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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Feb 24. 2020

싫어하는 사이다

질리는 맛이기에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드라마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주행을 하려면 주전부리가 필요하다. 컴퓨터 의자에 걸려있던 버뮤다팬츠와 나이키 후드티를 입고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코로나의 여파로 여자 알바생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인지 전보다 한층 더 시니컬해 보인다. 거슬리지 않게 빨리 편의점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없이 견과류와 오징어를 집고 마실 것을 고르려 냉장고로 갔다. 문을 열지 않고 사이다를 찾는다. 저기 있다. 위에서 두 번째 줄, 사이다 옆에 스트롱 사이다가 보인다. 이 시점에서 나는 드라마 보기를 포기한다.


  이유를 말하자면 이렇다. 얼마 전에도 나는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몇 시간을 유튜브가 인도하는 알고리즘에 취해 한 드라마에 도착했다. 경로는 ‘궁예 기침소리- 문소리에게 전화 온 배우 - 전여빈 멜로가 체질 모음집’        

이었다. 전여빈 배우는 무쌍이었고 무표정일 때 서늘하고 웃을 땐 따듯한 인상이었다. 그 미소에 푹 빠졌다. 거기에 영화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였다.(난 그의 똘끼 혹은 병맛 유머를 좋아한다) 꽤나 ‘멜로가 체질’이라 생각도 들어서 나는 노트북을 열고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켰다. 몇십 분이 흐르고 드디어 전여빈 배우가 인상적인 대사를 한다.



“ 그래 나 미친년이다. 이 개새끼야”  대사가 끝난 뒤 이전에 폭언을 하던 상대 배우가 말한다. “ 네가 이겼다” 이 둘은 나중에 “ 안으면(2초 쉬고) 포근해”라는 말을 하며 연인이 될 것이다. 노트북을 덮어 버렸다. 나는 멜로는 꽤나 체질인 듯한데 사이다 체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는 한다. 카페 사장인 내가 비유하자면 사회는 지금 얼어 죽어도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는 90년대생과 , 굳이 쉬려는 데도 따라와 라떼로 통일하라는 기존 세대가 양보 없이 싸우고 있다. 확장하자면 남과 여, 계층 간, 남과 북, 진보와 보수, 진보와 진보, 보수와 보수, 타다와 택시, 마스크를 쓰고 안 쓰고 등등 일말의 타협 없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미간을 찌푸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 꺼진 회사에서, 시끄러운 술집에서. 새벽녘 택시에서 상처 받아 우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그들이 이런 드라마를 본다면 대리만족 혹은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제도 술을 먹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나는 한 번도 상사를 때 리거나 욕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드라마의 상황은 지나치게 현실적인데 결말은 신화처럼 초현실적이다. 한두 번쯤이야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 감탄해주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알 수 있다. 현실은 사이다보다 차가운 냉수를 마시거나, 쓴 술잔을 넘긴다는 것을


  그렇다면 다른 드라마를 보면 그만이다. 반복해서 말해 카페 사장인 나는 “자영업자의 성공신화”라는 카피에 이끌려 ‘이태원클라스’를 몇 편 봤다. 이 드라마의 내용은 이렇다.


학폭 가해자 응징+학폭 가해자의 아빠는 재벌+학폭 가해자가 주인공 아빠 뻉소니+복수=사이다 드라마


부당함으로 시청자를 답답하게 하고 통쾌한 복수로 쾌감을 주는 사이다 드라마의 전형적인 공식을 보여준다. 추가로 매 회 에피소드마다 다음 장면이 예상가는 탄산 클리셰의 향연을 더 한다. 나는 스스로 이 드라마는 ‘ 스트롱 사이다’ 장르로 규정지었다.



  누군가 집요하게 최근에 무슨 드라마를 봤냐고 묻는다면  ‘나의 아저씨’라 말한다.


-일부러 상품권 생겼다고 하면서 준 거 다 알아, 내가 돈 벌어서 참치 사줄게


- 내가 상처 받는 거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 내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공감되는 작가의 글, 절제된 배우의 연기, 차분한 영상까지 분명 몇 번의 장면에서 위로가 되었고 울컥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럼에도 울지 못한 건 큰형(박호산)이 엄마(고두심) 보는 앞에서 건물주에게 무릎을 꿇고, 방금 전까지 차분한 키다리 아저씨였던 이선균이 파스타 말던 시절로 돌아가 망치로 건물을 부수며 끝까지 가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드라마에 탄산이 들어간다. 나는 요즘 한국 드라마의 장르는 스트롱 사이다 혹은 사이다 두 가지뿐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자연스럽게 외면하게 됐다.


  다시 편의점 냉장고 앞으로 돌아가 탄산음료들에서 시선을 옮겨 2% 부족한 복숭아 음료를 사서 집으로 왔다. 침대에 앉아 드라마 대신 팟캐스트로 라디오를 듣는다. 그러다 밤이 깊어 침대에 누워 유튜브로 우주의 탄생, 암흑물질은 없다는 영상을 보다 잠이 든다.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이 지나간다.




















질풍노도를 겪고 있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김하온은 이런 랩을 했다.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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