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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코지마 여행기 3

by 양세호

눈을 떴을 때 방안은 아직 어두웠다. 알람시간보다 1시간가량 일찍 일어났다. 다시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40km 정도 달려야 하니 아침러닝은 생략하려고 했다. 근데 뭐 잠이 안 오니 산책정도를 해두는 건 좋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작은 시내가 나왔다. 이른 아침이라 상점들은 문이 닫혀있었다. 자전거렌탈샵이 보였다. 호텔에서 5천엔에 빌린 자전거가 여기선 3천엔이면 빌릴 수 있었다. 산책길이 짜증스러워졌다. 조금 떨어진 언덕에 신사가 보였다. 신사에 가서 심신의 안정을 찾고 싶었다. 신사 입구에 서자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신성한 기운이 느껴졌다. 흡하고 숨을 들이켜고 들어갔다. 오른쪽에 수돗가가 보였다. 바가지가 보여서 물을 마셨다. 신사 정면에 들어가니 신사를 지키는 사람이 소리 내어 무언가 말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작은 안내문에 기도하는 법이 나와있었다. 무릎을 굽혀 인사 두 번, 그 뒤에 박수 두 번, 기도를 올리고 , 다시 한번 인사 안내문에 적힌 순서에 따라 기도를 마치고 신사에서 나왔다. 어떤 여성분이 신사에 들어오고 있었다. 유심히 지켜봤다. 수돗가로 향해 바가지에 물을 떠 손을 씻는다.(마시는 게 아니라 씻는 거였구나) 그리고 기도를 한다. 물을 마신 걸 제외하면 제법 잘 따라 했다. 신사에서 나오니 어지러운 마음이 가라앉았다. 거리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숙소로 향했다. 조식을 먹고 피곤해서 30분 정도 잠을 잤다. *만조시간까지 2시간 남았다.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바다거북은 만조시간에 해안가로 들어와 해초를 먹는다. 만조시간에 가면 바다거북을 볼 확률이 높아진다.


정각 12시에 정확하게 전기자전거에 페달을 밟고 거북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아라구스쿠 해변으로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맑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잠시 공중화장실 처마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10분쯤 뒤에 비가 그쳤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전기자전거는 생각보다 빠르고 편했다. 그동안 술만 마시면 친구들에게 달리기 예찬을 늘어놓았었다. 솔직히 과장을 했다. 나는 러너스 하이나 세컨드 윈드를 느껴보지 못했다. 얼마 전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고통스럽기만 했다. 지금 전기자전거 위에서 나는 바이크 하이를 느끼고 , 퍼스트 윈드를 느낀다. 바람은 시원하고 ,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달리기보다 전기자전거가 좋다고 친구들에게 말해야겠다.



출발한 뒤 20분쯤 지나자 목이 말랐다. 마침 외딴곳에 코인세탁소와 자판기가 보였다. 정비를 위해 들렸지만 그 공간에 마음에 들어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얼른 삼각대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다시 페달을 밟다 멈춰 선 곳은 작은 정류장이었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에 나오는 곳과 닮았다. 지로가 경마장에서 돈을 다 날리고 정처 없이 걷다 애한테 히치하이킹을 시키던 곳, 그래서 그 정류장에서도 히치하이킹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50분이면 도착할 해변을 중간중간 즐기며 오다 보니 2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아라구스쿠 해안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한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3시 6시에 해가 지는 걸 감안하면 다들 해수욕을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었다. 먼저 온 사람들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4시가 만조시간이다. 거북이를 보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블로그 정보대로 해변의 왼쪽 끝 거북이 스팟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5명쯤 있었다. 귀동냥으로 카메카메(거북거북)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북이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만조까지 시간이 남아 자리를 펴고 누워 노래를 듣는 여유를 부렸다. 3시 30분 준비하고 바다로 들어갔다. 만조인탓에 바다가 깊었다. 한 달간 수영을 배운덕에 그래도 스노클링이 덜 무서웠다. 그런데 10분, 20분, 30분을 찾았는데도 거북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바다에서 나와 시간을 확인했다 4시였다. 만조시간이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바다로 들어갔다. 거북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거북이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봤지만 그들도 거북이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4시 40분, 거북이 찾는 동지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거찾사 회원(거북이 찾는 사람들 내가 지은이름)들이 하나둘 집에 가기 시작한다. 붙잡고 싶었지만 언어장벽이 있었다. 7시면 자전거 반납시간이다. 여기서 6시 전에 출발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바다로 들어갔지만 끝내 거북이를 볼 수 없었다.



지난 6월부터 거북이만 바라보며 미야코지마 여행을 기대했다. 힘든 마라톤 훈련을 할 때도 거북이를 만날 날을 고대하며 달렸지만 볼 수 없다니 서운했다. 샤워실로 향해 몸을 씻고 전기자전거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석양이 지고 있었다. 풍경이 아름다워 거북이에 대한 서운함이 조금은 가셨다. 숙소에 도착해 자전거를 반납했다. 배가 고파 시내로 향했다. 장어덮밥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거북이를 보고 기쁜 마음으로 먹으려 했던 곳이었다. 털레털레 걸으며 도착한 장어덮밥집 문이 닫혀있었다. 인근 식당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편의점에서 야끼소바와 어묵을 담아 숙소에 돌아왔다. 알코올도수 9도짜리 하이볼과 함께 허기진 배를 채웠다. 하지만 거북이를 보지 못한 헛헛함은 가시질 않았다. 잠시 누웠다.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 1시 창밖에 달이 밝아 숙소 안이 달빛으로 가득했다. 미야코지마에서 잘하면 은하수가 보인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밖으로 나갔다. 달이 밝아서인지 별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달을 바라보니 작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봤다.



“뭐라고?”

“내일도 나를 보러 와”

“응 너 누군데?”

“나야 거북이”



그래 거북이를 못 봤다면 다시 보러 가면 된다. 숙소로 돌아와 직원에게 다시 전기자전거를 빌리겠다고 말했다. 방으로 돌아와 실패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봤다. 정보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블로그글들을 몇 개 더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만조 말고 간조시간에 거북이를 봤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 내일은 간조시간에 맞춰 가보는 거야!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간조시간까지 6시간 남았다. 잠에 들려는데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불안했다.



"아 맞다 전기자전거 시내에서 빌리는 게 더 저렴했는데..."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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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와 신사 내 수돗가 물을 마시기 보단 손을 씻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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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처럼 히치하이킹 ! 일본 시골 작은 코인세탁소 앞에서 !
하나 둘 떠나는 거찾사(거북이를 찾는 사람들) 친구를.. 물론 대화해 본 적은 없다
거북이를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석양이 위로해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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