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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Jan 27. 2020

고백

델리스파이스

 

점박이 고양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다. 오른손을 가볍게 뻗었다. 팔이 저리고 미세하게 손이 떨린다. 초속 3mm의 속도로 상대에게 다가가고 있다. 눈 꺼플에 힘을 풀고 나른함이 느껴지게 깜박인다. 동시에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얻어가 담긴 시선을 보낸다. 언젠가 동물농장을 봤었다. 히피펌을 한 마녀 같은 여자가 고양이와 소통을 할 때 이런 모습이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해먹에서 자는 페르시안, 허벅지에 얼굴을 부비는 아메리칸 숏헤어, 창가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러시안블루가 보인다. 지금 들이는 정성에 반만 지불하고 저 고양이들을 만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태어나 처음 와 본 고양이 카페에서 한 고양이만 바라보고 있다.


외면


  나는 해리포터를 좋아한다. 내가 호그와트에 입학한다면 애완동물은 분명 고양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 고양이 그러니까 호그와트에 데려가려고 했던 상상 속의 고양이가 카페에 있었다. 고양이로 변한 맥고나걸 교수의 검은 고양이와 하얀 눈덩이 같은 해드위그를 섞어 놓은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점박이 고양이였다. 귀는 부엉이처럼 뾰족하고, 눈의 색은 연한 노랑, 허당미 느껴지는 코 옆에 점, 시선은 멍하게 어딘가 바라보고 있는데 프리벳가에서 덤블도어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맥고나걸 교수의 눈빛 같았다. 나는 해리를 따라다니던 콜린 크리비 마냥 관심을 갈구했다. 나른한 눈으로 해치지 않는다고 수십 번 말하고 초속 3mm 속도로 느리지만 역동적으로 구애의 손짓을 보냈다. 참다못해 신뢰의 시선을 거두고 선 넘는 속도로 고양이에게 다가가자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짧은 시간 점박이 고양이에게 열병을 앓다 축 처진 어깨로 카페를 나갔던 적이 있었다.


점박이 고양이와 하맹이


  시간이 흘러 작년 봄, 가로수 벚꽃나무 꽃잎이 거의 다 떨어졌을 무렵에 나는 카페 개업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벚꽃을 좋아하는  편인데 페인트, 조명, 커피머신 이런저런 일로 정신없는 탓에 거리의 벚꽃이 지는 줄도 몰랐다. 고양이 분양을 받기 위해 부천에 갔던 날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서울에서 벗어나 부천역에 도착했다. 약속 장소를 못 찾고 길을 헤매다 벤치에 앉았다. 고개를 들었는데 벚꽃나무에 꽃잎이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희소성 있게 매달려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정신없고 급한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다. 그리고 몇 분 뒤 하맹이를 만났다. 나는 앞에 글에서 하맹이를 처음 만난 날에 대한 글을 썼었다. 그리고 양심 고백을 한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맹이가 내 손을 잡아서 어떤 교감, 운명을 느껴 생각에도 없던 분양을 결정했다고 글을 썼었다. 하지만 난 하맹이를 처음 보자마자 바빠서 잊고 지내던 점박이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손을 잡았을 때 지난날 점박이 고양이에게 외면받은 나의 애정의 보상을 느꼈다. 하맹이를 통해 점박이 고양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 장면을 영상으로 만든다면 bgm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 흘렀을 것이다.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렸었어. 그 사람을"


방해하는 하맹이

 


  잡지에 보낼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핸드폰에서 점박이 고양이 사진을 찾아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머릿속 기억을 더듬어가며 점박이 고양이의 대한 예찬의 글을 적으려는 찰나였다. 하맹이가 책상으로 뛰어올랐다. 떳떳하지 못해 하맹이와 눈을 맞추지 않고 그 뒤에 냉장고나 서랍장에 시선을 뒀다. 원래 글을 쓸 때 볼펜을 깨무는 하맹이지만 왠지 오늘은 더 쌔게 무는 기분이 든다. 급기야 조금 뒤에는 펀치까지 날린다. 집중하기 어려워 하맹이를 책상에서 내려놓고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와이파이 기계가 시원치 않아 하맹이가 다시 책상으로 뛰어오를 무렵에야 노래가 나온다.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 내 방안에 울려 퍼진다. 나는 미안하지만 하맹이의 손을 잡고 그 고양이를 떠올려 본다.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렸었어. 그 고양이"










*고양이 잡지 MAGAZINE C 연재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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