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_ 나로 인해 시작되는 절망

우리는 어쩌다 괴물이 됐을까

by ㄱㄷㅇ

1년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본 후 쓴 영화 리뷰입니다. 영화 전체 내용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요. 다 떠나서 매우 매우 좋은 영화이기 때문에 다들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 괴물을 봤다. 이전부터 봐야지, 하고 미루다 우연한 계기로 친구와 함께 보게 됐다.

혼자 일을 할 때는 여느 핑계 혹은 귀찮다는 마음으로 잘 미루면서도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면

꼭 지켜야 하는 일이 된다.


이 영화가 왜 보고 싶었는지에 대해선 기억이 잘 안 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여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괴물을 본다고 했을 때 송강호?라고 했던 친구와, 고레에다 히레카츠라고 했던 친구들은 모두 반성할 것.)


영화는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부는 보기가 꽤 힘들다. 사람의 기분을 슬그머니 나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아이들은 그저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그런 아이들이 곤욕을 겪는 모습은 마음 한 구석을 언짢게 한다.


괴물은 누구게?


처음부터 모든 인간을 괴물처럼 보이게 하는 연출은 영화의 결말을 꾸준히 궁금하게 한다.

누가 잘못한 거지? 엄마구나! 했다가, 호리선생이구나! 했다가, 교장도 이상해, 다른 선생들도, 요리도, 요리의 아버지도, 미나토도 이상해!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특정한 인물의 잘못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점차 나까지 의심하게 된다. 또 이야기 흐름이 시간 순서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물의 시점으로 특정 시간과 사건이 반복되기 때문에 짜 맞추느라 머리에 힘을 주어야 했다.


영화는 한 건물에 불이 나고 이를 지켜보는 미나토와 사오리(미나토의 엄마)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1장은 사오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때 사오리는 미나토를 지키기 위해 학교에 대항하는 엄마가 된다. 2장은 호리선생의 시선이며 누구의 관점이냐에 이야기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뒤바뀐다. 3장은 클라이맥스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소문은 모두


영화엔 많은 소문이 있다. 호리 선생이 걸스바에 있었다던가, 사실은 교장이 손녀딸을 죽였지만 남편이 대신 감옥에 갔다던가, 미나토가 고양이를 죽였다던가 하는 것들이. 모든 소문은 거짓이었으나 소문이 돌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들을 '나쁜 사람'이라는 투명한 막을 씌우고 바라봤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작은 소문만으로 그들을 판단했어? 하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든다.


나도 누군가에겐 괴물일 수도


영화 속 인물은 누군가에게 '괴물'로 존재한다. 사오리는 엄마로서 미나토를 지키기 위해 학교와 싸우지만, 그 속에서 미나토에게 그리고 학교(교장과 호리선생)에게 상처를 준다.

학교 선생들 또한 마찬가지다. 교장은 정확한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안일한 대처를 통해서 호리선생에게, 미나토에게, 사오리에게 상처를 준다. 다른 선생들 또한 마찬가지. 호리 선생은 억울한 존재이고, 유일하게 미나토와 요리의 관계를 알고, 미나토에게 사과를 전하고, 그들을 구하려고 까지 하지만 그 또한 교장과 사오리, 미나토에게 상처를 준다.


이렇게 영화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누군가를 상처를 주는 이는 괴물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영화 속 그들처럼 거짓된 소문만으로 그들을 판단했던 나 또한 아마도 누군가에게 괴물이었겠지. 삶을 살아내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어떠했든 간에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는 건 슬픈 일이다.


거짓된 존재를 만드는 건


영화는 하나의 거짓말을 시작으로 한 인간(호리 선생)을 파멸로 이끈다. 하지만 파괴의 시작은

미나토와 요리의 마음을 거짓으로 만들어 낸 세상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이 두 존재를 망가뜨리고, 세계를 오류로 잠식해 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이들은 얼마나 안타까운지,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의 존재는 틀린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영화 속에선 사랑이라는 것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세상엔 그것만이 아닌 다양한 삶 속에서 통념을 거부했다는 죄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존재라는 건, 존재한다는 것부터 잘못이기에 서서히 혹은 빠르게 망가지게 된다. 결국엔 본인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게 되거나 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행복해질 수 없는 걸까요?
영화 괴물 사진2.jpeg
무기노 미나토 ;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하는 거예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들통날 테니까요.
후시미 마키코 ;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하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

영화 중후반부에 나오는 음악실 장면은 많은 장면 중 가장 인상 깊었다. (가장 마지막 장면을 제외한다면)

개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일을 경험한 교장 선생님, 그의 뒤에도 거짓된 소문이 존재하고

세상으로부터 존재를 거부당하는 아이, 미나토는 자신의 존재를 위해 거짓을 만들어낸다.


행복해질 자격 같은 게 존재한다면 그건 어떤 자격일까? 저 대사를 들었던 밤 많은 생각을 했다. 영화 내용을 곱씹다가도 자꾸만 저 대사가 덜컥 목 끝에 걸려왔다. 자신은 행복해질 수 없다. 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고 슬픈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감정조차 자격을 메기고 그에 상응하는 조건 따위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서, 애초부터 부정당한 존재들의 무력감을 알기 때문이다.


교장 선생의 말처럼 행복이란 건 그리고 행복을 넘어서, 감정이란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개인은 감정을 가질 자격을 얻는 것 아닐까.


세상이 달라지지 않아도

우리는 다시 태어난 거야?
아니, 우리는 그대로야.
다행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나를 압도해서 심장이 마구 뛰었다. 엄마와 선생이 흙에 파묻힌 열차를 손으로 계속해서 닦는 모습은 영화가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을 들게 했다. 이후 미나토와 요리의 모습이 나온다. 둘은 자신들만의 세계로 향한다. 어둠뿐인 터널을 지나 오로지 그들만이 존재하는 그들의 세계로. 그곳에서 아이들은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세계는 변하지 않으니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는 듯이. 그를 위해선 새롭게 태어나야만 한다는 듯이.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주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세상은 흘러가던 대로 흘러가고, 사람들은 그에 맞춰 나갈 뿐이다. 때로는 세상에 맞서는 영웅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포기하고, 순응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사는 세계에서 '나'는 세계의 전부이니까. 내가 달라진다면 '나의 세계' 또한 변하기 마련이니까.



망할 세계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세계를 바라볼 때, 나의 눈은 너무나 무미해서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의 창백한 모습만이 눈에 새겨져.

나를 향한 멸시와 조롱은 익숙해져서

그저 지루한 삶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만 하는 요즘이야.


너도 그랬을까.

너의 세게에 맞서는 망할 이곳이 지겨워졌을까.

아니면

지쳐버린 걸까. 버티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그래서

그렇게 영원의 길로 뻗어버린 걸까.


나는 너를 잃고도 잘만 살아가.

한겨울의 세상은 채도가 너무 낮다지만

그럼에도

한낮의 햇빛이 창으로 들어올 때면

눈이 부시게 따뜻해져.

봄이 오면

세상은 우리가 보았던 그때의 색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렇게, 어떻게든 이 망할 세계는 조금이라도 살아갈 길을 만들어 내.


지치고 무너져 버릴 때 친구들은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기도 하고.

그게 너무 따뜻해서 나는 쉽게 무너지다가도 금세 눈을 감아, 다음을 기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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