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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Dec 31. 2019

그녀를 기억하며

RUSH

  


  그녀는 작고 가는 눈, 까무잡잡한 피부, 귀가 드러난 숏헤어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또래가 하는 화장이나 귀걸이와 목걸이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액세서리는 코에 붙여진 반창고 정도일 거라 생각한다. 그녀는 치마나 블라우스를 입지 않았다. 펑퍼짐한 청바지와 가죽재킷을 즐겨 입었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긴 어려웠다. 그녀를 빤히 본다면 주먹이나 날 것의 단어들이 날아올 것 같았다. 나와 그녀는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아 운동장을 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정글북의 모글리, 버지니아 울프의 위태로움을 지닌 여자 같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화요일이었다. 내가 일하던 도미노피자는 화요일마다 40% 세일을 했다. 매장은 밀린 피자들과 새로운 주문을 알리는 벨소리로 혼란스러웠다. 나는 긴 꼬챙이로 거품이 생긴 치즈를 터트리고 가방에  피자를 담아 막 배달을 가려던 참이었다. 오토바이가 있는 뒷문으로 걸어가는데 점장이 테이블에 앉아 아이패드로 '보이스코리아'를 보고 있었다. 아이패드 속에 그녀가 있었다. 손에 마이크를 들고 있었는데 난 그게 몽둥이로 보였다. 붕대로 손과 몽둥이를 칭칭 감아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고 심사위원을 때려잡겠다는 비장한 눈으로 무대에 서있었다. 그녀가 몽둥이 아니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들려줬을 때 나는 배달은 잠시 잊고 점장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목소린 저 멀리 있는 사람을 부르는 호통이었고 언젠가 시장에서 주저앉아 쉰 목소리로 울부짖던 아주머니의 넋두리 같았다. 노래를 듣는 중간쯤에야 난 이 노래가 리쌍의 'RUSH'인 걸 알았다. 정인의 목소리가 3세계에 사는 원주민이라면 그녀의 목소린 툰드라에 사는 늑대의 하울링이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 나는 멍하게 앉아있었다. 핸드폰에 카톡이 왔는지 진동이 느껴졌다.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친한 친구였다. " 야 보코 봤냐? 우리 학교 선배야" 그러고 보니 난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몇 해 전 슈퍼스타k 였던 것 같다. 그때도 내 친구는 소주잔을 비우고 말했었다. " 그 여자 봤냐? 우리 과 선배야" 나는 그녀를 만난 적 없지만 한 다리 건너면 알 수 있는 꽤나 가까운 사람이었다. 친밀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대회에서 우승하길 바랬다. 시간이 꽤나 지나갔다. 나는 멜론으로 'RUSH'를 반복 재생하고 흥얼거리며 피자를 배달했던 그 날 화요일을 기억한다.


  그녀의 소식을 다시 들은 건 몇 해 뒤였다. 그때 나는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집 근처 고시원의 6개월치 방세를 선입금하고 첫 독립에 취해있었다. 그날 나는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었지만 큰소리치고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집에 가기엔 모양새가 별로라 생각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단팥죽을 사들고 와 책상에 앉아 청승을 떨었다. 딱히 할 게 없었다.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켜고 네이버 창을 띄웠다. 실시간 검색어에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소식이 반가워 마우스로 그녀의 이름을 클릭했다. '20대 여성. 남성 두 명과 동반 자살' 뉴스를 클릭하니 승용차가 보였다. 나는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머리가 멍했고 가슴이 뛰었다. 당황스러웠다. 지금쯤 여러 무대를 다니며 노래하거나 자신의 색을 이곳저곳 뿌리고 다니는 아티스트로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몇 시간 뒤 나는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도달했다. 그녀의 일기를 천천히 읽었다. 가난, 가정폭력, 용서하려는 노력, 방황, 그녀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로 쓴듯한 쓰라린 내용들이었다. 나는 그녀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워 다시 노트북을 닫았다. 그녀의 노래가 호통이고 넋두리 같았는지 , 몸이 경직되어 있는지, 표정이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노래로 글로 울부짖고 있었는데 나는 그녀가 죽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봤다. 아이러니하게 경직되고 차가웠던 모습보다 노래가 끝난 직후 무대에서 그녀의 표정이 생각났다. 심사위원들의 칭찬에 수줍어하고 어쩔 줄 몰라하며 피식 웃던 얼굴, 갓 태어난 아이의 미소 같았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빛나는 여자였다.


  이 새벽 밖엔 눈이 내린다. 열린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떠올랐다. 세상을 떠나며 찬 바람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겨두고 가서 생각난 것 같았다. 나는 차가운 바람을 따듯한 내 방에 들이고 창문을 닫았다. 온기가 있는 내 방에서 나의 고양이와 그녀가 부른 리쌍의 'RUSH'를 듣는다. 노래를 듣다 잠이 들것이다.  꿈에서 그녀를 만나 수줍게 웃는 모습을 볼 지도 모른다. 나는 보는 듯 마는 듯 조심스레 표정을 살필 테지만 그녀가 나에게 주먹이나 날 것의 단어를 던진다면  자고 일어나 이 글을 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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