 한잔 시켰다. 맛은 평범했지만 양이 많았다. 배가 찢어질 것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고치소사마데시타)를 연습하고 말하려 했지만 손님이 몰려와 직원들이 정신없어 보였다. 결국 목례만 하고 나왔다.


맥스벨류 주변 잡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조카에게 줄 귀여운 개구리와 푸들인형을 샀고 야끼소바와 어제 못 챙긴 무료간장과 일회용 젓가락을 잔뜩 챙겼다. 음식점에서 하지 못한말 "고치소사마데시타~고치소사마데시타~"를 중얼거리며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매일 밤 간단하게 맥주와 음식을 먹는데 속이 더부룩하다. 침대에 누워 배를 문지르며 거북이 생각을 했다. 내일은 거북이가 출몰한다는 아라구스쿠 해변에 간다. 내일부터 진짜 미야코지마 여행이 시작된다. 기다려라 거북이!!


현지인들에게 바다는 일상이다. 특히 저 통나무에 앉아있는 아저씨 묘하게 호감이다
KakaoTalk_20250227_002832356_02.jpg 푸짐한 라멘세트 배가 찢어질 뻔 했다.


조카에게 줄 귀여운 푸들인형! 정들어서 아직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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