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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Mar 24. 2020

시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인도하는

 

꿰뚫어 보는 중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적인 공간과 시간이 주어지면 다소 더럽게 느껴지는 행동을 한다. 침대에 누워 코를 판다거나, 방귀를 뀔 때도 있다.(이건 아주 일부분이다) 물론 나의 집은 원룸이라 방음이 좋지 않다. 혹시나 옆 방에 방귀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끊을 수 없다.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자유와 쾌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부끄러움이라던지 죄책감이 몰려온다. 이상하다. 옆 방에서 신경질적으로 벽을 두드리지 않았고 열린 창문으로 코파는 모습을 들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원인은 냉장고 위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화가 난 건지, 한심하게 생각하는 건지 무튼 그 시선 앞에서 나는 경직되고 참회하게 된다.


지켜보고 있다

  하맹이가 동그란 눈을 가늘게 뜬다. 지금 나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훑어보는 느낌이다. 나는 방금 전 "조금 더 안쪽으로 손가락을 넣어 코를 후빌까?"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순간 하맹이의 동공이 가늘어진다. 죄를 고백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말하지 않으면 신변에 위험이 생길 것 같은 직감이 든다. 로마의 휴일을 보면 진실에 입 앞에서 거짓을 말하면 손이 잘린다. 나는 콧구멍에 손을 넣은 채로 말한다. "알았어 미안해" 하맹이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린 뒤 잠든다. 나의 사과가 진실된 마음에서 나왔는지 손가락이 잘리지 않았다. 



  나에게 사적인 공간과 시간은 점차 사라져 간다. 이제는 하맹이가 집에 없어도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자유와 쾌감을 느낄 수 없어 아쉽지만 덕분에 코를 후비거나 방귀를 뀌는 더러운 행동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적인 공간에서도 나는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를테면 카페에서 하맹이가 스크래쳐를 두고 보란 듯이 소파를 손톱으로 뜯는다. 나를 기만하는 듯한 하맹이에 행동에 화가 난다.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하맹이를 끌어안고 위협하듯 코에 혹은 코 옆에 점에 손가락질을 하고 싶다. 하지만 카페에 손님들이 있다. 나는 이런 나의 마음을 숨기고 억지웃음을 짓는다. 손님들은 그런 나를 보고 이해심 많은 집사라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좋은 행동들을 하고 있다.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 한 영화의 장면을 캡처한 게시물을 본 기억이 있다.  그 장면의 자막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하맹이의 시선은 채찍처럼 날아와 비루한 나의 몸과 마음을 다그친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나를 쏘아보는 하맹이의 시선에 감사를 표하며 말한다.  " 당신의 시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고양이 잡지 MAGAZINE C 연재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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